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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Feb 20. 2019

밥벌이와 예술 사이에서

영화 <패터슨 Paterson> 리뷰

(C) Paterson, 2016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시를 썼던 고등학생 때는 마을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잠이 부족해 꾸벅거리다가도 가끔 멈춰 선 버스 밖의 풍경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그날은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시간부터 작업하시는 아저씨와 흙더미 위에 놓인 먹다 만 소보루빵과 우유를 보며 밥벌이의 지겨움이 생각났고, 그 이미지는 습작 노트에 쓰였다.


뉴저지주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 씨의 직업은 버스 운전기사이다. 새벽 6시 15분쯤 일어나서 아내에게 입맞춤하고, 도시락을 들고 출근해 매일 같은 길을 돌고 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조용하고 차분한 패터슨의 일상은 언뜻 보면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반복되는 생활에서 그는 틈틈이 펜과 노트를 꺼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내려간다.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지닌 영화들은 대부분 일상을 벗어나 꿈꾸는 순간을 다루거나 일상이 파괴되는 비극을 이야기한다. 통상 사용하는 ‘영화처럼’이라는 비유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누구와 다를 것 없는 가장 보통사람의 일상을 오롯이 보여주려 한다. 마치 패터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기도 하다. 주변에 있을 법한 소심해 보이는 그의 이야기를 왜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것일까? 



(C) Paterson, 2016



시를 쓴다는 것은 관찰자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하루를 관조하게 되는 것이다. 패터슨은 운전할 때, 들려오는 손님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미소 짓기도 하고, 거리를 걸으며 움직이는 동물, 나무, 부랑자에게까지 관심을 둔다. 퇴근 후 매일 들르는 바에서 실연당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아내의 변덕스러운 살림살이 바꾸기를 조용히 바라봐 준다. 아침을 먹다 마주한 오하이오 블루팁 성냥 상자 하나도 그에게는 모두 영감이 된다. 


패터슨의 일주일을 들여다볼수록, 시를 쓰는 모습에 점점 매료된다. 일상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어제와 온전하게 똑같은 오늘은 없다.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의미를 부여해주는 시인의 일은 일상을 예술로 만들어 준다. 그가 매우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이유는 패터슨시의 버스 운전기사 이자, 시인이기 때문이다. 때로 일상은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기도 한다. 잘 달리던 버스가 고장 나기도 하고, 소중한 것을 허무하게 잃기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시를 쓰듯 한 발짝 물러나 관망하는 패터슨을 응원하게 된다. 



(C) Paterson, 2016


(C) Paterson, 2016



내가 시를 썼던 이유는 무료한 입시 생활을 견뎌내기 위해서였다. 매일 차가운 아스팔트 공간에서 공부만 해야 하는 우리가 불쌍했고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쓰고 또 쓰다 보면 조금은 버틸만했다. 시간이 흘러 시를 읽는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면서 왜 내가 쓰고 싶은 글로는 밥벌이할 수 없나 고민했다.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지만, 우리들의 목표가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생계를 위한 일과 자신이 예술이라고 여기는 일, 그것이 꼭 일치해야 할까? 그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밥벌이 너머 추구해야 할 하나가 일상의 예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패터슨처럼 버스를 운전하며 시를 쓰고, 시를 쓰며 버스를 운전하면서.





덧, 패터슨 같은 친구가 있다면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래는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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