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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Feb 20. 2019

가장 아름다운 몸짓

영화 <댄서 Dancer> 리뷰


(C) Dancer , 2016



공기를 가르며 춤추면서 점프할 때면 ‘이게 나구나’ 싶어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춤을 추곤 했다. 손끝과 발끝이 저릿해질 때까지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가뿐해졌다. 나는 춤을 잘 추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담아 온몸을 움직이는 순간을 좋아하지만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인지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을 동경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댄서>는 천재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 Sergei Polunin의 성장과 춤을 다룬 영화다. 우아한 짐승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는 거침없이 스텝을 밟다가도 한 마리 백조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공중에 떠오르곤 한다. 그의 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름다움의 정체를 밝히고 싶어졌다. 


세르게이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를 발레학교에 보내기 위해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뒷바라지해야만 했다. 발레 영재였던 세르게이는 가족의 유일한 희망이었고 모두의 기대와 시선은 그에게 집중됐다. 열세 살, 발레는 소년의 모든 것이 된다. 매일 연습실에서 마지 막까지 불을 밝히며 남아있던 어린 세르게이는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을 꿈 꿨다. 오로지 그날만을 손꼽으며 발레 동작을 하나씩 익혀갔다. 마침내 그는 영국 로열 발레단의 ‘최연소 수석 무용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하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춤을 춰야 하는 목표를 잃게 되자 세르게이는 방황하기 시작한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약물 복용도 서슴지 않는다. 발레는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C) Dancer , 2016



길을 잃은 그는 무용수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토로한다. 하루라도 발레 연습을 건너뛰면 몸이 아파 쉴 수조차 없는 것. “포로가 된 기분이에요. 나 자신의 몸에, 춤에 대한 열망에”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고단해 보인다. 발레의 반복되는 규칙과 틀이 그의 천재성을 가두어버릴 즈음, 결국 발레단을 나오게 된다. 은퇴 전, 세르게이는 자신만의 춤을 만든다. ‘Take me to church’라는 노래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아름다운 몸짓이 극대화된 장면이기 때문이다. 


춤을 사랑하지만 춤이 고통스럽고, 춤을 사랑하지만 춤이 두려운 모순된 마음이 담겨서일까. 모든 움직임, 손끝 발끝 하나하나 강렬하다.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공간의 모서리 끝과 끝을 뛰어다닌다. 춤의 절정은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두 번 툭툭 치다가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이다. 마치 날개 잃은 새처럼 바닥에 엎드려 기어 다니고, 손톱으로 팔 전체를 긁기도 하면서 고통스러움을 표현한다. 겨우 몸을 일으킨 세르게이는 열 번이 넘도록 우아하게 회전하고서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갇혀있던 모든 감정을 토해낸 듯, 그는 춤을 추는 내내 울었다고 고백한다. 



(C) Dancer , 2016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본능적으로 끌리게 된다. 우리의 마음을 꿈틀대게 하는 것은 꾸미지 않은 감정이다. 춤에 녹아든 ‘있는 그대로의 감정들’로 아름다움은 완성된다. 세르게이의 춤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고뇌에 찬 동작에서 그의 외로움, 슬픔, 두려움,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채로운 그의 춤은 가장 아름다운 몸짓으로 기억될 것이다.




※ 본 리뷰는 마케터로 근무할 당시 '<영화 속을 여행하는 몸에 관한 안내서>, 어라운드 매거진 47호, p.149'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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