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리뷰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
바빴던 하루의 무게가 어깨에 내려앉은 퇴근길. 나는 축 처진 모습으로 지하철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생각에 잠긴다. ‘한 달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별을 본 지 얼마나 됐더라.’ 지 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뒤로하고, 집을 향해 더 빨리 걷는다.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 좀 나아지겠지.’라고 위로하며.
혜원은 배가 고파 고향으로 돌아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준비하던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인스턴트 음식에 질려갈 즈음, 따듯한 밥상이 그리워 집에 온 것이다. 오랜만에 시골집 방 안에 혼자 누워 있으니 왠지 으스스하기만 하다.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시골의 밤은 스쳐가는 바람 소리만으로도 무수한 상상을 자아낸다. 그런 혜원에게 재하는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라며 귀여운 강아지 ‘오구’를 건넨다.
금방 서울로 갈 거라고 말하던 혜원은 어느새 성견이 된 오구와 산책을 하고, 텃밭을 가꾸고, 고모의 농사일을 돕는다. 도시 생활은 잠시 잊은 채, 매끼 정성스러운 음식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겨울에는 추운 바람을 맞으며 직접 만든 막걸리를 먹고, 뜨끈한 수제비로 몸과 마음을 녹인다. 봄에는 싱싱한 채소로 배추전과 꽃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여름에는 시원한 콩국수로 갈증을 달랜다. 은숙과 사소한 다툼이 있던 날에는 달콤한 크렘 브륄레를 선물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아주 매운 떡볶이를 함께 먹는다. 그렇게 혜원은 소꿉친구인 재하, 은숙과 소소한 행복을 쌓아간다.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에는 친구들과 다슬기도 줍고, 개울가에 앉아 별을 바라본다. 밤하늘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는 혜원의 얼굴은 참 평화롭다.
봄은 봄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가을은 가을답게, 겨울은 겨울답게. 사계절을 온전히 느끼고 지내는 혜원을 보니 자꾸 눈물이 났다. 내게도 혜원처럼 살던 기억이 있다. 봉사활동을 간 방글라데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한 계절을 보내며, 자연이 주는 힘을 믿게 되었다.
사실 시골 생활이 그리 낭만적이진 않다. 서로 무관심하던 도시와 달리 나의 모든 행동이 이웃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혈기왕성한 모기들 덕에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였고, 조용한 밤엔 지붕을 뚫을 듯한 빗소리가 무서워 잠을 못 이룬 날도 많았다. 한 번은 침대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와 엉엉 운 적도 있다. 그때 마음을 다스릴 겸 산책을 하다가 커다란 ‘레인트리’를 마주했다. 나뭇잎이 비 내리는 것처럼 축 늘어진 나무였는데, 200년도 넘은 고목이었다.
멍하니 나무를 쳐다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고 웃음이 나왔다. 그래, 구더기도 생명이고 자연인데 뭐 어쩌겠어? 그러고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를 가로막는 어떤 건물도 없이 새파란 논만 펼쳐져 있고, 소들은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아침에는 새소리에 눈을 떴고, 밤에 찾아오는 반딧불이와 하늘의 무수한 별들은 존재만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자연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했고, 때때로 약한 내 모습에 실망할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레인트리 앞에 서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진정되었다. 당시 나의 작은 숲은 그 나무 앞이었던 것 같다. 흙으로 돌아갈 우리들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일부이기에 그 안에 있을 때 비로소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다시 힘을 내기 위해서는 온몸의 힘을 쭉 빼고 쉬어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나는 이 영화를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서 너덜너덜해져 버린, 다 놓아버리고 싶은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 일상, 심심한 하루를 살아보면 좋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통 해 모두 자기만의 ‘작은 숲’을 찾게 되길 바라면서.
※ 본 리뷰는 마케터로 근무할 당시 '<영화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어라운드 매거진 57호, p.135'에 실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