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상한 남자, 보를 두렵게 만든 세 가지 공포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아리 에스터는 <유전>, <미드소마> 단 두 편의 호러영화로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른 감독이다. 한국영화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며 꾸준한 애정을 표현해 온 그는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홍보를 위해 내한을 결정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는 악몽 코미디 장르로 초현실적인 여정을 블랙코미디의 색감으로 담아냈다. 이전 작품들이 호러라는 장르적 범주 안에서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아방가르드에 가깝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이상한 남자, 보의 내면을 실험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홀로 사는 중년남성 보는 상담사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의 집 앞에서는 자살, 폭력, 노출, 살인 등의 광경이 펼쳐지는데 이 지점부터 카메라가 비추는 건 현실인지, 아니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보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한다. 이 남자가 겪는 사건은 어머니와 관련되어 있다.     


아버지의 기일 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보는 기이한 사건을 연달아 겪는다. 조용히 자고 있던 자신에게 이웃이 층간소음을 호소하더니 짐과 집 열쇠를 훔쳐 달아난다. 카드는 정지가 되고 동네 사람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든다. 이런 상황 때문에 가지 못하겠다는 보에게 어머니는 넌 언제나 그래왔다는 식으로 답한다. 이상한 남자는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치 ‘돈키호테’와 같은 여정을 떠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 작품을 소설 ‘돈키호테’에 비유하며 초현실적인 표현력과 피카레스크의 장르적 묘미에 대해 극찬한 바 있다. 풍차를 마법사가 보낸 거인이라 생각하고 달려든 돈키호테처럼 보는 왜곡된 정신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때문에 관객들은 시공간이 왜곡된 판타지의 세계로 표현된 보의 정신을 통해 그 여정을 체험한다. 이 왜곡은 제목 그대로 보가 지닌 세 가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먼저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이다. 도입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보를 낳는 모나의 출산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모나는 뱃속에서 나온 아기가 바닥에 떨어지자 화를 낸다. 이 장면은 왜 모나가 아들을 강하게 통제하는 어머니가 되었는지 짐작하게 만든다. 보는 세상에 나온 통로부터 안정적이지 못했다. 때문에 모나는 자신의 품에 아들을 가두려 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는 보가 순수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지니는 요소가 된다. 

    

보는 모나의 과잉보호로 아이와도 같은 순수한 면모를 보여준다. 온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보는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을 지닌다. 그의 여정은 끊임없이 자신이 머물 공간을 찾아가지만 매번 실패한다. 출산에서 아기가 떨어진 경험으로 통제를 하려는 어머니의 마음은 아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걸 방해한다. 초반 물을 조심하라는 상담사의 말은 결국 보가 양수와도 같은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을 암시한다.     


다음은 남근에 대한 두려움이다. 남근은 예로부터 풍요와 다산,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모나의 품에서 벗어나 홀로 사는 보는 빈곤과 고독 속에서 지낸다. 이는 그가 남성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통제는 보의 남성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때문에 그는 아이라는 보살핌의 존재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삶을 쟁취하는 남성이 되는 걸 두려워한다.    

 

직업이 없는 것에 더해 약에 의존한다는 점,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종속된다는 점은 보의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후반부 천장 다락방에 위치한 남근의 모습을 한 괴물의 등장은 다소 노골적이지만 확실하게 이런 점을 보여준다. 다락방이 어린 시절을 상징하며 남근에 대한 공포가 지금의 보를 만들었다는 걸 알린다. 때문에 첫사랑 일레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동정을 간직했다는 점은 두려움에 대한 변명처럼 다가온다.     



마지막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다. 영화의 메인 포스터에는 네 명의 보가 있다. 어린 시절과 지금의 모습이 현재라면 땅을 일구고 가족을 꾸리는 가상의 보와 노년이 된 보는 상상 속 존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상상 속 존재에서 알 수 있듯 보는 현재와는 다른 삶을 꿈꾼다. 문제는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다. 어린 시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지금의 모습이 된 자신에 대한 두려움은 실패로만 점철된 여정을 그린다.     


이 기묘한 여정이 보의 상상이라면 그가 겪는 실패와 좌절 역시 스스로 내린 결말이라 볼 수 있다. 본인을 통제하는 대상에게서 도망치려 하지만 끊임없이 붙잡히는 모습은 상상 속에서 다른 자신을 꿈꾸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공포가 담겨있다. 모나의 선물로 산 자애로운 성모상은 이를 상징하는 요소다. 성모상이 깨진 뒤에 붙이는 모습은 어머니에 대한 종속을, 자신을 도와준 여성에게 이를 준 뒤에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점은 스스로가 굴레에 갇혀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리 에스터는 이 작품에 대해 일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가족의 품을 떠나 자립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순간이다. 감독은 이 보편적인 정서를 통제욕구가 강한 어머니에게 짓눌린 아들의 죄책감을 통해 흥미롭게 담아냈다. 정서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모성애와 성장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담은 자비에 놀란 감독의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중년 버전 같은 기분을 준다. 표현에 있어서는 찰리 카우프만 감독의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연상시킨다.     


실패한 인생을 살아온 한 남성의 심리상태를 과거와 현재, 생각과 상상을 뒤섞어 아방가르드한 방식으로 표현한 이 영화처럼 진취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이 영화가 크게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며 좋아하는 쪽과 싫어하는 쪽이 격렬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쪽이 승리를 거두기를 바란다는 그의 소원이 한국에서 이뤄질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