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용량이 커서 그런지, 글이 두 번이나 날아갔고 사진 업로드는 다섯 번이나 실패하고 다시 쓰는 거다.
저주한다 그리스 인터넷.
3월에 날씨가 풀리면, 주말마다 꼭 답사를 갈 거라는 결심을 했고, 3월의 첫나들이 장소로 수니온을 선택했다. 수니온 곶은 아티키 반도 가장 끝에 위치해 있다. 아테네에서 70km 정도인가..? 거리가 감이 오지는 않지만 버스로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아름다운 석양과 포세이돈 신전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친구들은 신다그마에서, 나는 과외 때문에 싱그루 픽스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비수기라 그런지 버스가 거의 두 시간에 한 대씩 있더라. 그래서 여유를 두고 기점에서 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1980년대 엄마 아빠가 대학교 엠티 사진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버스 내부. 중간에 버스에 문제가 생겨 옮겨 탔던 버스인데, 버스도 좀 바꾸고 하지..... 무튼 수니온은 편도 6.9유로, 학생 할인은 해주지 않았다. 왜. 왜!
수니온 여행 시 꿀팁.
KTEL 버스로 수니온에 올 때는 해안도로를 달리는 Παραλιακός(Paraliakos) 노선을 타도록 하며 운전기사 오른쪽 창문 쪽에 딱 붙어 와야 한다. 에게 해를 맛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사진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봐야 알 수 있음.
무튼 두 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했다. 역시 무료입장. 좋다.
2016년 1월의 사진
그러고 보니, 작년이랑 표가 바뀌었다. 가격이 올라서 그런가..
사실 두 번째로 와본 건데, 처음만큼의 감동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바다를 배경으로 볼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신전이다. 그래도 역시 예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 두 가지. 신전이랑 바다.
바이런의 낙서를 찾아보고 싶었는데 안경을 두고 와서 찾지 못했다. 실제로 보이는 곳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작년에 V10으로 찍었던 수니온
어쨌든 정말이지 아름답고 슬픈 수평선이다. 중후한 푸른빛이 나타내는 바다의 깊이만큼의 오랜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돈다.
자신이 왕이 되면 포세이돈을 잘 모시겠다고 했던 크레테의 왕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바쳐야 할 아름다운 소를 가로챘다. 결국 그에 대한 벌로 포세이돈은 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하여 그 둘 사이에 미노타우르스라는 반인반수 괴물이 태어난다. 미노타우르스가 점점 자라며 먹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미노스는 그리스 각 지역에 20대 젊은 남녀를 제물로 요구한다. 이에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인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기 위해 원정을 떠난다. 길을 떠나며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가 무사하다면 돌아오는 배에 흰 깃발을, 죽음을 맞게 된다면 검은 깃발을 달고 오라는 부탁을 한다.
크레테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미궁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테네로 돌아오는 길에 낙소스에서 쉬던 중, 아리아드네를 보고 반한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두고 가라는 명령을 내린다. 신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테세우스는 혼자 아테네로 떠났고, 슬픔에 사로잡혀 미처 깃발의 색을 바꾸지 못한다. 멀리서 검은 깃발을 달고 돌아오는 배를 본 아이게우스는 탄식하며 이 수니온 곶의 절벽에 몸을 던진다. 그 뒤로 에게 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어쨌든 신화 속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광활한 에게 해의 수평선을 보고 있자니, 목숨을 걸고 떠난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이 떠올라 괜히 안타까워진다. 배가 혹시 한 대라도 뜨지 않을까, 저 배가 그 배인가 하면서 서성대고 있었을 텐데.... 짠한 마음에 찍어보았지만 카메라에 담긴 바다는 아름답기만 했다.
이오니안 해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맑고 푸르다. 얼른 수영을 할 수 있는 날씨가 왔으면 좋겠다.
난 항상 저렇게 아슬아슬한 돌 위에 앉아서 찍는 게 좋던데
의도한 대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봤다.
항구가 있었다던 곳까지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갔다. 아직 태양이 뜨거웠다. 석양이 신전에 붉은빛을 입힐 때까지 카페에서 숨 좀 돌리며 기다리기로 했다.
저 호텔 이름이 아이게우스더라. 호텔 앞바다가 너무나도 푸르다.
다시 올라가던 길.
유채꽃이 너무나도 예쁘게 피어있었다. 유채꽃에, 바다에, 뜨거운 태양까지.. 제주도에 온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틈틈이 친구들 사진도 찍어주고.. 화각을 좀 더 넓게 잡고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만큼 풍경은 아름다웠다.
다시 마주친 수니온과 올리브나무. 포세이돈은 아테나의 상징인 올리브나무가 자기 신전에 있으면 짜증을 내지 않을까? 아테네 뺏긴 걸로도 모자라 신전 터에까지 자리 잡는다면ㅎㅎ
카페에 앉자마자 셔터를 눌러보았지만 대체 어떻게 찍어야 예쁘게 역광을 찍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인 마냥, 악사의 연주를 들으며 석양이 지기를 기다렸다.
지금이다! 버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다시 수니온으로 들어갔다.
아직 해가 덜 졌나? 싶어서 반대편으로 가봤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이글이글 타오르던 태양은 어디 가고, 신전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하늘은 분홍색 파스텔로 쫙 그은 것처럼 은은하고 아름다웠다.
어느새 붉게 변한 태양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석양으로 향했다.
신나게 찍고 카메라 내려놓자마자 은수가 다시 카메라 들으라고!! 해서 찍혔다 히히
그리스, 노을, 바다.
이 풍경을 뒤로하고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수니온은 추위를 감수하더라도, 겨울에 와야 이른 시간에 노을을 볼 수 있다. 여름에 온다면... 자가용으로...ㅠㅠ
레스토랑 음식은 모르겠지만, 커피는 별로였다던 곳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에서 절박하게 찍어보았다. 안녕..
잠이 들기 전 급하게 발견하고 버스 창문을 통해 찍은 하늘.. 이 배경으로 수니온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ㅠㅠㅠ 다음에는 꼭 면허를 따서 오리라....ㅠㅠ
석양이 특별히 예쁘기도 하지만, 나는 그리스를 찾는 사람들이 모두 수니온에 들러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그리스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곳이다. 신화, 신전, 바다, 커피.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