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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Sep 25. 2023

23년 9월, 되는대로 산다.

 영화 <말없는 소녀> 원작인 <맡겨진 소녀. 클레어키건 지음. 허진 번역. 다산책방. 2023>로 9월을 시작했다. 책을 읽고 종종 '온전한 존중'에 대해 생각한다. 등장인물과 배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극찬받은 소설이지만, 나는 따뜻한데 쓸쓸해서, 아린데 포근해서 좋았던 책이다. 삶의 한 순간,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는 건 수많은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 또는 그녀에게 '킨셀라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스쳐간 몇몇이 떠올라 가슴이 시렸다.   


 쓰기와 읽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출퇴근길 <책 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저자 이권우. 오도스. 2022 개정 증보판.>를 읽었다. 저자는 한때 분에 넘치는 칭찬과 지지를 주셨던 분이라 마음의 빚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런 사심과 상관없이 유쾌하고 원하는 지침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세상 이토록 매력 없는 인물들과 에피소드로, 이만큼 짜임새 있고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다니. 작가 천명관 님이라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고래'만큼은 아니지만 남성적인 색깔의 <고령화 가족.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2012>을 읽었다. 읽는 내내 허술한 구석 하나 없는 문장과 구성에 감탄하며, 혹시 그는 AI인가? 엉뚱한 상상이 들 정도였다.  


 발랄함과 유머라면 어김없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지아 소설가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마이디어북스. 2023> 에세이 덕분에 출퇴근 길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이 책을 읽은 후로는, 마트에 갈 때마다 괜히 위스키 진열대 근처를 서성이곤 한다. 마실 줄도 모르면서......     


 7시 30분에 퇴근할 수 있는 운 좋은 날이라서 합정역 교보 문고에 갔다. 무거운 유리문을 쑥 밀고 들어가면 특유의 향이 난다.(굿즈로도 판매될 정도라니 나만 좋아하는 건 아닌가 보다.) 입구 쪽엔 2024년 다이어리가 잔뜩 쌓여있었다. 벌써?...... 해마다 시월에는 새해 수첩을 사곤 했던 터라, 잠시 고민했지만, 설렘을 한 달 후의 내게 양보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면서 책과 사람을 구경했다. 갑작스레 생긴 여유를 어찌할 바 모르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노상 늦은 퇴근을 하다 보니 이런 시간이 무척이나 귀하다. 한데 너무 귀한 나머지 허둥대가 흘려보내고 만다. 옛말 틀린 게 없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목적 없이 서점을 헤집고 다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거야,라고 위로하면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지음. 유유. 2016>,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 조민에세이. 참새책방, 2023>, <인생의 역사. 신형철. 난다. 2022> 3권을 샀다. 모두 가볍고 크기도 적당했다. 마치 '군더더기나 포장은 필요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라고 말하듯이. 기분 좋은 설렘으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오늘 산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곰출판>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번역. 놀. 2019>을 끝내고 손에 잡히는 순서로 읽어볼 생각이다. 내 읽기는 두서도 체계도 없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느끼고부터 엉뚱한 것에 고집을 피우는 걸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9월 마지막 날엔 10월에 읽을 책을 고르고 있을 테다. 두서없고 체계 없이 아무렇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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