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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Nov 13. 2023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다산책방. 2023. 

"한 남자를 이해했던 유일한 사람을 땅에 묻어야 했을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 부상은 치료할 수 없었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가, 그의 유일한 색깔이었던 아내를 떠나보낸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몇 번의 시도를 하지만 이웃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폭력에 가까운 압축일 것이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 봐."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겪는 아픔, 고통,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그녀가 깔깔 거리며 웃는 걸 듣고 샴페인 거품이 웃을 줄 안다면 저런 소리가 날 거라고 오베는 생각했다."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 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중략), 그래서 그는 세상 전체와 싸웠다." 관계에 서툰 사람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표현도 책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오베는 자기가 어디로 갈지 확실히 모르는 경우에는 내내 앞으로만 쭉 걸어가는 남자, 길이란 결국 하나로 이어지게 마련이라 확신하는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 오베는 자기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이해했다." 원칙주의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까탈스러운 오베가 이웃과 적응해 가는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정리해 버리자니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적당히 바빴고 별것 아닌 일에  휘청하던, 수시로 가슴이 서늘해지던 내게, 필요했고 위안이 되었던 책이다. 하여,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 전에 적당한 말을 찾고, 표현을 골라 마무리하고 싶었다. 며칠째 끙끙거리며 필요한 말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그냥 두자'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처음부터 오베라는 남자와는 묘한 인연이었다. 알라딘 서점의 장바구니와 보관함을 몇 번씩 옮겨 담으면서 닿을 듯 말 듯 빗나갔다. 뭐랄까, 인사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안면 있는 이웃 같은 책이었달까. 표지는 익숙하지만, 내용은 예측할 수 없고, 특별히 궁금하지 않지만 자꾸만 눈에 걸리는 그런 책!     


 세상사 다 시절 인연이 있다더니, 오베 씨도 내게는 이 가을에서야 닿을 수 있는 연이었나 보다. 읽는 내내 적당한 긴장감, 재미, 감동이 있어 좋았다. 원서로 봤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마음도 종종 들었지만, 작가의 섬세함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거면 됐다. 


 책을 읽고 나면, 주변에 소개하고 나누길 좋아하지만 이번 책은 내 게으름과 빈곤한 표현력 탓으로 혼자 곱씹을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대신 눈을 사로잡은 문장을 공유하되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덧붙여 말해줘야지. 오베 씨에게 약간의 미안함이 남지만, '緣'에게 맡기는 수밖에. 고마웠어요. 이 계절에 찾아와 줘서.....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이 주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 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종종 죽음은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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