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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Nov 03. 2023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라도 되었으면

 은퇴를 하면서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자연히 나의 시간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급작스레 늘어났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많아도 시간이 없어 못했지만 막상 시간이 많아지자 언제 그랬냐싶게 하고 싶던 일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기껏해야 침대에 반쯤 드러누워 리모컨을 손에 쥔 채 부질없이 TV채널을 이리저리 옮기는 게 소일거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변화를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오늘 하루가 어제 죽어간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시간이라는 거창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그저 소파와 침대를 6대4의 비율로 오가기만 하던 반복된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때부터 집 근처에 있는 한 카페를 출입하기 시작했다. 진한 커피 향이 유독 내 입맛에 잘 맞는데다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제공해주는 카페였다. 피크타임인 점심시간 언저리만 피하면 빈자리가 넉넉해 서너 시간을 죽친들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바깥출입을 한 효과는 꽤 컸다. 그나마 책을 다시 손에 쥐게 되었고 틈틈이 노트북을 펼쳐 넋두리를 풀어놓는 일도 생겼다. 늙다리 카공족이 되었다고나 할까?

 반복은 습관을 만들기 마련이다. 하루 이틀 카페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출입시간과 앉는 좌석은 일정해졌다. 물론 뜻하지 않게 일이 생겨 조금 늦는 경우도 있고 남에게 선점당해 자리를 바꿔 앉아야하는 사례가 생기긴 했지만 그건 새 발의 피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건너편 좌석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그 자리에는 50대 후반의 한 여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녀는 매번 거치대 위에 펼쳐놓은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가끔씩 메모지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비록 거치대와 맨바닥, 볼펜과 노트북이라는 다른 수단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건 분명 독서와 낙서라는 측면에서 나와 똑같은 행위였다. 은근히 관심을 가지면서 그녀가 카페를 떠나는 시간이 나보다 30여분쯤 빠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린 카페의 주축멤버가 되었다. 덩달아 나에게는 또 하나의 버릇이 생겨났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그녀의 존재부터 확인하게 된 것이다. 간혹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괜스레 안절부절못했고 시간이 늦어 뒤늦게라도 나타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녀의 부존재는 내 생활에 불안감을 드리웠고 그녀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안정감을 제공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다 늙은 나이에 로맨스그레이를 꿈꾸는 늦바람에서 기인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는 내 일상이 궤도로부터 일탈하지 않도록 해주는 마라톤에서의 페이스메이커 같은 존재에 해당할 따름이었다. 

 그녀와 내가 카페의 색다른 인테리어로 자리매김할 무렵이었다. 여느 때처럼 카페에 들어서려는데 출입문 유리창에 공지문이 붙어있었다. 주인의 개인사정으로 카페를 폐업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모처럼 이 카페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소외감과 상실감을 극복해가며 생활에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건만. 어느 날 갑자기 일터를 잃는 실직자의 마음이 이럴까? 

 앞으로 오후시간을 어디서 보내나 하는 고민을 하며 카페에 들어섰다. 카공족의 대열에 들어선 만큼 분위기가 비슷한 다른 카페를 선택하는 것이 제일 무난할 것이다. 자리를 잡자마자 난 노트북을 열어 지도를 펼친 후 내 위치 주변에 있는 적당한 카페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지도만으로 분위기를 탐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앞자리에 앉은 그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입장이 궁금했다. 그녀는 이 카페의 폐업소식에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그녀도 나처럼 ‘카페 찾아 삼만 리’ 중일까? 순간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 카페가 아니라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지 않은가. 시험기간을 맞은 학생이라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동료이자 경쟁자인 친구들이 공부하는 학교도서관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가 말이다. 이곳 역시 카페여서가 아니라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그녀가 있었기에 내가 하루일과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으리라. 

 중요한 건 분명 카페가 아니라 그녀였다. 이처럼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그동안 그녀는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어있었다. 새삼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아울러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일까 하는 의문이 피어났다. 아주 조그맣다 해도 아무튼 의미로 작용할 수 있었으면. 설령 그녀에게 그럴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해도 앞으로라도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도상에 나타난 인근의 한 카페를 즐겨 찾는 장소로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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