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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Jan 09. 2024

은퇴의사의 진료

 병원에 가야하는 날이었다. 평소 병원 문을 무슨 지옥문처럼 취급하는 나지만 그날은 그다지 크게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발생한 질병 자체가 워낙 하찮은 것인데다 같은 이유로 벌써 네 번째 이어지는 발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길 일은 아니었다. 크든 작든 몸에 생겨난 비정상적인 증상은 어떤 식으로든 나의 일상을 적잖이 피곤하게 만들기 마련이었다. 

 오른쪽 다리에 생긴 피부반점을 확인한 건 며칠 전이었다. 전날 저녁 잠자리에서 허벅지와 무릎 근처가 따끔거리면서 간지러웠던 게 기억나 샤워를 하면서 무심코 그곳을 쳐다보았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아주 넓은 면적이 검붉은 색으로 변해있었다. 타박상이 나을 무렵 생기는 딱지 같은 색상에 마치 일본열도를 그려놓은 것처럼 허벅지에서부터 종아리까지 긴 띠 형태를 이루는 모양이었다. 원인은 쉽게 짐작이 갔다. 시도 때도 없이 피부에 심한 자극을 가한 탓이리라. 

 유난히 목욕을 좋아하는 나였다. 그것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한증막에서 땀 흘리기를 특별히 즐겼다. 거기다 최근 들어서는 운동량을 늘린답시고 수영장을 들락거리는 바람에 목욕탕 방문이 매일 습관으로 굳어지는 중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이런저런 이유로 목욕탕을 찾지 못하는 날이면 추운 날씨를 핑계 대며 집에서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반신욕을 행하곤 했다. 문제는 내가 이용하는 탕의 수온이 40도 언저리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뜨거운 곳에서 한참동안이나 머물며 땀을 한껏 흘리고 나야 목욕을 한 것 같은 개운함이 느껴지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을 처음 찾았을 때 의사는 피부가 건조해지면서 염증이 찾아온 것이라 원인을 설명해주었다. 주사를 맞았고 먹는 약과 연고가 처방되었다. 가능하면 피부에 자극을 주는 일을 삼가라는 경고도 행해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워낙 환부가 넓고 보기 흉했던 터에 난 성실하게 의사의 말을 따랐다. 장시간 외출을 할 때면 암만 귀찮아도 내복약과 연고를 꼬박꼬박 챙겼고 약효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저녁에 유일한 낙으로 삼던 한 잔 술마저도 끊어버렸다. 이틀에 한 차례씩 집에서 2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의 병원을 걸어서 오가는 수고까지도 감수했다. 

 그러나 상태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경과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가려움과 따끔거리는 증상이야 확연히 줄었지만 그 자국만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각질처럼 벗겨지려나 싶어 제법 힘을 주어 손가락으로 밀어보면 그때만 잠시 색깔이 옅어지는 듯하다가 금세 원상태로 회복되곤 했다. 아무래도 흉터로 영원히 남을 것만 같았다. 돌팔이 의사를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그럴 것이 공교롭게도 내가 찾은 그 병원의 입구에는 이번 달 말일을 기준으로 폐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팔순에 근접한 의사가 은퇴를 하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그래서 환부를 보여줄 때마다 의사는 가타부타 별 말이 없이 똑같은 처방전만을 되풀이 써주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병원을 들어서면서 난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이번이 병원을 찾는 마지막이라고. 그건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병원과 의사에 대한 신뢰가 이미 깨져버린 마당에 굳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치료를 계속 진행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 이면에는 비록 상처가 흉하게 남기야 하겠지만 현재 상태만으로도 생명에 지장을 주거나 불구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한 병은 아니라는 확신이 자리했다. 

 의사에게 환부를 내보이는 나의 태도에 기대감이라고는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의사의 태도 역시 일관되게 사무적이었다. 바지를 반쯤 끌어내렸다가 다시 올리려 할 무렵이었다. 다분히 무성의한 나의 행동이 괘씸했던지 오늘따라 의사가 화를 벌컥 냈다. 그렇게 금방 바지를 올려버리면 어떻게 해요. 다시 바지 벗고 이쪽으로 제대로 누워 봐요. 할 수 없이 난 병상에 몸을 누이며 또 한 차례 바지를 내려야했다. 울긋불긋한 꽃무늬가 만발한 허벅지가 형광등 아래로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저리 살피던 그가 말했다. 허벅지와 무릎 쪽은 많이 나아졌네요. 전혀 변화가 없다고 내가 생각하는 그 부분만을 유독 집어서 그는 호전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반점의 색깔은 한결 연해보였다. 거듭 보았지만 분명 그랬다.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이틀 후에 다시 병원에 나오라는 의사의 말이 들려왔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전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보관한 것은 아니기에 정확한 판단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확실히 나아진 듯했다. 의사의 말에 편승해 선입견이 작용한 탓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환부를 보이며 판단을 구해보았다. 놀랍게도 아내는 의사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짐짓 놀라는 시늉이 결코 꾸며낸 과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때서야 너무 높은 기대치가 내 시력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켰음을 깨달았다. 당장 완치가 되기를 바라는 내 눈에 서서히 나아가는 병세가 눈에 띌 리 없었던 것이다. 조급함에 눈이 멀어버렸다고나 할까?

 난 다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일주일 뒤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오늘 우연히 그 병원 앞을 지나게 되었다. 병원은 공사 중이었다. 간판을 뜯어내는 걸로 보아 예고했던 것처럼 폐업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왠지 아쉬워 잠시 멈춰 서자니 어디선가 팔순의 의사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알아? 어떤 병이고 간에 가장 좋은 치료는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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