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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Feb 04. 2024

버린 가방과 찾은 가방

 아내가 가방을 하나 주었다. 백팩을 메고 다니다 허리 병 때문에 손가방으로 바꾸었는데  그게 노트북가방으로는 영 어울리지 않아 이따금 불만을 토로하던 내가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가방끈이 어깨에 걸머질 수 있을 정도로 좀 긴 게 손가방이라기보다는 어깨 가방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또한 용도가 노트북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 그런 가방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던 차였기에 난 얼른 받아들었다. 

 받고 보니 왠지 낯익은 가방이었다. 이유는 가방을 받아든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 중에 자연스레 밝혀졌다. 다름 아닌 불과 한 달 여 전 딸이 아내에게 선물했던 것이었다. 아내는 선물을 받은 순간부터 내게 내보이며 곧잘 자랑해대곤 했었다. 기껏 며칠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공연히 장점들을 한 아름 쏟아내는가 하면, 가끔 그걸 끌어안고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딸이 야근이다 특근이다 불사해가며 번 돈으로 사 준 것이니 오죽했을까? 

 그렇게 아끼는 물건을 선뜻 내게 내어준 까닭은 쉬 짐작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거기에는 약간의 죄책감이 포함되어있는 게 틀림없었다. 원래 창고에는 백팩을 대체할 만한 노트북 가방이 수두룩했었지만 그 많던 것들을 정리한다는 핑계로 아내가 모조리 처분해버렸던 사실이 드러난 탓이었다. 물론 폐기를 하는데 내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주로 내가 쓰던 물건이었으니 나와 상의를 한 후에 벌인 행동일 게 뻔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요 며칠 용도에 맞지도 않는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내가 불평을 늘어놓곤 했으니 아내로서는 영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새 가방에 노트북을 비롯해 소지품들을 넣어보았다. 가방은 내가 늘 넣고 다니던 모든 것을 수용하기에는 약간 작은 듯했지만 사용이 영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디자인이 제법 세련되었을 뿐 아니라 바느질이 꽤 튼튼해 외출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난 이전의 가방에 있던 내용물을 몽땅 그 가방으로 옮겨 담으며 당장부터 사용하리라 마음먹었다. 미리 아내와 외출약속이 되어있던 은행으로 향하면서 그걸 어깨에 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저녁 무렵이었다. 창고에서 무언가를 정리하던 아내가 큰 소리로 내게 외쳤다. 여보, 노트북 가방 찾았어. 다 버린 줄 알았더니 여기 하나가 남아있네. 그 말은 잊혀져가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아내가 아침에 새 가방을 건네주는 바람에 해결된 것으로 치부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노트북 가방은 나에게 아직 미결상태로 남아있었다. 그 가방 역시 애당초 노트북 용도로 제작된 것이 아니어서 어딘지 모르게 아쉬워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찾은 가방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사이 아내는 나보다 더 다급했던지 어느새 내 앞에 도달해있었다. 쑥 내민 그녀의 손에는 오래 전 내가 매일같이 들고 다니던 검정색 가방이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건 수납공간이 여럿으로 나뉘어져있을 뿐 아니라 노트북을 포함해 책을 두어 권 정도 더 넣을 수 있는 크기였으니 내가 원하던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걸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흠집도 하나 없이 아주 깨끗했다. 그래 바로 이걸 찾았던 거야. 어디 있었어? 아내는 그것을 찾은 과정을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장황하게 설명했다. 가방에 몰두하느라 난 그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한동안 아내는 그렇게 내 앞을 떠나지 않았다. 

 다시 가방을 정리했다. 책이며 노트, 필통, 이어폰 등 항상 들고 다니던 물건들은 마치 제자리를 찾은 듯 깔끔하게 가방 속에서 정돈되었다. 아침에 아내가 준 가방은 텅 비었지만 난 그것의 새로운 용도마저 찾아냈다. 종종 가볍게 나들이를 할 때 태블릿이랑 책 한 권 정도를 넣어 다닐 수 있는 어깨 쌕이 있었으면 했는데 그 용도로 사용하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그럴 목적으로 따로 가방을 옷걸이 한 곳에 걸어두려 할 때였다. 거실에 있던 아내로부터 또 한 차례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노트북 가방 찾았으니 이제 아침에 내가 주었던 그 가방은 돌려줘야 돼. 정리 끝나면 나오는 길에 갖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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