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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산산일 Apr 14. 2023

01. 목적이 없는 삶이었기에 산을 오릅니다.

산을 통해 배웁니다. (@광양 백운산&쫓비산)


산을 애정하는 마음으로 주말마다 산에 오른 지 벌써 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월요일이면 이번 주 오를 산의 코스를 짜고 근처 어디서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금요일이면 등산화를 닦고 등산가방을 챙기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저의 일상은 산과 일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직장인 10년 차가 되던 해 제에게 5개월 간의 어른방학을 선물했습니다.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책상 위에 붙여놓고 꼭 가겠노라 다짐했던 ‘캐나다 로키산맥 4대 국립공원 ( 밴프, 요호, 재스퍼, 쿠트니)’ 과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트래킹 성지인 ’ 뉴질랜드‘로 떠났습니다.

자연 속에서 어떤 이로운 것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온전함을 느꼈습니다. 이 무해한 공간 속에서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을 통해 나아지는 마음과 변화되는 마음들, 그 안에서 배운 것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와 결이 같은 사람에게 닿아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으로 이 글을 써봅니다.





“산이 왜 좋아? 내려 올 산을 굳이 왜 올라가?”


산을 좋아하는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단골 질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가장 가까운 제 반려인 ( 남편 ) 이 제일 싫어하는 운동이 ‘등산’입니다. 연애 포함 7년 만났는데도 저 질문을 매번 합니다.

저는 늘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글쎄, 왜 좋지?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나? 이유가 없으니까 진짜 좋아하는 거 아닐까?”




기어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번 산행 끝에 얻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시작해 쫓비산으로 하산하는 장장 10시간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밤 12시에 관광버스를 타고 4시간 쪽잠을 자고 나니 백운산 초입, 그때부터 시작된 산행은 오후 1시 반이 돼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에어팟이 고장 나는 바람에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자욱한 적막한 산행을 하다 보니 매 순간이 ‘순례자의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다시 한번 질문했습니다. “(진지하게) (이렇게 고생스러운데 *정말 진짜 눈물 날 정도로) 왜 나는 산을 좋아하는 걸까? “

이번만큼은 ‘그냥’이라는 답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릿하게 느껴지는 무릎과 발의 통증을 이겨낼 만큼 강력한 이유가 필요했습니다.


내 인생은 목적이 없는데 산은 목적이 뚜렷하잖아. 산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나도 언젠가 뚜렷하게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르는 것 같아


마음속에 툭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산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산을 정말 좋아하기 시작한 건 지난 여름부터입니다. 그때 열심히는 살고 있는데 뭐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몰라 한참을 방황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직장인 10년 차, 30대 중반..’ 제 앞에 놓인 묵직한 타이틀 앞에서 더 이상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기 위해 무작정 트래킹 여행을 떠났습니다.

캐나다 로키산맥의 장엄함 속에서, 뉴질랜드의 숨 막히는 트래킹 코스를 걸으며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느라 정작 내 삶은 돌보지 못했다는 것을요.

조급하고 각박하게, 늘 남의 인정을 갈구하면서, 남들이 내게 바라는 것을 하느라 늘 저는 뒷전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지조차 모른 채 말이죠.



제 삶을 이제부터라도 다시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루틴을 하나씩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에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컨대 새벽시간 30분 동안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 문장을 대하는 저의 마음, 생각을 주욱 적어 내려 갔습니다.

적으면서 나아지는 마음과 나를 이룬 것들, 나의 변화를 바라보며 저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산을 오르고 내리는 시간은 저에게 질문을 던지는 수련의 장이 되었습니다.

요새 내 맘은 어떤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지금 힘든 부분이 뭔지 자문자답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어려운 코스도 끝나 있더군요.

산행 길에 다리가 후들후들할 때마다 보이는 (생명줄 같은) ’ 이정표‘처럼 어느 순간 나름의 답을 찾을 거라고 저를 향한 응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직 산은 저에게 명확한 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답을 찾는 건 오랜 시간과 수고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산을 통해 나아지는 마음’을 연재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연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오르기 전보다 내려온 후 저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트랙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에 감사하고,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인정하며 나답게 살기 위한 노력을 매일 하고 있거든요.

언젠가는 푸르른 산처럼 나답게 깊어지기를,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넓게 품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쫓비산 정상에서 본 광양 매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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