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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Nov 24. 2023

거, 젊은 사람이 벌써 왜 이런 데 와서 살아

작은 아파트 인테리어 부록


나의 20대는 존버 그 자체였다. 한 달 벌어, 한 달 버텨내면 다행이었다.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최저임금이 2천 원도 되지 않았다.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해도 월 50조차 벌 수 없었다. 3평짜리 허름한 자취방 월세 22만 원에 각종 공과금 및 학자금 대출 이자를 내고 나면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10만 원 정도 남았다. 그게 내 생활비의 전부였다. 자유로운 영혼인 척하며 이발비를 아끼려고 머리카락을 직접 잘랐다. 그래도 근사한 데이트는 하고 싶어서 카드론을 남용했다. 대학 졸업 때까지 8년, 좌충우돌하며 가까스로 생존했다.


장교가 되어 처음으로 통장에 100만 원이 넘는 급여가 입금되었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학자금 대출과 온갖 카드빚을 착실히 갚으면서도 적금까지 부을 수 있었다. 전역할 무렵에는 그래도 전보다 훨씬 나은 집을 구할 수 있는 보증금 정도가 모였다. 그 돈으로 구한 나의 30대 첫 집이 파주의 낡은 주공아파트 전세였다. 파주 소재의 대안학교 교사로 복직하게 되어 운정 구시가지 쪽에 집을 구한 것이었다.


태풍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테이프를 붙여야 했던 나의 첫 아파트


9월 즈음이었던가. 미리 집을 계약해놓고 휴가를 나와서 벽 페인팅이며, 바닥재 설치 등을 틈틈이 하고 있을 때였다. 운정역 앞의 벤치에서 스크류바를 돌려 먹으며 땀을 식히고 있는데, 낯선 어르신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백발이 성성한 70대 정도의 노옹이었다. 노옹은 이 동네서 나처럼 젊은 사람은 처음 본다며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그때 나의 주된 관심사는 이 할아버지가 도인일까, 전도사일까 하는 점이었다. 도인이라면 UFO에 대한 논쟁이라도 해볼까 싶었고, 전도사라면 이슬람교도라고 할 참이었다. 그러나 노옹은 내게 질문을 던져놓고, 답은 듣지도 않은 채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노옹은 운정역 부근에서 태어났다. 노옹이 어렸을 때는 주변이 황무지였고, 판자집에서 생활했다. 가족 전체가 넝마주이 일로 연명했다. 노옹은 담배꽁초를 주워다 팔았는데, 그 탓에 소학교 시절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손녀가 아주 싫어하는데 왠지 서운해서 끊지 못하겠다고 했다. 젊어서는 월남전에 나갔고, 베트남의 뜨거운 정글과 죽어간 동료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죄가 아직 눈에 선하다고 말하며 먼 하늘을 봤다. 그렇게 번 돈으로 가게를 열어서 착실히 돈을 모았다. 지금은 운정역 부근의 상당수가 본인 땅이고, 빌라도 몇 채 있다며 자랑했다.


“거, 젊은 사람이 벌써 왜 이런 데 와서 살아. 파릇파릇할 때는 말야, 저기 서울에 가서 치열하게 한 번 붙어봐야지. 안 그래?”

“어르신 말씀이 다 맞습니다.”


4년 가까운 군 생활 덕에 사회력 만렙이었던 당시의 나는 그렇게 답하며 한껏 미소를 지어드렸다. 한강의 기적 그 자체인 노옹이 만족하며 떠난 후, 나는 한동안 벤치에 앉아 ‘벌써’ 독거노인들의 마을에 도착해버린 내 삶의 의미를 곱씹었다. 삶이 계단을 오르는 일이라면 아름다움은 몇 층에 있을까. 35층일까, 아니 47층 정도에 가야 마주할 수 있을까. 나의 결론은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고, 삶은 결코 계단을 오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늘 하루 내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걸로 오늘 하루는 성공이다. 무수한 오르막과 내리막과 갈림길 속에서 아름다움을 비추는 나만의 작은 등불을 지켜내는 것이 삶이다. 그러므로 그때의 나는 ‘이런 데 와서 더욱 나답게 살아보기로’ 결심했었다.


물론, 10개월 뒤에는 어른 말씀 하나 틀린 게 없다는 걸 깨달았지만.


2023. 11월 출간작 <1인 도시생활자의 1인분 인테리어> 중에서.


출간도서 링크 = http://aladin.kr/p/xQTq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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