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의 이야기
지난 두세 달 사이, 다섯 편의 미공개 소설을 완성했다. 짧게는 몇 년 전, 길게는 십수 년 전에 초고를 써두었던 작품들이다. 이렇게 형편없는 걸 티스토리에 올렸었다니! 싶은 것도 있고, 이 나이에 이런 문장은 어떻게 생각한 거지? 싶은 것도 있었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 과연 ‘자아’란 것은 굉장히 한시적 개념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를 구성하는 입자들이 한순간도 그대로 머물지 않는 것처럼, 인간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나 또 한편 ‘아집’이라는 것이 있어서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동일한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가령, 편의점에 들를 때 ‘연양갱’을 하나씩 집어오는 건 대딩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러니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말은 둘 다 참이다. 현미경으로 어느 부위를 관찰하는가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작년 즈음 브런치에서 야심 차게 내놓은 ‘응원하기’ 서비스에 대해 나는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아니, 그전부터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플랫폼이 - 무료 글을 다방면으로 활용해 상당한 광고 효과를 내고 있으면서 - 작가들을 위한 수익 구조를 구축하지 않는 데 대해 수차례 문제제기를 했다. 실망스러워서 한동안 여기에 글을 올리지 않기도 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몇몇 브런치픽 작가에게만 응원하기 서비스를 붙여 주는 것은 몹시 불공정한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내게도 저 초록 마크가 붙었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서비스가 적용되기 전까지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간 굳이 내 뜻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기능을 잘 활용하는 작가들의 사정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제 공용 기능이 되었으니 나도 마음 편히 쓸 수 있겠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유튜브처럼 글에 광고를 붙이고, 일정 이상의 조회수부터 수익을 정산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봤을 때, 유튜브와 브런치의 체급 차이는 대한민국 vs 우리은하계 정도의 격차일 것이다. 작가에게 나눌 수 있는 수익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튜브’라고 처음부터 그런 생태계를 구축했을까. 음원 쪽에서는 ‘멜론’의 성공 사례도 있다. 결국 유력 자본이 미래를 보고 투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인데, 카카오는 영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소리바다 시절 음원은 무료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 상황이 지속되었다면 지금의 케이팝은 없다. 내가 20년 넘게 웹에서 활동해오는 동안, 온라인의 글은 여전히 무료 신세다. 오프라인에서는 ‘문단’이라는 실체 없는 유령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실력행사를 하고 있다. 이런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글은 점차 전문영역에서 취미영역으로 하향 평준화될 게 자명하다. 오래 지켜보니 업계 내에서는 자발적 개선이 불가능해보인다. 나는 적어도 ‘카카오’, ‘네이버’ 등 거대 기업들이 온라인 문필가들의 글을 무료로 활용할 수 없게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양갱 얘기를 하다가 어쩌다 이리로 흘러왔는지 모르겠다. - 아, 연양갱 얘기가 아니었나? - 말이 나왔으니 비비의 신곡 ‘밤양갱’을 언급 안 할 수 없다. 아아, 밤양갱은 사랑이다. 엊그제도 콩나물 무침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연양갱을 사왔다. 지구 어딘가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나의 옛 연인들은 밤양갱을 들으며 나를 한 번쯤 떠올렸을까. 그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말이다. 모든 건 내 잘못이고, 부디 연양갱에게는 죄가 없으니 이따금 달콤한 양갱을 베어무는 행복은 누리며 사셨으면 좋겠다.
본론으로 돌아가 - 지금까진 본론이 아니었나? - 완성된 다섯 편의 미공개 소설은 아주 만족스럽다. 소설을 공개하지 못하는 까닭은 온라인에 공개된 소설은 오프라인 어디에서도 활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공모전 등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모쪼록 주의하시기 바란다. 나는 그걸 모르고 글을 쓰는 족족 온라인에 다 공개했다가 거의 15년 치의 작품을 스스로 출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너는 아직 세상에 이름을 알릴 자격이 안 된다는 하늘의 뜻이려니 여긴다. 이제 좀 자격 제한이 풀렸으려나. 새로 출간한 <1인 도시생활자의 1인분 인테리어> 판매량을 보면 아직 안 풀린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매일 새벽 5시 즈음 일어나 꼬박꼬박 글을 쓰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글들이 언젠가 내게 2층집을 가져다주기를 고대하며. 농담이다. 아니 진담이다. 글로 세계를 바꿀 야심을 꼬꼬마 시절부터 품고 있는 것도 진담이지만 말이다. 되든 안 되든 그리로 나아가는 중이다. 인생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연양갱보다 영양가 없는 글을 너무 길게 쓴 것 같다. 새벽에 내린 커피를 다 마셨으므로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참, 미공개 소설 중 한 편은 봄이 오면 공개 예정입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시길 : )
2024. 2. 29.
* 사진은 팥전문점 '홍옥당 https://hongokdang.co.kr/ '의 제품 사진을 활용했습니다.
* 별 관련 없는 내 책 홍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