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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Mar 18. 2024

제3정치와 녹색정의당의 쓸모

시사 읽기


제3정치는 어디로 가나...



스불재에 갇힌 개혁신당


녹색정의당을 지지해 달라고는 말 못 하겠다. 개혁당, 국민참여당, 정의당 등 소수 진보정당을 꾸준히 지지해온 나는 갈 곳을 잃었다. 그동안 소위 제3지대가 가능성을 보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조금 기대를 걸었던 ‘개혁신당’은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동력을 잃었다.


개혁신당의 좌절은 이준석 리더십의 좌절이다. 이준석 대표가 드러낸 한계가 무척 아쉽다.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에 대한 불합리하고 거친 언사를 통해 그릇의 크기를 엿볼 수 있었다. 이준석 대표는 2030 일부 남성 지지 기반의 팬덤정치인이라는 틀을 깨고, 대중 정치인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스스로 걷어찼다. 주요한 변곡점에서 정당 지지율 형성에서 크게 비중 있는 부분도 아닌 지엽적인 요소에 집착하는 걸 보며, 정치적 판단력에 대한 의구심도 몹시 커졌다. 개혁신당이 내놓은 정책들도 아직 이거다 싶은 게 없다.


무엇보다 제3정치를 추진하는 자세 자체가 구태의연하다. 민주당도 까고, 국민의힘도 까겠다는 것인데… 정의당이 지난 10년간 했던 방식 그대로다. 그럼 그대로 정의당을 지지하지, 굳이 왜 개혁신당을 지지해야 하나. 제3정치가 새로워지려면 전향적인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두를 긍정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다. 거대 양당과 적대하는 정당이 아니라, 거대 양당 모두가 필요로 하는 카드가 되어야 22대 국회에서 중재 역할도 할 수 있다. 서로 상대 정당을 비방하기 바쁠 때, 역으로 장점을 찾아 북돋우며 이런 부분은 함께하자고 손을 내미는 담대함을 보였다면 아주 신선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진영을 넘나드는 용광로 라인업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약소정당의 전직 부대표 한 사람, 우리 사회의 최약자 단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도 품지 못하는 리더에게 무슨 ‘화합의 비전’을 기대할 수 있으랴. 많은 합리적 시민들이 그 민낯을 보고 손 털었다고 생각한다.


비례후보로 이준석보다 주목도 높은 대단한 인물을 영입하고, 그 인물로 주인공을 교체하지 않는 한, 남은 기간에 반전의 기회를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봄날은 야속하게도 짧았으니...


조국혁신당과 조국의 강


조국혁신당은 이름을 참 잘 지었다. 언뜻 ‘조국 형 신당’처럼도 읽혀서 밈으로 쓰기도 재밌다.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라는 포지셔닝도 과거 정의당의 필승전략을 실리적으로 벤치마킹했다. 지금 상승세라면 정의당을 대체하겠다는 말이 허풍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정의당에서 분화된 ‘사회민주당’은 민주당 위성정당에 갈 게 아니라, 조국과 손잡았다면 훨씬 정치적 실리를 챙겼을 것이다. 사민당의 정호진 대표 같은 빼어난 인재가 여태껏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조국 대표를 지지하지 않고, 조국 일가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부분들에 대해 명백한 잘못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게 대한민국에서 정치할 자격을 상실할 정도의 잘못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비리백화점이라 불렸던 국민의힘 박덕흠 같은 자가 총선 치르기도 전에 당선 축하파티를 하는 정치판 아닌가. 조국 대표 정도면 성인군자는 아닐지언정, 흠결 있는 서생 정도는 된다고 여긴다. 2019년부터 진행된 모든 과정을 누구보다 살뜰히 챙겨봤다. 사돈의 팔촌까지 털어댄 검찰-국힘-보수매체는 조국이 마치 맨해튼에 핵폭탄을 투하한 전범이라도 되는 듯이 그 혐의를 부풀려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곁가지를 다 쳐내고 명백한 것만 남기면, 결국 엄격한 아버지 노릇 제대로 못한 정도의 일 아닌가. 검찰이 그렇게 집요하게 공략했던 사모펀드, 주식 투기 관련 혐의는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무죄였다. 이제는 어느 쪽이 더 과했는지 시민들이 충분히 판단할 것이다.


조국혁신당이 앞으로 내놓을 정책들은 아마도 기존 정의당의 정책과 흡사하거나, 조금 강화된 형태일 것이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신혼부부와 동거 커플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을 언급했다. 심상정 의원이 지난 대선 때,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전월세 갱신권을 무한대로 늘리고, 시민동반자법으로 동거 커플에게도 부부와 동일한 권리를 주는 정책을 공약했는데, 이걸 다 패키지로 묶으면 조국표 정책이 될 듯하다. 간명하다는 점에서는 조국혁신당에게 더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에게 맹렬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최대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다. 약점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집착하다가 정치력이 쪼그라든 안철수 의원의 사례를 복기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복수심이 무엇보다 강력한 정치적 동기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차원을 뛰어넘어야 위대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조국 대표에게 그런 포부가 있다면 말이다. 혹시 언젠가 그런 인물이 된다면 나 또한 지지를 검토해볼 수 있을 듯하다.


보수언론과 일부 진보 인사들이 ‘조국사태’를 다시 꺼내오고 있다. 언제 적 조국사태인가. 그들만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한 듯하다. 아니, 일부러 강을 안 건너고 있나. 조국 일가가 누구처럼 아무 조사도 안 받고, 어떤 정당 소속처럼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면 조국의 강은 더 넓어지고 깊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지난 5년 동안 실시간으로 조국 일가가 풍비박산 나는 걸 지켜봤다. 조국 일가가 명백한 잘못을 했지만, 그만하면 됐지 뭘 더 응징해야 할까. 나를 포함한 중간자적 입장의 시민들은 이미 응분의 대가를 치렀다고 보는 것이다. MZ식으로 말하면 ‘오히려 좋다’. 그만큼 곤욕을 치렀으니, 어지간하면 똑같은 짓은 더 못할 것 아닌가. 조국 대표는 티끌만 한 비리라도 추가되면 그대로 끝이라는 걸 본인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그는 현재로서 그 누구보다 자기 통제에 철저할 정치인일 수밖에 없다.






제3의 길을 걷겠다던 분들, 지금 어디에 있습니꽈


제3정치는 왜 필요한가


양당정치는 패싸움의 정치다. 상대를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두들겨 패서 조그만 흠집이라도 내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필연적으로 서로를 악마화할 수밖에 없고, 또 첨예한 대립 상황에서는 내부의 작은 소란도 치명적이기에 ‘내부총질’ 같은 전시용어를 평시적으로 쓰게 된다. 대립하는 양당의 구성원 모두 안팎으로 삿대질하느라 바쁘게 된다. 미래 과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가지고 극한 대립을 한다면, 오히려 그 뻗치는 에너지들을 좋게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책임 있는 정당과 그 리더는 그렇게 상황을 이끌어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렇게 해서 표를 얻는 일은 불확실하고, 상대 당 욕해서 표를 얻는 일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통합민주당 - 국민참여당 -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 창조한국당 - 한나라당 - 자유선진당 등의 여러 당이 꽤 다원적 국회를 구성했다. 바로 그 시기에 보편적 복지 담론이 싹을 틔웠고, 무상급식, 아동수당, 반값등록금, 대중교통 무료환승이 추진되었다. 그리고 청계천을 모델로 한 전국 하천의 녹지공원화가 시작되고, 환경담론이 제대로 주류담론화한 것도 그 시기였다. 진보교육감 이슈로부터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전반부에 더불어민주당 - 정의당 - 국민의당(민주평화당) - 바른정당(바른미래당) - 자유한국당의 다당제 구도일 때, 87년 체제 이후 가장 혁신적인 정치개혁(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 이뤄졌다. 또, 최저임금 대폭 인상, 남북교류협력 진전, 올림픽 성공적 개최, 문화역량의 세계적 확산, 순조로운 적폐청산 등등이 다 이 시기에 이뤄졌다. 뚜렷한 양당구도로 재편된 후반부는 아시다시피 극한 대립의 반복일 뿐이었다.


제3정치는 꼭 필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사실상 유일한 제3후보였던, 심상정을 예로 생각해보자. 지난 대선 민주당의 패배 원인을 심상정에게 묻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안다. 그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로서 심상정 후보에게 단일화를 요청하지 않은 것은 민주당의 선택이었다. 민주당은 왜 그렇게 선택했을까. 심상정과 공식적으로 단일화를 하면, 가뜩이나 윤석열 후보에게 열세인 2030 남성 지지표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공식적 단일화를 요청하지 않고, 여론으로 심상정을 포위하는 비공식적 단일화 전략을 쓴 것이다. 나는 민주당의 전략이 민주당으로서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심상정 의원과 공식 단일화를 했다면, 이재명 후보는 아마 더 큰 격차로 패배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데이터를 보면 대다수 정의당 당원조차 심상정 후보에 투표하지 않았다. 건너갈 수 있는 표는 이미 다 갔다는 뜻이다. 심상정의 2.3%는 그저 제3정치를 향한 끈질긴 염원의 표였다.


심상정이 아예 나오지 않았다면 이재명 후보가 승리했을까. 민주당 분들은 심상정 후보가 사사건건 이재명 후보 트집을 잡았다고 기억하겠지만, 국민의힘 쪽은 심상정 후보가 윤석열 잡는 데만 혈안이었다고 기억한다. 이준석의 여가부 폐지에 여가부 강화로 맞짱을 뜬 것, 전두환의 죽음에 가장 신랄한 논평을 낸 것, 쌍특검 제안을 한 것, 윤석열의 120시간 노동 발언의 무식함을 마지막 토론까지 강조한 것, RE100 논란과 원전 개발 대립각을 세워 기후위기 이슈를 잠깐이나마 환기시킨 것도 심상정이었다.


심상정 후보가 없었다면 위 모든 일들을 이재명 후보가 과연 대신했을까? 여러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들이 소위 ‘개딸’이라는 이름으로 이재명 후보에 투표했다. 그러나 지금 계속 그들 곁에 서있는 게 누구일까. 개딸이라는 이름은 이제 페미니즘과는 아무 관계없는 이름이 되지 않았나. 정치의 진정성은 결국 시간이 드러내준다.


지난 대선에서 제3의 후보가 없었다면, 가뜩이나 꼴불견인 양당의 삿대질 정치가 더더욱 심화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주야장천 서로의 비리 혐의만 물고 뜯고 맛보다가 대선이 끝났을 것이다. 좀 다른 얘기를 하는 정치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기에 그나마 노동 얘기도 하고, 기후위기 얘기도 하고,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문제도 회자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메기가 없는 <하트시그널>이나 <솔로지옥>은 얼마나 노잼이겠나. 가능하면 호감이 가는 매력적인 메기가 등장하면 좋겠지만, 좀 호감이 덜 가는 메기라도 메기는 메기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갈등을 조율하고, 정치를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제3정치의 역할이자 책무라고 생각한다. 개혁신당이든, 조국혁신당이든, 녹색정의당이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세력인지 아닌지를 중점에 두고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






'녹색당'이 우리 국회에 꼭 필요하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녹색정의당의 쓸모


지금 녹색정의당에는 기존 정의당 세력의 3분의 1 정도만 남은 듯하다. 사회민주당,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조국혁신당으로 제각각 새 살길을 찾아 참 많이도 떠났다. 그것도 정의당으로선 상당히 유의미한 인재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지금의 정의당을 정의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약간 물음표가 뜬다.


최근에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명단이 발표되었다. 솔직히, 노동인권 변호사로 긴 세월 활동해온 권영국 변호사 외에는 특별히 눈길이 가는 인물은 없다. 녹색당 쪽에서라도 좀 매력적인 인물이 나오길 기대했는데 아쉽다. 오히려 당선 가능성이 제로인 지역구 출마자 중에 참신한 인물이 더 많아 보인다. 이것 참 곤란하다. 도대체 뭘 가지고 이 당을 지지해줘야 하는가.


조회수 백 단위를 힘겹게 넘은 어느 녹색정의당 지역구 후보의 해맑은 출정식 영상을 보았다. 후보 스스로도 당선이 불가능한 건 알지만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출마 의사를 밝혔다. 선거에 나서는 사람이 스스로 이길 자신이 없다고 하는 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영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여기며 영상을 중간에 껐다. 근데 며칠이 지나도록 그 후보의 해맑고 어딘가 슬픈 눈동자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금 정의당에 남은 사람들 대부분이 수십 년 동안 자기 삶터에서 진보정치를 해오면서도 그 손에 권력을 단 한 번도 쥐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가산을 탕진하고, 누군가는 더 좋은 성공의 기회를 잃고, 때론 가족 지인과 반목하면서도 그 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이 분들은 도대체 왜 이런 비실용적인 선택을 하는 걸까 작가적 의문이 든다. 권력이나 돈에 욕심이 있다면 진즉에 큰 당에 줄을 섰어야 한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진심이다. 결코 좋은 의미로만 하는 말이 아니다. 비정한 정치판에서 진심은 승리를 가져다주지도, 밥을 먹여주지도 않는다. 또 진심이 항상 정의롭거나 도덕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도 아니다. 그간 정의당에서 일어난 여러 부정적 사건들은 흔한 우리 정치판의 꼴불견이었다. 정치는 선의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악의를 활용해서라도 뜻하는 결과를 빚어내야 하는 일이다. 정의당의 본질적 문제는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 혹은 결과를 내고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 그러나 그럼에도 이 사람들이 약자와 서민을 위한 정치에 진심인 것,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빼어난 정치인은 성직자인 동시에, 엔터테이너이고, 또 도박사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엔터테이너나 도박사는 못할 사람들만 온통 녹색정의당에 모여 있는 듯하다. 나는 진심이니까! 나는 옳으니까! 라며 고개를 빳빳이 드는 소수를 다수는 불편하게 느낀다. 우리 대다수는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알고 있음에도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정의당이 선명하지 않아서, 약자들 곁에 있지 않아서 지지하지 않는 게 아니라 - 혹 표현은 그렇게 할지라도 - 자꾸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정당이어서 싫어지는 것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가장 탁월한 능력은 날카로운 진보 의제들을 유머로 포장시켜서 대중의 가슴에 전달하는 능력이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이 한 마디 말이 시민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정의당은 꾸준히 시민을 닮은 의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는데, 정당 스스로 과연 시민의 얼굴을 닮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0~1석 정당이었지만 '진보신당'은 그 시절 가장 힙한 정당이었고, 청년층에게 호감도가 독보적으로 높았다. 왜 그랬을까?


답답하고 짠하다. 다시 비례대표 명단을 살펴보니 다들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최선을 다해온 사람들이다. 싱어게인에서도 1-2라운드에 탈락한 무명가수들 같은 느낌이다. 나는 이번 싱어게인 시즌 3에서 2라운드에 광탈한 한 여성가수를 열렬히 응원했다. 대단히 아름다운 목소리와 송라이팅 실력이 있는 가수였다. 그런데 화제가 되지 못했고, 싱어게인 출연 이후에도 여전히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몇 천 단위로 찍힐 따름이다. 밤양갱 같은 천운을 만나지 않고서야 유명가수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가수가, 그 가수의 노래가 다만 좋았다. 1위 가수가 아니어도 사랑받을 자격은 있다. 정당도 그렇다.


국회에는 진심과 실력을 겸비한 인물이 들어가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우리 국회에 과연 그런 인물들만 있던가. 진심 0.1%에 능구렁이 같이 정치력만 99.9%인 사람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진심도 실력도 전혀 없는 자들도 줄을 잘 서서 한 자리 차지한다. 그런 곳이다. 그렇다면 눈치도 없고 정치도 초보지만 진심 하나만은 가득한 사람의 자리도 몇 자리쯤 두어도 좋지 않을까. 유명하지 않지만, 십수 년 동안 한 번도 당선되지 못한 지역구의 길거리를 빗자루로 묵묵히 쓸어온 사람들이 있다.


녹색정의당은 더 욕심낼 수도 없다. 딱 3석이다. 가능하면 기호 4번인 권영국 변호사까지 네 자리다. 기후위기 해결 전문가로 영입된 8번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장까지는 바라기도 어렵다. 거대 양당의 정치인 대다수가 권력 다툼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그들이 300석의 대부분을 독차지하는 우리 정치에서, 그나마 순정을 가진 사람들의 자리만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기후재난 극복, 페미니즘, 인권, 노동권, 주거권 등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가 국회에서 아무리 작아도 꺼버려도 좋은 건 아니다.


촛불운동 뒤의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새누리당을 승계한 국민의힘이 아니라, 가장 앞장서서 촛불을 들었던 정의당이라니. 아무리 자업자득이라도 해도, 그런 역사가 쓰여지는 것은 도대체 아니지 않나 싶다.


내 주변의 누구도 녹색정의당을 찍어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의리로,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심정으로 녹색정의당을 지지하고자 한다. 다른 분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지지 정당을 잘 결정하시길 바란다. 정의당을 지지하는 사람만 진심과 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의당은 제발 좀 그걸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전략 없이 관성적 태도로 조국혁신당을 힐난하거나, 민주비례당을 공격하는 논평을 내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조국혁신당에 느슨하게 결합해 있는 분들은 마지막 순간 녹색정의당을 선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유권자들이라고 판단한다. 조국혁신당이 안정적 지지세를 확보할수록, 녹색정의당에게도 시야가 열릴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후보자 이슈가 아닌, 정책 이슈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고르라면 심상정의 ‘주4일제’와 이준석의 ‘여가부 폐지’일 것이다. 모든 시민이 환영했던 것은 단연 주4일제다. 크게 화제는 되지 못했지만 ‘시민의 삶이 선진국인 나라’라는 정의당 슬로건은 유일하게 미래 비전을 제대로 담고 있는 슬로건이었다. 1가구 1태양광 무상설치, 시민의 최저소득 100만 원을 보장해주는 시민평생소득, 모든 시민이 연간의료비를 총 100만 원까지만 부담하면 되는 심케어 등 좋은 정책도 많았다. 이번에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도입한 기후패스 아이디어도 정의당의 기후위기 극복 공약에 들어 있었다.


이번 조국혁신당이 정치투쟁의 망치선을 자임하는 것처럼, 정의당은 그래도 꾸준히 우리 사회의 ‘정책 망치선’ 역할을 해왔다. 180석도, 100석도 아닌 6석 작은 정당으로 말이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노란봉투법도 시작은 정의당이었다. 아무래도 싫은 것은 싫을 수밖에 없겠지만, 녹색정의당은 우리 눈길이 닿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또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는 분명 쓸모가 있는 정당일 것이다. 무엇보다 녹색당이 결합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녹색정의당이 시민들에게 심판받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물론 없다. 그러나 국민의힘보다, 윤석열 정권보다 먼저 심판받지 않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언젠가 녹색정의당이 사라져도 좋을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202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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