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진 Feb 04. 2024

1%의 정의당과 정치의 미래

시사 읽기


촛불은 왜 꺼졌나


총선이 다시 눈앞에 다가왔다. 7년 전, 촛불광장에는 ‘정치를 바꿔야 시민의 삶이 바뀐다’는 구호가 울려 퍼졌었다. 나 역시 엄동설한의 광화문 광장에서 그 구호를 외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진보, 중도, 상식적 보수 모두의 힘으로 정치권력을 교체했지만, 시민의 삶은 기대한 만큼 바뀌지 않았고, 엉뚱하게 권력은 검찰 세력에게 넘어갔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를, 윤석열 정권은 이명박을 사면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촛불은 끝내 혁명이 되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정치를 바꿨다고 여겼지만, 정권을 바꾼 것뿐이었던 것이다. 누구누구 정치인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우리 시민들 탓을 좀 해야겠다. 이명박-박근혜의 10년을 겪는 사이 시민들 속에 ‘정치과잉’ 현상이 발생했다고 본다. 모든 사안을 진영을 나눠 당파적으로 판단하고, 누구의 편이냐고 묻는 극단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언제부턴가 정치권에서 상용어가 된 ‘내부 총질’이란 표현은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내부 총질은 적과 아군이 분명한 전쟁 상황에서나 유의미한 말이지, 다양한 의견 간의 토론과 조율이 근간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시에 쓰일 말이 결코 아니다. 매우 반민주적인 표현이라고 여긴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무엇이 더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되는가가 아니라, 어떤 게 우리 편 주장이냐가 더 중요해져 버리니, 쓰이는 용어부터 적의가 가득하다.


혼탁해진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더 가열차게 삿대질 경쟁을 하는 정치인들 욕할 것 없다. 그들을 그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마지막 순간 사표심리에 져서 양극단에 투표한 시민들이다. 그들을 점점 더 부추기는 것 역시 ‘누구의 지지자’를 자처하는 대중들이다. 결국 우리가 지금의 정치를 만든 것이고, 우리가 달라지지 않으면 정치도 지금 모습 그대로 계속될 것이다. 물론, 이 삿대질 정치를 냉철하게 끝내고, 화합과 공존의 정치를 이끌 지도자를 얻지 못한 것은 우리 시민들의 지독한 불운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고, 일정 부분 운에 달린 것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공존의 리더십을 마주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시민들 스스로 각자의 무대에서 지성을 되찾고, 대결이 아닌 해결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촛불은 우리가 켰지만, 결국 우리 스스로 꺼버렸다. 나 역시 힘껏 촛불을 꺼버린 사람 중 한 사람이다.






1%의 정의당


지난 총선에서 나는 ‘정의당 유감’이라는 글을 통해, 양당의 삿대질 정치를 해소할 대안으로 정의당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그 글은 꽤 널리 읽혔다.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지금의 정의당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정의당의 지지율은 갤럽 기준 1 ~ 3%대이다. 4년 전, 정의당 최대의 위기라고 했을 때의 지지율은 3 ~ 6%대였다. 그보다 더 낮은 상황이니 그야말로 ‘소멸’에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정의당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진영마다 평가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은 ‘이재명과 단일화를 안 해서’라며 괘씸해할 것이고, 국민의힘 지지층은 ‘민주당 2중대 노릇만 해서’라고 비아냥댈 것이다. 양쪽에서 다 골고루 지독한 욕을 먹는 것을 보면 그래도 중간에서 할 만큼 한 거라고 볼 수 있다. 6석 꼬마 정당에 290석 무게의 정치적 짐을 지우는 평가들에는 전혀 동의가 되지 않는다.


나는 정의당이 결국 스스로 무너졌다고 본다. 정의당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약 10%의 지지율을 얻었다. 명확히 말해두고 싶은 부분이 있다. 당시, 미래통합당을 제외한 원내 모든 정당이 동의해 제정된 ‘준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가 그대로 지켜졌다면, 정의당의 의석은 15석이 되어야 했다.


연동형 비례제는 국민의 지지율대로 정당의 의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국회 전체 의석이 300석이니, 10% 지지를 받은 정의당의 의석은 30석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준’연동형을 도입하여, 연동형으로 보장된 의석의 절반만 할당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법률에 의거한 정의당의 자리는 15석이었다. 하지만 위성 정당의 난립으로 정의당은 9석을 초법적으로 도둑맞은 것이다.


*우리에게 비례대표 제도는 비정치 전문가들을 국회로 보내주기 위한 창구로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그 본래 취지는 국민의 정당 지지에 비례해서 국회의석을 배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 지지율에 비례하도록 국회의석을 보정해주는 장치로 비례대표를 활용하는 연동형 쪽이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에 훨씬 알맞다.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10% 가까운 지지를 받아 15석을 얻었어야 했지만, 양당의 초법 행위로 9석을 잃었다


가정법에 불과하지만 15석의 정의당이 있었다면 21대 국회는 좀 달랐을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몇 가지 조건이 더 붙어야 할 것이다. 첫째,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둘째, 대국민 미디어 전략이 혁신적으로 전환되었어야 한다. 셋째, 등대 정당(정책 및 의제를 선도하는)으로 만족할 것인지, 집권을 노릴 것인지에 대한 당적 합의가 명확했어야 한다. 넷째, 청년정의당과 같은 마이너리그를 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곧바로 중앙에 진출했어야 한다. 다섯째, 담론에 천착하기보다 작은 것이라도 젠더 갈등에 대한 실효적 정책 성과를 냈어야 한다. 여섯째, 의원 갑질 논란에 대해 개인 문제로 축소하지 말고 당문화 전체에 대한 자성과 변화가 있었어야 한다. 일곱째,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의 성폭력 피해 고발에 성실하게 대처했어야 한다. 여덟째, 비례대표 총사퇴와 같은 다소 극단적인 퍼포먼스라도 할 때는 했어야 한다.


* 특히, 1항인 김종철 전 대표 사건은 정의당의 21대 국회 최대 성과 중 하나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 직후에 벌어진 일이라 타격이 컸다. 게다가 당 이미지 실추의 문제에서 나아가, 진보정당 세대교체 실패로 상황이 악화되고 말았다.


정의당은 열거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데 실패했기에 스스로 모든 기회를 놓쳤다. 정당 간 비호감 경쟁 속에서 가장 비호감도가 높은 정당이 되고 말았다. 실리도 민심도 다 잃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나는 정의당의 구성원들이 누구보다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치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왜 더 노력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까울 것이다. 노력이 문제가 아니라, 방법과 방향이 문제다. 정의당은 번번이 마이너스가 되는 선택만 하며 난파된 배처럼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연합정치와 제3지대


총선을 앞두고 마이너리그에서는 두 가지 기획이 펼쳐지고 있다. ‘연합정치’와 ‘제3지대’다. 양자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연합정치는 거대정당의 철옹성을 인정하며 부분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고, 제3지대는 거대양당에 도전하는 세 번째 권력이 되겠다는 것이다.


나는 정의당이 유력한 제3당으로 자리 잡아, 양당 삿대질 정치의 심판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런 기대를 걸기가 어려워졌다. 떠날 사람 다 떠나고 남은 정의당 지도부는 내심 ‘민주대연합 복귀’로 노선을 정하는 듯하다. 그럴 거였으면 참여계 중심의 정파가 탈당해 ‘사회민주당’을 결성하기 전에 붙잡았으면 될 일 아닌가. 나는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의 의정 활동을 누구보다 지지했다. 하지만 정의당의 분위기 대전환을 위해 참여계 중심으로 재작년에 제안되었던 ‘비례대표 총사퇴’ 퍼포먼스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런데 정작 그런 변화는 거부하고 류호정 의원의 의석을 보존해준 분들이 이제는 또 앞장 서서 류호정 의원을 비난한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싶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 그림이 2022년 10월에 일찍 나올 수도 있었던 것을...


또 일각에서는 녹색당과 단 둘이서 ‘녹색정의당’이라는 미니 선거연합정당으로 지난 총선처럼 진정성 하나 가지고 돌파해보겠다는 심산도 있는 듯하다. 이제 희망고문은 그만두시기를 권하고 싶다. 10년 해도 안 됐는데, 10년 더 한다고 세상이 바뀔까. 무엇보다 유권자 성향이 달라졌다.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 시절 꿈에 부풀어 돼지저금통에 동전 모아주던 그런 순박한 유권자들은 없다. 배반, 좌절, 상실, 반목, 무능, 피로, 모두 겪을 만큼 겪었다. 지금 20대라고 그 역사를 모를까. 유권자들은 희망에 지쳤다. 이제 ‘꿈’이 아니라, ‘성과’를 원한다. ‘포부’보다 ‘실력’에 반응한다.


모쪼록 뭘 하든 한 길로 제대로 하시기를 바란다. 기왕 민주대연합 노선에 복귀할 거면, 조국 전 장관과도 쿨하게 손 잡아야 할 것이다. 이낙연이 이준석과도 함께할 수 있다고 하는 마당에 정의당이 조국과 손 잡는 것이 뭐 그리 큰 흠이랴.


다만, 민주당과의 연합정치를 다시 선택한다면 정의당의 ‘집권’ 기획을 변경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민주당을 ‘이기고’ 집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과 ‘함께’ 집권하겠다는 것으로 말이다. 개헌을 해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대로 이뤄낼 게 아니라면, 경선 과정부터 공동경선을 하든지, 대선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공동정부를 꾸리는 명시적 합의를 이루든지 해야 할 것이다. 선거철마다 단일화 압박을 받고, 결과가 나쁘면 욕받이가 되는 과정을 도대체 언제까지 되풀이할 건가. 정의당이 정책이나 의제 선도 정당의 포지션 정도로 만족할 수 있다면, 민주대연합 복귀 또한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물론, 먼저 용혜인 의원의 기획 속에 들어가는 수모부터 감수해야겠지만.


3지대로 떠난 사람들도 정의당의 생존을 위한 선택에 대해 과도하게 비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나 역시 정의당 전체가 3지대의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 사람이지만, 눈앞에 펼쳐진 정치 지형을 냉정하게 진단할 필요도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운명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정의당 전체가, 특히 심상정 의원이 3지대로 간다면 민주당은 그 즉시 제도를 폐기할 것이 자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한 번 더 하는 것보다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는 노회찬-심상정의 일생이 담겨 있다. 87년 체제에서 33년만에 유일하게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이 제도를 지키는 일은, 정치 구도를 재편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남은 정의당 지도부가 이재명과 손을 잡든, 조국과 손을 잡든, 아무튼 퇴행이라는 거센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이 제도를 지켜낸다면 나는 그 또한 몹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수혜는 3지대로 떠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돌아갈 것이다. 모쪼록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행운을 빌어주는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제3지대 만능론?


마이너리그의 기획이 모두 아름답게 성공한다면, 22대 국회는 제법 괜찮은 그림이 될 것이다. 민주당과 레거시 진보연합은 합쳐서 180석 이상을 확보할 것이고,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합쳐 100석 남짓, 나머지 20석을 제3지대가 얻느냐 마느냐의 승부가 될 것이다. 제3지대가 18 ~ 19석을 얻는다면, 정의당 등 진보연합의 일부가 추후 합류하여 제3지대 공동교섭단체를 형성할 수도 있다. 민주당과 제3공동교섭단체는 대통령 결선투표제, 4년 중임제 등 포인트 개헌도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키는 제3지대의 성패에 달려 있다. 제3지대가 실패해 3지대 절반 이상이 국민의힘 의석으로 넘어가면 양당의 극한 삿대질 정치는 윤석열 정부 내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처럼 비토권을 식권 쓰듯이 남용할 것이다. 불평등, 기후위기, 지역소멸, 미래경제, 동북아전운 등 주요 과제는 윤석열과 한동훈 두 초보운전자의 난폭 운전에 만신창이가 될 게 자명하다.  


민주당 단독 200석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브레이크 없는 승용차를 벼랑길에 올려놓으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80석 민주당의 오만과 무능을 우리 모두 이미 경험하고 있지 않나. 20석을 더하면 그 오만과 무능이 더해지면 더해지지, 덜해질 리 없다. 요즘 민주당이 단독처리하는 소위 ‘개혁입법’이라는 것들의 대부분이 문재인 정부 시기에 정의당이 제안했으나 논의조차 안 된 것들이다. 왜 이제서야 그걸 강행하느냐? 받을 수 없는 제안을 던져서, 윤석열의 ‘거부권’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거부권 남용 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전략술일뿐이다. 단언컨대 내일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궁색한 변명을 내세우며 개혁입법 중 단 하나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가 물러나면 민주당이 해결하겠다고 한 굵직한 과제 중에 실제로 해낸 것이 무엇이 있었나. 그나마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한 선거제 개혁마저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지 않나. 유권자들께서 부디 두 번 세 번 속지 마시고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바란다.


개혁신당이 내놓는 것들은 한 마디로 '이게 맞나?' 정책들뿐이지만... 양극단의 최종 절충안이라고 보면 영 이해 못할 수준은 아니다. 동의는 별개.


나는 3지대론자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제3지대가 만능열쇠는 아니란 점은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여러 해 지속되고 있는 비생산적인 극한 대결정치를 보완할 수단으로서 유력한 제3정당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지, 무슨 이준석 대표가 우리 정치의 ‘구원자’라는 허튼 생각 같은 걸 품고 있는 게 아니다. 외려 나는 이준석 씨와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대립된다. 혹여 제3지대를 희망하는 유권자들이 이준석이라는 개인을 숭상하는 단계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그냥 삿대질하는 정당이 2개에서 3개로 늘어나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또 하나의 팬덤 정당에 귀중한 표를 낭비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애초에 내 희망사항은 심상정과 유승민, 그리고 이준석의 조합이었지만, 지금 현실은 이준석과 이낙연의 조합이 되느냐 마느냐의 상황이다. 솔직히 말해 그 두 사람은 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애초에 각기 ‘팬덤정치의 수장’이었던 사람들로서, 그 수혜를 톡톡히 보다가 권력 싸움에 밀려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바 ‘문파’의 문자폭탄 화력에 의지해 승승장구했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과거에 대한 아무런 성찰의 메시지 없이 양당정치의 폐해를 힐난하는 장면은 너무나 우스꽝스럽다. 대통령 재도전을 위한 생존전략으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이낙연 + 이준석의 통합정당은 손학규 + 안철수의 바른미래당 수준을 넘지 못하리라 본다.


지금 추세라면 이준석 개혁신당은 흡수할 수 있는 만큼 주변을 최대치로 흡수하여, 자기 브랜드로 제3지대의 중심축이 되려 할 것이다. 심상정 의원이나 유승민 의원처럼 진중한 문제해결 비전을 가진 정치인이 합류하는 게 아니라면 구태여 몸집 불리기식 이합집산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제3지대 결집이 선거를 이기기 위한 필승전략처럼 시민들에게 회자되는 순간, 즉 비전이 아니라 권력 담론이 앞서는 순간 바람은 차갑게 멎을 것이다. 그런 방면으로는 매우 영민한 이준석 대표도 그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주야장천 텐트 얘기만 늘어놓는 기성세대는 무시하고, 쭉 소신껏 하기를 바란다.


* 다시 강조하지만, 개혁신당이 요즘 발표하고 있는 정책들에 동의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내 견해로 금태섭 - 류호정 - 조성주의 ‘새로운 선택’은 깜짝 놀랄만한 정치력을 보여줄 게 아니었다면, 연초에 개혁신당에 합류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박원석 전 의원과 배복주 부대표 등 정의당 일부가 나가서 만든 ‘미래대연합’은 이낙연 전 대표보다 이준석 대표를 먼저 설득했어야 신선했을 것이다. 전형적인 지분 줄다리기식 구도가 된 지금 두 세력 모두에게 남은 그림은 이준석에게 먹히느냐 먹히지 않느냐밖에 없어 보인다. 거창한 얘기를 하며 정의당을 떠났지만 모두 궁색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참 딱한 일이다.





정치의 미래


정치가 과연 지금보다 나아질까.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은 영원히 도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도래한 그 순간, 곧 유토피아가 아니게 되는 법이다. 20년 전에는 노무현의 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기만 하면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다. 또 어떤 시기에는 ‘무상급식’만 다 이뤄지면, ‘진보교육감’만 다 당선이 되면, 박근혜만 끌어내리면, 노무현의 친구가 대통령이 되면, 소위 민주진보진영이 180석이 되면, 마법처럼 어제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 기대했다. 다 이뤘지만, 마법은 없었다. 삶이란 그런 것임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정권에 따라 어떤 부분은 조금 나아지고, 어떤 부분은 조금 퇴보한다. 또 어떤 것은 엄청나게 앞서나가고, 어떤 것은 산업화 시기 수준으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내 의견은 어차피 그럴 거 뭐 대단히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서로 뻥 치는 ‘판타지 정치’ 말고, 가능한 수준에서 점진적 합의점들을 찾아가는 ‘리얼리즘 정치’를 하자는 것이다.


치열하게 토론하는 유럽 의회의 풍경이 부럽지만, 이들 또한 종종 엉터리 결론을 내린다. 결국, 때로 비슷한 결론에 이르더라도 어떤 과정을 택할 것인지의 문제다


뭐랄까, 지금 거대 양당의 정치드라마는 한 마디로 ‘마블식’이다. 히어로가 있고 빌런이 있다. 히어로가 빌런을 무찌르면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순진한 얘기를 낯짝 두껍게 서로 주고받고 있다. 마블 서사에 도취된 미국의 시민의식이 딱 그런 상황이어서 지금 트럼프와 바이든의 재대결이 기정사실화 되는 것 아닌가. 앞서 얘기했지만 결국 시민의 각성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이 채널을 선택하고, 이 채널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결국 우리라는 사실부터 차분히 성찰해야 한다.


의회는 시민을 닮고, 시민은 의회를 닮는다. 이재명을 지지해도 좋고, 한동훈을 지지해도 좋다. 그러나 한쪽은 영웅이고, 한쪽은 악당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듣고 싶지 않은 말도 들어보면 나쁘지 않을 때가 있다. 듣기 좋은 말도 돌아보면 해가 되는 말이 있다.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책을 읽을 때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정치적 주장이 있는 책을 읽었다면, 반드시 그 반대되는 주장에 대해서도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자서전도, 박정희 자서전도 다 읽었다. 노무현과 이명박, 문재인과 박근혜의 책도 나름 공평하게 모두 읽었다. 어떤 책은 읽기가 매우 버겁긴 했지만, 희대의 빌런에게도 나름의 명분들은 있는 것이었다.


나는 현재 합리적 시민의 가장 큰 적은 보도매체(‘언론’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라고 생각한다. 조회수 장사에 눈먼 이 수백 수천 개의 파편화된 매체들이 대결과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위 ‘언론’이 저널리즘 윤리를 지키는 가운데 일종의 ‘합리성 필터’ 역할을 해줬다. 


* 조선일보는 빼자. 요즘 보도매체들이 모두 조선일보화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스스로 확고한 자기중심을 세우고, ‘정보’와 ‘의견’을 구분해야 한다. 몹시 어렵고 귀찮은 과제다. 모든 시민이 이 과제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시민의 딱 20%만이라도 내가 이 과제를 풀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서서히 삿대질 정치를 멈춰나갈 수 있다.


지금껏 말은 무진장 길게 했는데… 그래서 결국 누굴 밀겠다는 거냐고 묻는다면 선뜻 할 말이 없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요즘 표현처럼,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돌아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도 우직하게 제 갈 길 가는 ‘녹색+정의당’이 맞나? 희망고문인 줄 알면서도, 미워도 다시 한번 선택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물정 모르고 한결같은 거기가 토대가 되었어야 이준석의 원맨쇼도 불안하지 않았을 텐데… 세상만사 참 뜻대로 되는 게 없다.


그럼에도 아직 오지 않은 세계의 답은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들 유권자의 손에 있다. 누가 어떤 텐트를 치느냐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시민으로 각성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아주 크게 변화할 것이다.


모쪼록 아직 답을 못 정한 유권자분들-

남은 두 달 남짓, 쉽게 어딘가로 휩쓸려가지 말고 함께 차분히 고민해봅시다 :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


2024. 2.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