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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진 Jun 09. 2024

레이베이 - 1집 / 어서 와, 쳇

뢰이베이/레이베이 <Everything I Know About Love>


아이슬란드 재즈싱어 뢰이베이(Laufey)쳇처럼(Just like chet)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다. 어제 홍대 칼디커피에서 사온 케냐 원두로 오랜만에 따뜻한 드립 커피를 내렸다. 며칠 동안 원두가 떨어졌었다. 드립 커피를 마시지 않고 시작한 하루는 어쩐지 어제의 연장선 같았다. 나의 뇌는 매일 새벽에 커피를 내리는 일로 하루를 구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뇌와 나는 어디를 가든 늘 같이 다니고 있지만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흔히 뇌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뇌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꼭 그렇지도 않다.


가령,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늦잠을 자고 일어난 일요일 아침에 뢰이베이의 노래를 듣는 사소한 일로도 변화할 수 있다. 나는 불과 1시간 전까지 어제 쓰던 에세이(쓰레기통 방향으로 전개됐던)를 다시 써보자고 마음먹고 커피를 내리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뢰이베이의 쳇처럼을 듣고 난 직후 전혀 다른 인간이 되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는 뢰이베이가 부른 노래 가사의 의미를 뇌가 분석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뢰이베이는 아이슬란드식 영어로 노래하는데, 나는 영어 노래를 직역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없다. 이 ‘사소한 혁명’은 짐작건대 뢰이베이의 음성과 쳇처럼의 음악 속에 감춰진 미지의 입자가 주동한 것이다. 편의를 위해 그 미지의 입자 녀석을 ‘쳇’이라고 부르자.


쳇은 138억 년 전 우주의 탄생과 동시에 태어났다. 모든 입자의 현생은 그때 시작되었으므로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쳇은 137.999999999억 년까지는 외롭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쳇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늘 아침 뢰이베이의 1집 음반 8번 트랙이 우리 집 거실에서 재생되는 순간, 쳇은 외로워졌다. 그리하여 우주로부터 음악에 깃든 뒤, 내게로 온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방향을 뒤틀어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집요하게 인생의 찰나를 들여다보면 모든 순간이 그러하다. 길에서 튀어오른 햇살이, 오래된 슈퍼에서 사먹은 수박바가, 며칠 동안 방치한 먼지 뭉텅이가 우리의 삶을 미묘하게 흔든다.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컨트롤하고 싶은 완벽주의자라면 너무 많은 지식을 쌓지 않는 편이 좋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계산하다가 화병으로 죽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친구의 삶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쳇의 삶을 뜻대로 바꿀 수 없다.


오늘 아침, 쳇이 내게로 오지 않고, 나의 뇌가 계획한 대로 어제 쓰다만 에세이를 썼다면 내 삶은 어디로 이어졌을까. 어쩌면 10년 뒤, 화성 탐사선에서 일론 머스크와 머스크멜론을 먹는 미래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스크멜론은 내 취향의 과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미래가 사라진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2024. 6. 9.





뱀발 : 사실, 이 글은 뢰이베이 1집에 대한 리뷰인데, 이런 것도 리뷰로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많관부-


뢰이베이/레이베이 데뷔 음반 'Everything I Know About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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