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의 이야기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퇴거 통보를 받은 때는 지난 4월 첫 주 주말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 남짓 나는 고통 속에 살았다.
발단은 집주인의 반복되는 위법 월세 인상이었다. 내가 직접 관여해 입법에 이른 ‘임대차 3 법’에 따라 계약 갱신 시 월세는 직전 월세의 5%까지만 인상할 수 있었지만, 집주인은 2년마다 5만 원씩 인상을 요구했다. 본인이 아주 관대한 집주인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으며. 요구를 받을 때마다 임대차 법에 대해선 내가 누구보다 전문가이고, 위법한 요구임을 알려주었으나 진격의 해병대 노익장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2년 전, 4년 전에는 좋게좋게 타협해서 3-4만 원 인상을 해주었지만 더는 못 봐주겠다 싶어 강하게 나갔더니 5만 원 인상을 못해주겠으면 방을 빼라고 주인은 으름장을 놓았다. 법으로 보장된 계약갱신권으로 방어를 했으나, 됐고 자기가 다시 들어와 살기로 방금 마음먹었으니 너는 나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무주택자의 설움이 까마귀 떼처럼 몰려왔다. 일주일 넘게 머릿속을 맴도는 까마귀 떼의 새까만 울음소리에 식사도 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잘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자, 5월에 내려던 문예집 편집 작업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고심 끝에 빚을 내서 집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결심은 더 커다란 고난의 시작이었음을 4월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앞으로 긴 시간 머물게 될 나의 첫 자택 매물을 선별하고, 정부 대출 프로그램을 알아봐 서류를 준비하고, 여러 은행을 돌아다니며 읍소하다시피 해 대출 계약을 진행하고, 통장을 탈탈 털어 잔금 및 이사 자금을 마련하고, 이삿짐을 꾸리고 등등등 모든 일을 3개월 사이에 속성으로 클리어했다. 중간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택 구매가 불발되고, 노숙자 신세로 전락할 상황만 스무 차례 가까이 있었다. 그 지난한 속사정은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상세히 서술하겠다. 지금은 잠깐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나는 수도권 1 주택자가 되었다. 흙수저는 커녕 마이너스수저 프롤레타리아 계급 출신으로, 청소년문학상 상금 100만 원을 유일한 자산 삼아 혼자 서울에 올라온 지 25년 만의 일이다. 그간 우유배달부터 심야 경비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별로 없을 정도로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나는 여기 생존해 있다. 비로소 1 주택자가 된 소감을 묻는다면… ‘안심’이란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감하는 기분이다. 늘 나를 벼랑 끝에 서게 만들던 본질적 공포에서 해방된 느낌이다. 이러다 내 글의 속성이 바뀌면 어쩌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마음이 홀가분하다. 한편으로, 어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느낌으로 살고 있다고? 우와 이건 정말 대단한 불평등이었구나 싶다.
이런 사정으로 지난 3개월간 전혀 글을 쓰지 못했다. 오늘에야 겨우 이 글을 통해 글쓰기 재활을 시작한다. 아직 내 책상 옆에는 풀지 못한 이사 박스 40여 개가 쌓여 있다. 봄에 내지 못한 책을 가을이나 겨울에는 꼭 출간하려 한다. 출간해야만 한다. 해야 할 것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를 여러 방면으로 열심히 협박하고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어쩌면 전혀 다른 삶의 시작이다.
2025. 7. 18. 이른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