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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곰팡이

어느 하루의 이야기

by 장명진


글쓰기 재활에 나서겠다고 하고서는 또 한 동안 글을 못 썼다. 더위 탓이다. 맞창 구조였던 이전 집에서는 에어컨 없이도 그럭저럭 여름을 버틸 수 있었으나… 새 집에서는 어림도 없음을 이사 뒤에야 체험하고 있다. 에어컨을 사면 되잖아라고 하는 사람은 지금의 내게는 마리 앙뜨와네트 같은 사람이다. 빵이 없으면 당연히 케이크를 못 사 먹는 사람이 있다. 그게 나다. 포장이사 비용으로 지출한 돈만 거의 한 달 월급 수준이어서, 내게는 최소한의 생존비용뿐이다. 다행히도 곧 급여일이 돌아온다.


새 집의 상태가 여러 모로 좋지 않음을 실감하고 있지만, 천장에 곰팡이가 피는 건 난생 처음 겪는 일이다. 추정컨데 며칠 전의 폭우 탓이다. 내 집과 옆 집의 테라스는 낮은 펜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된 구조인데, 옆 집에서 빗물이 자기네 공간으로 흘러드는 게 싫어 잡동사니를 쌓아 물길을 막아 놓았다. 문제는… 배수구가 그 옆 집 쪽에 있고, 물은 그 쪽으로 흐르도록 경사가 지어 있다는 거다. 더위 탓에 밤에 테라스에 나가보지 않았다면 테라스에 홍수가 나서 다락방이 침수될 뻔했다. 다행히(?) 폭우 속에서 작은 물길을 뚫어 테라스 아랫쪽 큰 방의 천장에 누수가 생기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옆 집에 증거 자료로 보여주기 위해 곰팡이를 보존하고 있었으나, 냄새가 나기 시작해 이 글을 쓴 뒤 제거해야 할 것 같다.


뭐랄까 재활을 위해 쓰는 글인데, 써놓고 보니 어쩐지 나치의 눈길을 피해 비밀방에 숨어 살던 안네 프랑크의 수기 같은 느낌이다. 안네보다 사정이 훨씬 좋은 건 블루투스 LP 스피커로 노영심의 피아노 연주음반을 듣고 있다는 점이다. 구름정원 시절보다 묘하게 사운드가 좋아졌다. 창 밖으로 10여 분마다 공항전철이 지나는데, 음악과 섞이면 꽤 운치가 있다.


거실의 통창 맞은편으로는 독일식 5층 건물이 보인다. 그 건물과 다른 건물 사이로 철길이 있고, 은행나무숲과 탁 트인 하늘이 있다. 멍하니 보고 있으면, 지금 우리의 세상이 전쟁과 다툼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곰팡이가 핀 방도 어차피 창고로 쓰는 곳이어서 문을 닫아놓고 지내면 별 일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그렇게 착각하며 한 생을 지나가버리는 거겠지. 한 사람의 삶이 이 우주에 얼마나 의미가 있겠냐만은… 아무튼 곰팡이는 치우는 걸로.


2025.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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