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의 이야기
사실상 생애 내내 여름휴가를 즐겨 본 일이 없다. 일단, 하계휴가 제도가 있는 직장을 다녀본 일이 드물고, 이따금 연차를 여름에 몰아서 쓰도록 권장하는 회사에 다닐 적에는 늘 솔로여서 딱히 휴가의 필요성이 없었다. 지금보다 더 원기왕성하던 시절에는 혼자서 전국을 떠돌기도 했으나, 이제는 외지에서 홀로 걸으면 적적하고, 밤이 되면 숙박비가 아까울 따름이다. 솔로 생활의 낭만에 마일리지가 있다면 나는 적립해 둔 낭만을 이미 다 써버린 것 같다.
연차 사용 촉진 제도를 두고 있는 회사의 경영 방침에 따라 이번 여름에는 ‘여름휴가’라는 걸 모처럼 썼다. 하지만 어디를 같이 여행할 사람도 없고(집돌이 친구에게 넌지시 운을 띄워 봤으나, 주변 사람들이 다 여행 계획을 물어보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답변만 들었다), 굳이 혼자 여행을 떠날 만큼 통장 잔고가 풍족하지도 않아, 그냥 방콕행이다. 집에 있으니 해결하지 못한 인테리어 과제 백만 가지가 눈에 밟혀 사부작사부작 가구를 만들고, 미뤄둔 벽면 페인팅을 했다. 남는 시간에는 지쳐서 줄곧 게임만 했다.
여름휴가라는 걸 이렇게 보내는 게 맞나 싶어, 옷장에 박제되어 있던 하와이안 셔츠를 꺼내 입고, 지금 이 글을 쓴다. 며칠 인테리어를 준수하게 진행한 덕분에 나름 발리의 호텔에서 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난다(발리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창밖으로 지나는 자동차와 열차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서핑보드가 있다면 발바닥 아래에 받쳐두고 싶다.
내가 언제나 꿈꾸는 여름휴가는 사랑하는 이와 해변의 모래톱 위에 나란히 앉아 황금빛 석양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루 내 실컷 물놀이를 즐긴 탓에 우리는 꽤 나른해져 있고, 모든 언어 회로가 멈춘 채, 그저 있는 그대로의 태양빛을 침묵 속에서 흠뻑 머금는 것이다. 맞잡은 손과 손으로 다만 서로의 온기가 흐르고, 맥박이 맞춰지고, 영원히 밀려드는 파도 속에서 우리의 생이 지금 가장 빛나고 있음을 깨달을 때, 하나둘 별이 켜지며 캄캄한 우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말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저 우리가 우리라면 무엇이든 괜찮아.
아직 휴가 이틀이 남았지만 그 꿈이 실현될 일은 없을 듯하다. 이번 여름에는.
2025.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