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후 남은 것들...
작년 가을과 겨울즈음은 몸도 마음도 유난히도 시렸던 해였다. 무언지 모르게 허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잠이 안 오는 날이 자주 있었고, 핸드폰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튜브와 인스타 등을 보았는데, 그러다가 물건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인스타에서는 내가 필요한 것 아니 필요해 보이는 것들에 대한 광고가 떴고, 나는 그것들을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샀다. 난 쇼핑으로 허한 마음을 달랬다. 자꾸 물건들을 구매했다. 쇼핑은 잠깐동안의 쾌감을 주지만, 꾸준히 지속되는 만족감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잠깐의 즐거움이 너무 소중했다.
약간의 우울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증과 울증이 오고 가는 조울증을 앓고 있으니까. 표면적으로는 매우 행복했지만, 내면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가지게 되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난 적극적으로 쇼핑을 했다. '30대 여성에게 추천하는 3만 원~5만 원대 선물' , '자기 자신에게 주기 좋은 선물' , '가격대별 집들이 선물 추천' 등 유튜브에 검색하면 정말 많은 영상들이 뜬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상을 본다. 어떤 물건을 사야 하는지 낚싯대를 영상에 두고 낚아채는 것처럼 떨렸다.
많은 물건을 샀다. 겨울 향이 난다고 하는 딥티크의 고체향수, 발이 편하고 디자인이 예쁘다는 쿠에른, 유일하게 참석했던 크리스마스 모임의 드레스코드가 빨간색이어서 사게 된 빨간 귀걸이, 겨울에 여성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는 진주목걸이, 고급진 목욕 도구 사봉의 바디스크럽, 미용실 간 머리를 연출할 수 있는 다이슨, 화장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정샘물 쿠션, 작지만 있어 보이는 구찌 미니미한 가방, 집에서 럭셔리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에르메스 그릇까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비정상적으로 쇼핑을 하고 다녔다. 매우 적극적으로.
많은 물건들이 우리 집을 채우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점점 허기져갔다.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지 나의 기분이 괜찮아질까 고민하던 차에, 기부를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사는데, 어떤 물건은 내가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있는 돈의 가치보다 더 훌륭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은 필요한 곳에 내가 돈을 기부하는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스쳤다. 우연히 컴패션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사이트에 들어가자 3~4살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 떴다. 나에게만 한 시간 동안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인다는 이 아이. 한 번 고민했지만, 자꾸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렵게 검색한 끝에 다시 그 사진을 찾고, 기부를 시작했다. 이때가 2022년 12월 12일이었다. 기부를 시작하고 나서 나의 쇼핑욕구는 잠잠해졌다.
아마 돈이라는 것의 가치를 더욱 곱씹게 되지 않았나 싶다. 지구 한쪽 편에서는 내가 쉽게 쓴 돈의 금액으로 정말 필요한 음식이라던지 공부에 필요한 연필과 종이를 살 수 있는데, 내가 너무 함부로 돈을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쇼핑중독과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기부가 나의 기분을 구해주었다. 나에게 기분조절을 하는 건 너무도 중요한 일이니까. 어쩌면, 내가 기부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아이가 나를 도와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적은 금액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