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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10. 2024

정치 아닌 액션 영화, <탈주>

약간 오글거리지만 감각적이고 경쾌하다

<탈주> 스틸컷

<탈주>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영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을 연출했던 이종필 감독의 신작인데, 포스터나 예고편이 뿜어내는 심각한 분위기와 달리, 작품 자체는 감각적이며 경쾌하다. 영화 전반적인 톤은 어둡지만 주제 의식은 심오하거나 첨예하지 않고 보편적이다. 인물들의 뜀박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도착하게 되는 영화다. 그런 면에서 <탈주>는 정치 영화가 아니라 액션 영화로 분류된다.


빠른 리듬과 강조된 미장센이 흡사 코믹스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런 경향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도 드러났는데, 만화적인 스타일을 볼 때 (서로 다르긴 하지만) 이명세도 떠오른다.


북한을 배경으로 했지만 이는 우리와 다른 이질적인 세계, 그래서 현실적 요소를 세밀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는 어떤 세계를 설정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예를 들어 규남(이제훈)의 탈주가 남한에서 이뤄졌다면, 수많은 관객들이 저게 가능한지 아닌지를 세밀하게 판단할 텐데 <탈주>는 그런 위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 이종필 감독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도 과거를 배경으로 설정해 이 같은 효과를 거뒀다. 그러므로 <탈주>에서 북한은 정확히 알 수 없고, 그래서 영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한다.


이런 배경에서 '탈주'는 보다 보편적인 가치로 부상한다. 나의 운명을 스스로 정하기 위해, 그것이 가능한 땅에 닿기 위해 목숨 걸고 감행하는 숭고한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탈주>는 그 행위의 가치보다는 역동성에 주목하는 영화다. 사실 "내 운명은 내가 정한다"는 규남의 말이 새롭고 날카로운 울림이 되기는 어렵다. 개인에 따라 감동은 다르겠지만, 그것은 누구나 끄덕거릴만한 명제에 그치며, 영화가 진짜로 집중하는 것은 그 말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 규남이 감행하는 질주, 그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영화가 탈주의 의미를 감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넣은 장면이 사족이라 느낀다. 그건 운동하는 모습이 매력적인 선수에게 억지로 시를 써서 낭독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양새라, 오글거리기만 할 뿐이다.

<탈주> 스틸컷

주연 배우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훈은 단단한 몸과 눈빛으로도 열연하며 제 몫을 해낸다. 이제는 <건축학개론>이나 <파수꾼>에서 묻어나던 배우 날 것의 느낌 보다 스타의 아우라가 더 짙게 느껴지는데, 다음 작품쯤에는 이전의 야성을 다시 보여줘도 좋을 것 같다.  


구교환은 섬세하고, 영리하며, 잔인하고, 장난기 흐르는,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매우 침착해서 더 잔인해 보이는 캐릭터를 환상적으로 소화한다. 여러 레퍼런스가 보이지만 그것들과 또 다르다. 그는 충무로의 보석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이솜은 이전과 다른 매력을 펼쳐내며 준수한 연기를 보여주는데, 캐릭터를 둘러싼 서사와 연출이 정치하지 못한 탓에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 있다. "요이땅"도 그렇고 이솜은 연출자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설정을 맡겨보고 싶게 만드는 연기자인가 보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LTNS>나 <소공녀>처럼 현실의 바닥에 발붙이고 있는 캐릭터 만날 때 가장 연기를 잘했다. 배우의 외양과 재능의 장르가 상이한 경우서, 작품을 고를 때 이런 면을 고려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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