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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23. 2024

<멜로가체질>의 발랄함은 어디가고 <닭강정> 무슨일인가

<닭강정> 포스터


솔직히 <닭강정>은 그러니까.. 음.. 별로다. 

어떻게 아름답게 돌려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때로는 간결한 쪽이 진실이다. 미안한데 그냥 별.로.다. 이놈의 주둥아리는 욕먹을 거 뻔히 알면서 또 못 참고 나불거린다. 하지만 할 말은 하고 살자. 나는 <닭강정> 지지자들의 의견을 존중한다(게 중에 바이럴도 있는 것 같지만). 하지만 "이 작품이 호불호를 타지만 잘 맞는 사람에게는 재밌다"는 쉴드는 너무 온정이 넘쳐서 힘이 없다. 이건 어느 작품에나 적용되는 말이니까. 그러니까 <극한직업>, <멜로가 체질>과 비교할 때 이병헌은 거의 감을 잃었다 해도 좋을 정도로 투박하고 지루해졌다. 


미리 깔아 두자면 이병헌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나는 이병헌이 지금 한국 영화계에 별로 없는 개성 있는 감독이라 느낀다. 그의 작품은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를 적당히, 비율만 달리해서 섞은 다음 개성 있다고 주장하는 다른 작품들과 다르다. 특히 말맛이 독창적이다. 그래서 좋아한다.


말이 나와 말인데, 지난해 <드림>이 "재미없다"는 악평을 무수히 받을 때도 나는 침을 튀기며 작품을 옹호했다. 이 영화가 재미없어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이병헌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고. 그럴만한 이유와 철학이 있었다고. 왜냐면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작품을 많이들 보지 않은 탓인지 글도 별로 안읽더라(https://brunch.co.kr/@comeandplay/890). 그러고 이제는 <닭강정>에 대해 '정말로' 생각하는 바를 말하려고 한다. 



같은 시리즈물이니까 <멜로가 체질>과 비교해 보겠다.  

다시 봐도 <멜로가 체질>의 연출은 명확히 세련됐다. 세련됨은 절제에서 온다. 이를테면 은정(전여빈)이 남자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파하고, 그를 잃는 과정은 꽤 잔잔하게 그려진다. 특별한 소동이 없고, 호들갑 떨지 않는다. 그러나 잔잔한 가운데 숨겨진 말과 행동이 감정을 아프게 전달한다. 이를테면 유니세프 영상을 보며 배시시 웃는, 맥락을 벗어난 은정의 모습은, 그녀가 여전히 상처에서 허덕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장면에서 둘의 진솔한 대화를 관객에게 들려주지 않고 생략하는 연출도 그렇다. 이병헌은 마치 같이 있으면 재밌고 좋은데 말수가 적어서 애타게 만드는 친구 같은 매력이 있었다. 

<극한직업>의 경우 특유의 유머 있는 각본과 속도감 있는 연출로 '이병헌표 코미디'를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이다.


그런데 <닭강정>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일단 유머에 대해 말해보자. 이병헌은 인터뷰에서 수차례 <닭강정>은 재미를 확실히 보장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개그가 너무 고차원이라 이해를 못 한 건가? 근데 이병헌은 고차원 어쩌구를 제일 싫어하는 작가 중 하나잖아. 그는 직감적이고 귀여운 언어와, 엉뚱한 맥락에서 나오는 웃음을 선호한다. 그런데 <닭강정>의 유머들은 예상보다 너무 쉬워서 썰렁하거나,  너무 나가서 당혹스럽다. 그의 유머들은 관객의 과녁에 맞지 않고 자꾸만 엉뚱한 곳에 가 박힌다. 

그리고 묘하게 관념적으로 바뀌었다. 극사실주의적이던 예전과 다르다. 이건 현실적인 작품을 만들다, 성공해 버린 감독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친구들과 방구석에서 뒹굴며 서로의 한심함을 애정 어리게 관찰한 작가만의 현실적이고 사랑스러운 유머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귀로 들은 소재들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조합한 듯한 공상적이고 현실감 없는 개그가 출몰한다. 보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리고 촌스러워졌다. 

자꾸만 <멜로가 체질> 다시 보라면서 뇌절할 때 경악했다. 될 대로 되라던 예전의 시크함은 어디 간 거야. 이병헌의 작품에는 잃을 것 없는 젊은 인간들의 패기가 있었다. 저는이런게조크든요 같은 태도랄까. 그런 태도는 다소 어리고 유치해도 세련돼 보였다. 그런데 <닭강정>은 전반적으로 질척대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그 질척임 안에 히트작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도 엿보인다. 초조함에 질척대는 작품은 멋지지 않다. 내일이 없을 것 같이 살던 젊은이는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외계+인>을 만든 최동훈도 그렇고, 재기 발랄하던 감독이 대규모 투자를 받으며 경직되는 경우야 너무 많다. 하지만 <닭강정>은 그걸 넘어 아예 '이 감독이 이제 감을 잃었나?' 싶은 부분들이 있다. 이병헌의 욕심이 정도를 넘은 것인지,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주려다 너무 나가버린 것인지, 아니면 (가장 안 좋은 경우로) 진짜 감을 잃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지금 초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숙과 다르다. 좋은 작가는 시간이 흐르며 완숙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지킬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좀 변한 듯 보인다. 이병헌이 자기 만의 발랄함, 냉소, 까끌까끌함, 그걸 감싸는 귀여움을 다시 찾길 바란다. 그럴 수 있는 감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시간이 중요한 것 같다. 


+ 최근에 국가대표 감독 작품에 한국 대표 아이템을 홍보하듯 끼워 넣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우리 그런 거 하지 말아요. 두유노우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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