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가 되다.
"너, 이만큼 살 돈은 가지고 왔니?"
"네."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주먹을 내밀어, 위그든 씨의 손바닥에 반짝이는 은박지에 정성스럽게 싼 여섯 개의 버찌 씨를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위그든 씨는 잠시 자기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한동안 내 얼굴을 구석구석 바라보는 것이었다.
"모자라나요?"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나서 대답했다.
"돈이 좀 남는 것 같아. 거슬러 주어야겠는데……."
그는 구식 금고 쪽으로 걸어가더니, '철컹' 소리가 나는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는 계산대로 돌아와서 몸을 굽혀, 앞으로 내민 내 손바닥에 2센트를 떨어뜨려 주었다.
‘이해의 선물’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나서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중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소설을 떠올렸다. 30년이 지났어도 그 당시 떠올렸던 사탕가게의 달달함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손님이 처음 카페에 들러서 했던 행동은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했다. 손님은 원두 진열대의 제일 처음에 놓여 있는 예가체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있는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바자와까지 원두 봉투를 하나씩 들어서 꾹꾹 눌러보았다. 손님이 두 손으로 원두 봉투를 인정사정없이 힘껏 쥐어짜는 바람에 원두 봉투는 다 구겨져서 보기 흉하게 되었다.
“아! 나는 커피 마시는 것보다 이 향기가 너무 좋아요.”
많은 소비자들이 아로마 밸브에 코를 갖다 대고 원두 고유의 향을 맡아보며 환성을 지른다. 누구든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닿아 있는 모든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두를 구입하기 전에 맛 뵈기로 제공받는 서비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래의 용도는 그렇지 않다.
커피 원두 속에는 로스팅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들어 있는데 로스팅을 한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배출이 된다. 갓 로스팅 한 커피를 1kg 이상 포장을 한 다음 완전히 밀봉을 해 버리면 원두에서 나온 이산화탄소가 봉투 속에 가득 차 배송과정에서 봉투가 터지는 경우가 있다.
원두를 구입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겠지만 원두 봉투에는 작은 밸브가 하나 달려있다. 그것을 ‘아로마 밸브(Aroma Valve)’라고 부르는데 원두 봉투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봉투 밖으로 배출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아로마 밸브는 봉투 밖의 공기가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는 원 웨이(One Way) 구조로 되어 있어 산패를 막아준다.
손님들이 커피 향기를 맡느라 원두 봉투를 심하게 누르면 봉투가 보기 흉하게 찌그러진다. 카페 오너 입장에서는 무척 속상한 일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봉투의 형태를 훼손하지 않을 정도로 지그시 눌러 향을 맡아야 한다.
나 또한 처음엔 원두 봉투를 구겨 놓고 그냥 가버리는 손님들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안이 될 커피를 아무렇게나 다루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손님에게 대놓고 화를 내거나 질책을 할 수도 없었다. 손님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안할까를 생각하면 그냥 내가 찌그러진 봉투를 일일이 펴면서 마음 수양을 하는 게 낫다 싶었다.
“봉투 만지면 사야 되는데요?”
위그든 씨처럼 거스름돈까지 내어주는 만큼의 배려는 아니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재미있는 농담을 시작으로 봉투를 괴롭히는 손님들에게 조심해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렇게 한번 같이 웃고 나면 손님의 행동은 달라진다.
인간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 멜로디와 가사에 묻어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떠올린다. 울고 웃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동안 꼭 곁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이다. 커피는 좋은 감정들을 소환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커피가 매개가 되는 일과 인연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늘 바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