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보는 꿈을 자주 꾼다. A4 용지에 깨알처럼 쓰인 글을 읽어보려 하지만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다. 어쩌면 글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이걸 읽지 않으면 시험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마음처럼 잘 읽히지 않는다. 뿌연 연기가 내 눈을 가리고, 어떤 큰 손이 몸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느낌이다. 어느 날은 연주를 준비할 때도 있다. 대부분은 실제로도 칠 줄 아는 드럼을 연주하지만 전혀 접해보지 않은 악기일 때도 있다. 연주할 악기의 종류조차 모를 때도 있지만 연주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상태로 꿈이 시작된다. 악보가 놓여있다. 이 곡을 완벽히 연주하기 위해서는 연습을 해야 하지만 시간만 속절없이 흐른다. 그렇게 연주가 시작되고 시험이 시작된다. 그러나 곧, 원하는 대로 손발이 움직이지 않은 채로 혹은 백지에 답을 적지 못한 채로 연주와 시험이 중단된다. 꿈에서 깬다. 꿈이라서 안도한다.
시험에 관하여 지금도 생생한 기억은 고등학교 1학년 첫 수학시험이었다. 그때까지는 수학 시험에서 어떻게든 제 시간 안에 문제를 모두 풀어냈다. 풀었는데 틀릴지언정 시간이 부족하거나 아예 접근조차 못하는 문제는 없었다. 시험 시간이 끝나가면 답을 알려주는 수학의 신이 내 뒤에 있는 것처럼 언제나 답이 적힌 시험지를 제출했다.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던 문제도 시험 시간이 5분쯤 남으면 약속대로 머릿속에 한줄기 빛이 비치면서 풀이가 생각났다. 자신감이 넘쳤고 뿌듯했으며 풀어내는 과정에 기분 좋은 스릴을 느끼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수학시험에서 남아있는 몇 문제를 끝내 풀지 못했다. 수학의 신이 약속을 어겼다. 시험에 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인지도 몰랐다.
진료를 잘하고 있는지, 좋은 남편이자 아빠이자 아들인지, 읽을 만한 글을 쓰고 있는지까지. 매 순간 시험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혹 누군가 나를 평가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나에게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강박적으로 시험 보는 꿈을 꾸고, 아무도 평가하지 않을 내 인생을 스스로 채점하고 있다. 꼭 봐야 하는 시험이라면,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면, 완벽하고 싶은 욕심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수학의 신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
시험 보는 꿈은 언제나 두렵고,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느끼는 무력감에 몸서리치며 깨어난다. 오늘도 꿈이라서 안도했지만, 문득 그런 내가 측은하다. 시험 보는 꿈은 이제 그만 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고생했다는 한 마디가 필요할 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