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는 운동회를 하면 꼭 달리기를 시켰다. 5명 정도로 조를 나누어 50m쯤 되는 거리에서 시합을 하는 것이다. 내 기억에는 내가 꼴찌가 아니었던 날이 거의 없다. 제발 나보다 한 명이라도 느려서 꼴찌만은 아니길 바랐지만 그러려면 반에 한두 명쯤 있기 마련인 가장 뚱뚱한 친구나 최고로 연약한 친구와 같은 조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나보다 느린 친구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마음은 한 마리 치타처럼 누구보다 앞서 뛰고 싶었지만 다리는 뻣뻣한 기둥이 되어 땅바닥을 쿵쿵 찍으며 힘겹게 나아갈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조금 더 잔인한 달리기를 시켰다. 적어도 나에게는 잔인했다. 1년에 두 번쯤 '체력장'이라는 이름으로 1600미터 달리기를 시키고 고등학생으로서 적당한 체력을 가지고 있는지 평가했다. 지금 생각하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건강한 일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1600m를 달리는 게 죽을 만큼 싫었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 땀냄새를 풀풀 풍기는 남자아이들 20~30명이 우르르 무리 지어 달렸고, 나는 시간이 갈수록 뒤로 처졌다. 1600미터를 완주하는데 10분이 넘게 걸리고도 운동장 바닥에 쓰러져서 숨을 헐떡였다. 나보다 늦게 들어오는 친구들은 (역시나) 반에서 가장 뚱뚱하거나 아픈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르고 허약한 친구들 뿐이었다. 당시에는 내 기록에 흙먼지 한 톨만큼의 관심조차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뛴 게 아니라 걸었다고 볼 수 있는 부끄러운 속도였다. 겨우 1600미터를. 고작 1마일을!
달리기의 역사는 바쁘고 정신없던 20대를 훌쩍 뛰어넘어(20대에는 제대로 뛰어본 적조차 없다는 말이다) 늦은 군생활 시절로 넘어간다. 의사면허시험에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과정, 전문의시험까지 모두 마치고 31살이 되던 해에 군입대를 했다. 첫 해에 가게 된 부대는 강원도 고성에 있었다.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속초에 살던 나는 출근길에는 설악산과 울산바위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고 부대에 도착하면 동해바다를 보았다. 산과 바다와는 상관없는 내륙의 도시에서 초, 중, 고, 대학교에 병원 수련까지 모두 마친 나에게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 특히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은 그간의 모든 스트레스와 피로를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곳에서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 일이 없어서 달렸다. 5시 반이 퇴근인데 4시만 되면 모든 군인들이 '체력 단련'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환자들조차도 4시에는 체력 단련을 하는 듯했다. 진료가 없다고 혼자 텅 빈 의무실에 앉아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며 있을 수는 없었다. "군의관님도 같이 뛰실래요?"라고 누군가 묻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부대 운동장에서부터 뛰기 시작하여 부대 밖으로 나가 주위를 빼곡히 둘러싼 숲길에 들어섰다. 키카 크고 파릇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더운 낮에도 선선했다. 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와 새와 벌레 소리, 그리고 우리의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키가 큰 나무들이 사라지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드넓은 논과 밭길로 접어들었다. 짠 바다내음이 묻어있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바다를 향해 달렸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길에서는 뱀, 너구리, 고라니 등 여러 동물들을 만났다. 처음 겪는 자연에서의 자유로움. 바람과 햇빛과 나무와 함께 뛰는 듯한 기분. 뛰는 일이 이토록 황홀한 일이었나.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달리기 시작했다. 뛰고 또 뛰었다. 부대에서는 4시만 되면 칼같이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몸을 사리는 추운 겨울에도 뛰었다. 휴일에는 바닷가로 호숫가로 산길로 달리러 나갔다. 강원도를 떠나 다시 원래 살던 도시 근처로 돌아왔을 때도, 군생활을 마치고 수도권에서 전임의 과정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내가 이렇게까지 뛸 수 있는 사람인지 미처 몰랐다. 언제 뛰어도 10킬로미터 정도는 거뜬히 뛸 수 있는 몸이 되었고 1600미터는 6분 정도에 뛸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을 꼽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무조건 들어가던 달리기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약점을 극복해 내겠다는 불굴의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자연을 만나지 못했다면 뛸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자연에게 고맙다. 나의 등을 떠밀어 주던 바람과 멀리서부터 듬직하게 지켜보던 산. 최고의 러닝 코스를 제공해 주던 바다와 호수. 곳곳에서 응원(?)해주던 동물들. 시작이 어찌 되었든 못하던 일도 꾸준히 계속 하니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선가 듣기로 요즘은 운동회를 하면 순위를 매기는 달리기 같은 경기는 잘 안 한다고 한다. 순위가 안 좋으면 아이들이 실망하고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어서라나. 말이 되나 싶다가도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가능한 발상이지 싶기도 하다. 운동회에서 하는 달리기 같은 사소하고 (조금 심한 말로는) 하찮은 일에서조차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이제 어디에서 그런 걸 배울 수 있을까.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 말이다. 꼴등을 해봐야 일등도 하고 싶어지고, 죽도록 싫던 달리기를 사실은 내가 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할 텐데. 어린 시절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오히려 나는 달리기를 잘하게 된 내가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나 보다 싶다. 모든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저 매일 달렸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