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이 Dec 24. 2018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니까"

[브런치 무비패스] 그린 북(Green book), 2018 







 흑인, 유색인종에게는 생존 지침서로 불리는 책이었다. 영화 제목인 '그린북'을 처음 들었을 땐 초록색이 본래 가지고 있는 느낌처럼 긍정적이고 유쾌한 스토리의 책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린북이 흑인들에게 미국 땅에서 살아가며 생존서와 같다는 내용을 알고 나서는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지침서인지, 그 당시의 상황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을 공개적으로 차별했다. 특히 남부로 갈수록 흑인 차별은 심했다. 흑인을 보면 무조건 때리는 백인, 밤에는 흑인은 돌아다니면 안 되는 마을, 심지어 해가 지면 백인이 흑인을 공격하는 일몰 마을도 있었다고 한다. 


 그린북은 미국 뉴욕의 한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흑인 빅터 그린이 제작한 책이다. 원래 제목은 '흑인 운전자를 위한 그린북'이다. 자신의 이름을 따와서 그린북이라고 지었다. 흑인 집배원들로부터 자료를 얻어 흑인들이 여행 중에 갈 수 있는 식당과 숙소, 주유소 등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차별 속에서 흑인들에게 이 책은 생존서였다. 





 영화는 백인과 흑인, 두 주인공의 로드무비 형식이다. 백인인 토니는 이탈리아계 출신으로 클럽에서 일하며 먹고살기 바쁜 소시민이다. 반면 흑인인 셜리 박사는 유색인종이지만 천재 피아니스트로 상위 1%의 삶을 살아간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 백인, 가난한 흑인과는 반대의 설정이다. 하지만 겉모습만 동떨어져있지, 진짜 내면의 삶의 모습은 역시나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였다. 


 셜리는 상위권 삶을 사는 사람이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비난과 차별을 받는다. 그때마다 참고 또 참는다. 그리고 그는 흑인 차별이 악명 높은 남부로 자신의 공연 투어 일정을 떠난다. 흑인 차별이 심한 곳에 왜 갈까? 돈을 벌러?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니까"


 백인에게 흑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용기를 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 용기를 내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셜리 박사였다. 이 용기 있는 투어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성질 있는 백인,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한 게 바로 토니였다. 





 그들의 자동차 여행은 유쾌했다. 흑인과 백인처럼 서로 다른 모습을 서로 교환하고 공유하면서 지내는 모습이 이어진다. 귀족같이 깔끔하고 예의 있는 식사예절을 가진 셜리 박사에게 차 안에서 KFC 치킨을 먹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토니는 손으로 뜯어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며 셜리에게 치킨을 건넨다. 그렇게 타인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싫어했던 행동을 도전해보는 장면, 자신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우정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셜리 박사가 글솜씨가 없는 토니를 위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고쳐주는 장면도 인상 깊다. 서로 상대방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알려주고, 따라가는 그들의 모습이 유쾌하게 그려졌다. 사실 영화 초반부 토니는 흑인들이 입을 댄 컵을 버릴 정도로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이 심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덧 흑인, 백인이라는 이등분적인 논법에서 벗어났고, 같은 동료이자 친구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자꾸 말썽을 일으키는 토니,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하기는커녕 큰소리치는 셜리 박사.. 둘 사이에 갈등은 비 오는 날 최고조를 이뤘다. 


 셜리 박사는 토니에게 말했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나는 1% 상위 생활을 영위하며 천재 피아니스트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 자신도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내 음악을 백인 부자들이 듣지만, 나는 헛간 같은 화장실을 써야 하고, 백인과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으며, 가족과 연락도 끊기도 성 정체성도 뚜렷하지 않아 동성애도 한다. 셜리는 누구일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소리치는 셜리를 보며 토니도 생각이 많아진다.


 마친가지로 셜리도 백인이지만 이탈리아계 이민자였고, 클럽 문지기 생활을 하며 배우지 못한 사람으로 가족의 생계를 챙기기에 바쁜 사람이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셜리 박사가 흑인들만 찾는 로컬푸드 음식점에서 흑인들과 함께 공연하는 모습이었다. 상위 1% 돈 많은 귀족들 앞에서만 근엄하게 피아노 실력을 뽐냈던 셜리 박사, 자신과 같은 흑인들은 미국 땅에서 천대받으며 잘 먹지도 생활하지도 못한 채 밭을 일구고, 거지처럼 살고 있었지만 그들을 외면하기만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흑인 레스토랑에서 흑인들과 함께 멋진 공연을 하며 미소를 보이는 셜리 박사, 그동안 자신의 진짜 모습을 거부하고 역차별하며 살아왔던 게 아닐까.

 흑인을 어마 무시하게 차별하는 남부로 투어를 간 것도 용기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이자, 동료, 같은 흑인들과 함께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그들과 어울려 공연한 모습도 용기였던 같다.  


 영화 끝자락 크리스마날, 셜리는 숨소리 하나 없는 자신의 대저택에 가만히 앉아있는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토니의 집으로 향한다. 토니의 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셜리 박사를 환호하고 반겨주며 파티가 다시 시작된다. 항상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했고, 흑인 차별을 없애기 위해 용기 있는 투어를 나섰던 셜리 박사.  그의 용기가 많은 백인의 마음도 바꿨지만, 자신의 마음도 바꿨다고 생각한다.





그린 북 (Green Book), 2018

미국, 드라마, 130분

감독: 피터 패럴리

배우: 비고 모텐슨(토니 립), 마허샬라 알리(돈 셜리)


매거진의 이전글 보스독!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