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또 이 빌어먹을 감정이 돌아왔다.
요즘은 좀 잠잠한가 싶었는데, 결국은 다시 돌고 돌아서 원점이라는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할 따름이다.
아 혀 끝에서 네 이름 석자가 맴돈다.
핏빛이 아릿하게 전해져 오면서 계속해서 꽉 깨물게 되는 내 어금니 사이로 미처 말하지 못한 말들이 계속 맴돌아버린다.
묻고 또 묻으려 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이 떨쳐지지를 않는다. 상담이라도 받을까 싶어 빙빙 돌다가도 또다시 나만 상처를 받고 괜한 약점이 잡힐까 두려워 다시 닫는다.
너를 만난 이후로는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는데. 왜 이제는 모든 걸 다 이룰 수 있는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뿐인데.
왜. 왜. 왜. 이제 와서. 결국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은 느낌은 뭘까.
우울에 점철된 내 얼굴을 네가 몰랐으면 좋겠다. 내 속이 잔뜩 타들어가서 공허해졌다는 걸 너에겐 숨기고 싶다.
내 마지막 말들이 네게는 닿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게 내 마지막 단어들이라는 걸 넌 몰랐으면 좋겠다.
네가 내 장례식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울지 않고. 나를 차라리 잊어버리면 더 좋겠어. 네가 힘든 건 싫어. 네가 날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르겠어.
이러다 또 잠잠해지겠지.라고 스스로 되새겨본다. 다시금 고요해진 밤 사이로 눈이 충혈된 채로 밤을 지새우고 싶다.
입에선 아직 네 이름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그러면 정말로, 떠날까 봐.
널 만나 아름다웠던 세상이 다시 잿빛으로 물들어간다. 너무 오래 안 봐서 그런가. 네가 보고 싶다.
색채가 사라진 밤은 그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