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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랑 Aug 25. 2020

감정의 말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나는 당신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너무... '무섭고 아프고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만 같고 나만 없으면, 차라리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하는 그런 감정들이 뒤석여서 나를 좀 먹는다. 


물론, 당신은 그저 기분이 나빠서, 오늘 하루가 좋지 않아서, 마음에 안 드는 무언가가 있어서 - 나도 안다. 

당신은 지금 매우 답답하고, 화가 나고,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기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소리가 나를 겨냥해서 날아온 게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꽉 닫힌 방문을 넘어서 들어오는 그 소리에 순간 소름이 돋고, 긴장이 된다. 

쓱 쓱 당신은 그저, 그냥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주변을 맴돌다 갔을 뿐인데 나의 손은 벌써 물기로 가득하다. 

벌벌 떨리는 내 몸을, 순간 숨이 턱 막혀 버릴 정도의 공포심에 휩싸인 나를 보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차라리 내 눈이 멀고, 귀가 안 들렸으면 한다. 겁먹은 개새끼처럼 당신의 숨소리 하나하나에 반응을 하는 것도 너무 지치는 일이다. 당신의 기분의 대상이 내가 아님을 알면서도 굳어버리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쭙잖은 변명이다. 이건 그냥 내가 나약해서 그렇다. 내가 너무 예민하고 과민 반응을 하는 것이다. 


그냥 오늘 하루가, 하필이면 참 많은 것이 일어난 오늘에 당신의 감정의 말이 나를 상처 입힌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그냥. 내가 당신에게 숨기는 것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당신의 감정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내가 너무 싫다. 


차라리 당신이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으면 한다. 꽉 닫혀있는 나의 문을 열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애초에 그냥 내가 느낄 수 있는 거리에 없었으면 한다. 아니 아예 내가 나가는 게 맞을 것이다. 당신이 안 보이는 그런 곳으로. 


당신은 항상 당신 기분이 우선이었다. 아니 당신의 멋대로 되지 않음에 당신은 화를 내곤 했다. 

다만 당신은 내가 통제되지 않음을 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별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언제까지 당신의 감정에 맞춰야 할까. 


나는 만능이 아닌데. 왜 나에게서 당신이 해결해야 할 것 들을 찾는지 모르겠다. 그건 나의 역할이 아닌데. 

물론 하려면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도 나에게 그만큼을 바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기 싫다고 할 수 없는 이 관계가 너무 싫다. 


문 밖으로 웅성거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싫다. 


당신의 감정이 날이 되어 그게 나를 향하지 않더라도 내가 긴장하는 게 싫다. 

결국 나는 내가 싫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하던데.

싫다고 말 못 하는 내가 싫은 것이다. 


헛구역질이 나는 순간에, 나는 또 구석에 잡아먹혀버린다. 

차라리 그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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