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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씨 Mar 25. 2020

불편함에 대하여

살림공부 02

시골로 이사를 와서 첫 가족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바로 악취! 분뇨로 인한 악취 때문이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갈 쯤이면 서서히 퍼지는 분뇨 냄새로 인해 연필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문을 열지 못하는 불편함은 더위를 참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쾌적한 공기를 바라며 내려온 시골살이의 로망을 단 몇 초 만에 산산조각 내는 것이었다. 집을 알아보면서 하룻밤을 자보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었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집주인도 공인중개사도 알려주지 않았던 이 사실이 우리를 괴롭혔다.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컸던 나는 동네를 오고 가며 돈사와 우사에서 퍼지는 분뇨 냄새와 습도가 높거나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퍼지는 농약 냄새를 자주 맡곤 했다. 결코 유쾌하지도 좋지도 않은 그 냄새를 어느 정도는 당연하게 여겼다는 걸 연필과 이야기하며 알게 되었다. 시골은 당연히 도시에 비해 공기도 맑고 좋을 것이라는 건 편견이었다는 진실에 연필은 꽤나 놀랐다. 내가 소리에 민감한 청각남(?)이라면 연필은 냄새에 굉장히 민감한 후각녀(?)이다. 장을 보다가도 전방 100m 앞에 있던 꽃게 냄새를 캐치하는 개코를 지닌 그녀에게 새로운 집의 냄새는 굉장히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 한들 지금 당장 짐을 빼서 다시 이사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는 답이 나올지 모를 대책을 찾아 어떡하면 좋을지 이야기했고 이 지역의 '냄새'에 대해 인터넷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찾다 보니 '완주'는 전국에서도 미세먼지가 많은 지역 중 하나이고.... 산업단지에서 발생되는 화학물질에 의해 대기, 토양, 수질오염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산업단지네 폐기물을 무단으로 처리하는 문제가 지역의 주요한 이슈이기도 했다. 산단이 근접한 지역의 사는 주민 중에서는 아이들이 코피를 흘린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으며 이런 이야기는 임신한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는 큰 걱정거리기도 했다.


'불편'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을 하거나 무엇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고 번거로움' 또는 '거북하거나 괴로움'이다.  '고통'과는 무엇이 다를까? 고통의 사전적 정의는 '몸이나 마음의 아픔이나 괴로움'이라고 한다. 공통되는 것은 '괴로움'이다. 둘 다 외부적 조건,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자신과 외부와의 어떠한 작용을 드러낸다.

불편과 고통은 모든 개인에게 나타날 수 있지만 불편과 고통의 기원은 그리 짧고 좁지 않은 것 같다. 개인에서 가족, 사회, 세계로 그 끝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행복하기 위해 찾은 곳에서 불편과 고통을 마주하는 건 참 곤란한 일이다.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던 외부에 있던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동반되어야만 우리는 어떤 면으로든 좀 더 나아진다. 다행이고 고마운 건 지역에서 오랫동안 축사로 인한 오염과 악취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힘을 모아 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더 나은 마을, 지역을 위한 움직임이 생기고 만들어지는 것 같다. 개인적 해결이 아니라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화가 형성되는 듯하다. 불편과 고통이 개인 차원의 문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대개는 구조적이고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투쟁의 과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 창조의 과정이지 않을까. 멈춰 서서 불평하고 혹은 회피하는 게 아니라 마주하는 과정에서 나도 달라지고 관계도 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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