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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씨 May 15. 2020

출산예정일 D-8

살림공부04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책도 뒤적거리고 정보를 찾던 순간들을 지나 출산예정일이 8일 안으로 들어왔다. 임신 막달 또는 산달이라고 하는 기간에는 언제 아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니 예정일은 말 그대로 어떤 기준점일 뿐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그리는 우리에게는 마치 종착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유도분만을 하거나 날짜를 잡아놓고 제왕절개를 하는 것도 아니라 예정일 자체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많은 선배들이 말하듯 아기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 아이를 기다릴 뿐이다.


출산이 임박해 있으면서 연필과 내가 겪어온 임신 과정과 출산 준비 과정을 한 번 되짚어보고 싶다. '자연주의 출산'이라고 하면 한국사회에서는 굉장히 예외적인 출산 방법으로 여겨진다. 자연분만과도 구별되는 자연주의 출산은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산모와 가족이 출산을 주체적으로 끌어가고 만들어 간다. 무통주사, 유도분만, 회음부 절개 등 산모와 태아의 건강상태와 그에 따른 의료적 조치를 취하는데 기본적 정보와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게 일반적 현실이다. 병원을 통한  대부분의 출산은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에 의한 판단이 중요하고, 비의료인이자 비전문가인 출산 당사자들은 어떤 처치의 대상이 되곤 한다. 사실 이런 현실을 모두 나와 연필이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맘카페와 책과 자료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임신과 출산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의료진, 조산사, 둘라 등이 있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좋은 경험을 나누는 선배들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연주의 출산의 철학과 원리와 실질적 방법은 여러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엄마와 아이가 서로 호흡하며 만나는 과정이고, 두 존재 모두 그 과정을 멋지게 만들어갈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은 온전히 이 둘의 일이 아니다. 남편을 포함한 가족, 그리고 마을을 포함한 사회의 응원과 지지가 있어야 더욱 순조롭고 좋은 경험으로 자리할 수 있다. 임신과 출산이 고통의 과정이고, 차별과 배재의 경험, 사회적 단절의 순간으로 기억되어선 아무리 미화시키고 성스럽다 말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필에게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먼저 이야기했지만 내가 이 과정에서 주체적이지 않으면 연필에게는 결코 좋은 경험이 될 수 없다. 스스로 공부하고 알아가고 시도하지만 함께 하기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많다. 연필의 마음과 말이 나에게 전달되고 나는 또 무언가를 한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혼자서는 충분히 그 마음을 나누지 못하지만 내가 해야 할 기본을 생각한다. 모성본능이니 하는 이야기는 우스운 이야기다. 임신, 출산 과정을 엄마에게 모두 짐 지우는 지독한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엄마가 1억이면 그만큼의 다른 엄마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아빠들도 있다. 


타 지역으로 이주와 함께 시작된 임신,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와 소득, 가정 살림 꾸리기와 사회적 관계 맺기. 다양한 과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앞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출산은 다른 일들과 무관하게 자리하지 않는다. 임금노동, 사회생활, 가족관계, 친구와의 만남, 여가, 놀이, 가사노동 등 생활 전반과 모두 이어져 있고 생애 경험과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생각할수록 임신과 출산은 한 생명의 탄생이라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를 드러내고 관계를 뒤바꾸고 재배치하는 과정으로 느껴진다.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안전하면서도 행복한 경험으로 출산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경험은 출산 이후 신생아를 돌보고 육아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유지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우리 부부가 한 선택은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순 없지만 아이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가능한 우리 손으로 풀어나간다는 원칙이다. 그렇다고 모든 시스템과 유용함을 배재하자는 것은 아니다. 실제 아이를 돌보고 우리 가족을 살피고 돌보는 일을 익히고 즐겁게 해 나가기까지의 시간도 필요하다. 나 자신의 오랜 버릇도 잘 못 바꾸는데 하물며 새로운 일들을 매번 즐겁고 손쉽게 하진 못할 것이다. 


자연농 책을 읽고 텃밭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꾸며 씨앗에서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고 피어오르는 과정을 보노라면 그 작은 것에서 어떻게 저런 에너지가 있나 싶다. 자연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 덩어리이고 그 에너지를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자연에서는 그게 자연스럽다. 사람도 자연이다. 그래서 사람도 나고 자라고 나누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자연임을 잊은 사람은 자신에게 자리한 자연의 힘을 알지 못한다.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에너지를 느낀다면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감정은 많이 적어질 것 같다.


연필, 토리와 함께 호흡하고 서로 기운을 나누며 만나기를 기도한다. 이 출산이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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