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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씨 Aug 15. 2020

모자동실 하시게요?

살림공부06) 출산과정을 돌아보며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덧 86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정신없이 출산을 맞닥뜨렸는데 그 순간이 꿈처럼 지난 일로 남아있다. 그 사이 참 여러 일이 있었지만 가장 곤욕스러웠던 건 하나하나 선택하고 갖춰야 할 게 많다는 것이다. 닥치면 누구나 한다지만 우리의 선택은 단순히 물건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환경을 만들어갈지 고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건을 하나 사거나 마련하는 일도 간단치 않지만 우리 눈 앞에 놓인 선택들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가' 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출산 전 마지막 방문한 병원에서 조산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몇 가지 준비사항과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데


모자동실 하시게요?
모자동실 하시면 병원에서는 아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요.
온전히 부모의 책임입니다.
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왜인지 불쾌했다. 모자동실을 이용할 때 알아둬야 할 정보라기보다는 왜곡된 가치판단과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었다. 모자동실이 좋은지 안 좋은지 그래서 모자동실을 이용할지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다. 그 판단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법적 책임을 거론하면서 부모들을 겁줄 필요가 있을까? 산모를 위한다는 말이 병원 측 편의를 위한다고 해석되는 건 나의 착각 때문일까? 정작 따지고 보면 모자동실을 하지 않을 때 좋은 건 산모보다도 병원이 아닌가. 모자동실이 힘든 건 신생아를 돌보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령, 모유수유에 따른 어려움으로 인한 게 대부분이다. 이런 부분만 잘 안내해주고 함께해줄 사람이 옆에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조산사의 말과는 달리 실제로 모자동실을 이용할 때는 생각보다 케어 받고 아이를 돌보는데 중요한 몇 가지를 간호사들에게 배울 수 있었다.


누가 보면 유난스럽다 할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병원이었음에도 출산 후 모자동실을 선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산모의 휴식과 편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아주 일반적이고 대다수가 큰 고민 없이 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일반적이다 싶은 결정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다른 선택을 했다. 우리 아기가 태어날 즈음 태어난 친구 아기들이 16명 정도 되었는데 그중 두 아이만이 모자동실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했다. 그리고 그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우리 아이 었다. 다른 한 아이는 산모가 영국인이어서 그 나라 문화로는 신생아를 분리해놓는 건 생각할 수 없다고 전해 들었다. 어쨌든 첫 시작부터 유별난 선택으로 여겨졌고 병원에서도 필요한 만큼(기대 이상이긴 했지만) 아주 세세히 케어해주지는 않았다. 병원 입장에서는 신생아실에 아이들을 모두 두고 일괄 관리하는 것이 간편하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초점을 맞춰야 하는 곳에서 그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굳어져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엄마 뱃속에서 9개월가량을 지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휴식, 안정을 포기하고 아이의 정서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아이와 처음부터 함께하는 과정이 우리의 안정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아이와 처음부터 호흡을 맞추고 싶었다. 우리는 언젠간 마주해야 할 일들(그 소중한 순간들)을 미루지 않고 처음부터 함께하자고 약속했다. 출산한 방에서 모자동실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아이와 잠깐 떨어져 있었고 그 외에는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태어난 날 밤에 처음 태변을 보고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는 경험을 누구에게 맡기지 않고 오롯이 연필과 둘이 해냈다. (사실 분유도 먹이고 싶지 않았지만 잠깐 신생아실로 가 있는 동안 병원 측에서 임의로 분유를 먹였다.) 모유를 먹이고 아이를 재우고 하는 단순해 보이는 일들이 전혀 쉽지 않았고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병원에서도 모유수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안내나 교육을 해주지 않았고 부수적인 일로 여겨졌던 것 같다.


병원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우리 부부는 갓난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구나 가는 산후조리원도 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산후도우미도 쓰지 않고 온전히 둘의 힘으로 아이와 함께했다. 가족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아주 잠깐이었고, 생소하고 두렵기도 한 육아의 길을 안내해줄 길잡이가 딱히 있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유튜브를 찾아보며 그 순간마다 필요한 걸 찾기 바빴다. 그리고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마다,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는 짝꿍을 볼 때마다 이 순간 우리 앞에 있는 이 작은 생명을 잘 보고 느끼고 함께 하는 게 우리의 마음을 편안히 하는 일이라고 다짐하고 되새겼다. 누군가는 이런 우리 선택이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모만큼 자신의 아이를 더 잘 책임질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일들을 해내기 위해선 정말 많은 에너지와 의지가 필요하다. 녹록지는 않았지만 그 일들을 마주 보고 해온 짝꿍과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사실 모자동실이라는 말도 이상하다. 출산과정에서 남편을 '출산 동반자'라고 표현하면서 정작 출산 후 아빠의 자리는 없다. 모자동실보다 가족실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모자동실이 아닌 일반 병실에 있는 산모도 사실 환자가 아니니 병실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병원의 시스템과 관습이 그럴 뿐이다. '엄마', '아빠', '아기'가 모두 주체인 그 공간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게 표현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자동실에서 함께하며 엄마의 역할 못지않게 아빠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모성'을 강조하다 보면 '엄마'를 지치게 만들고 '아빠'를 주변부로 밀어내는 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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