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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옹 Mar 28. 2023

긴 긴 터널의 입구에 서다.

우울증과 ADHD 치료를 시작하며

내가 가진 병명을 진단받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어떤 가능성이나 농담을 할 수 없는, 나를 대변하는 규정된 보통명사가 됩니다. 그리고 나의 상태를 진정으로 인지하게 된 이후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을 회피조차 하지 못하고 온전히 느껴야 합니다.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거나 내가 걸어서 혹은 달려가 이 터널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리고 싶지만 불가능합니다.

사실 그렇게 할 방법조차 모릅니다. 그저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나는 ADHD 약도 함께 복용 중이어서 흐르는 시간과 그 시간만큼의 괴로운 여러 감정들을 더 선명하게 느끼고 있어요.


우울은 제 인생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것이라고 해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다니는 병원의 주치의 선생님께 상담치료(약 1시간)를 받고 있습니다. 처음 몇 번은 눈치를 봐가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해야 하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장면들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스몰토킹도 해보고 지겹고 뻔한 어린 시절의 힘든 시절도 곱씹으며 시간을 때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할 말이 없어 눈을 굴리기도 하고,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할지 리드해주지 않는 주치의 선생님께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든, 주변의 이야기든 모두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의 아이를 타자화하여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아직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하시더라고요.

저는 평소에도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르면 먼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상담시간에 제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끝까지.. 선생님은 그 침묵을 끝내주지 않으셨어요.

기억이 나게 된 이야기도 있고, 여러 번 이야기하게 되는 것도 있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너무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에 안정을 주는 약물을 추가해 달라고 했지만, 선생님께서는 겪어내야 할 감정을 약으로 누르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아 이 상담 시작 하지 말 걸... 솔직히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듭니다.


너무 힘이 드는데 이걸 어디에 적으면 조금 나아질까 지금은 그런 생각뿐입니다. 어떠한 성찰도 없이 우울하고 슬프고 화가 나고 억울한 감정들이 돌아가면서 저를 긁어요. 두통이 다시 시작되고 몸살 같은 고통도 찾아오고, 공황 비슷한 것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견뎌내고 있어요.


이 터널에 내가 내 의지로 들어왔고, 들어온 곳의 반대편으로 조금 걸어가면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가지 않을 겁니다. 이 길의 끝이 무조건 좋으리라는 법이 없는 것도 알아요. 더 힘들어질 수도 있고, 끝이 없거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이만큼 온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습니다. 아직까지는...


저도, 주치의 선생님도 모르는 이 긴 긴 터널의 끝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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