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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많은달 Oct 27. 2024

어쩌다 시작된, 나의 두 번째 직업

3화. 누구에게나 도전은 있다

2학기 기말고사를 끝으로 모든 과정이 끝이 났다. 사서교육원의 1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처음 이 과정을 시작할 때 1년이라는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진 게 무색할 정도였다. 마음 맞는 학우들과 수료 기념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우린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될 서로를 응원했다. 난 학교 도서관에 지원할 거라 말했다. 제법 어울린다며 다들 격려해 주었다. 2018년 2월 말 우린 빛나는 2급 정사서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3월 개학을 앞두고 교육청의 사서 채용은 일찌감치 끝나 있었다.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대신 학교마다 기간제 사서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사서의 육아휴직이나 병가휴직 등으로 결원이 난 학교였다. 초등학교 사서인 학우가 교육청 사서 채용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학교 경력이 필수라며 먼저 학교에서 기간제 사서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집 근처 채용 공고가 올라온 여섯 개의 학교에 이력서를 넣었다. 드디어 이 자격증을 써먹을 날이 오는 건가? 설레며 소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전화 한 통 오는 곳이 없었다. 면접은 고사하고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연락조차 없었다. 충격이었다. 누가 봐도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던 터였다.

자존감이 무너지다 못해 땅 밑 100미터 밑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자격증만 있으면 바로 학교 사서가 될 수 있을 거라 장담했던 게 부끄러워 남편에게 넌지시 말했다.

“나 학교 사서 안 할까 봐. 공공도서관 좀 알아볼까?”

“아니! 자긴 방학 있는 학교 사서 아니면 안 돼. 공공도서관은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문 열잖아. 더구나 저녁 9시까지 문 열고 있는 거 못 봤어? 자기 주말에 일할 자신 있어? 저녁 9시까지 일할 수 있냐고! 만약 자기가 공공도서관 간다면 일 년도 안 되어 그만둔다에 내 이름 건다!”

단호한 남편의 말은 기분 나빴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꺼져가는 자존심을 부여잡고 한 학기쯤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애써 웃어 보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을까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클릭했다.

"오은숙 씨죠? 혹시 3월부터 **학교 도서관에 나와 줄 수 있나요? "

다짜고짜 이럴 수는 없었다. 웬 보이스피싱의 변종인가 싶었다. 요것들이 내가 학교도서관 채용에 목말라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 속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채용된 분이 일 시작하기도 전에 그만두어 급하게 연락드렸습니다. "

미심쩍어하는 나와는 상관없이 남자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오늘 인수인계를 받으러 나오실 수 있나요?”

아니 뭐야! 진짜 나 채용하겠다는 거야?

“아, 가능은 합니다만, 그런데 전화하시는 분은 누구시죠?”

“아, 저는 **학교 교감입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깜박 눈을 감았다 떴다.

‘나 채용된 거야?’

이럴 때 장국영의 맘보춤이라도 춰야 하나? 아, 진심 추고 싶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학교로 향하면서도 긴가민가 믿기지 않았다. 서류 심사도 면접도 생략한 채 3분 남짓한 짧은 통화로 순식간에 채용이 되다니! 참,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날은 2월 28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삼일절이 끝나면 바로 개학이었다. 그러니까 개학을 바로 코앞에 두고 사서 자리에 공석이 생긴 것이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날 교감 선생님이 면접을 봤던 4명의 지원자에게 모두 연락을 했는데 다들 어딘가에 채용되어 사서를 구할 수 없자, 서류에서 탈락한 지원자들에게도 전화를 돌렸는데 딱 한 사람 나 혼자만 채용이 안 되어 있더라는….


인수인계를 해주던 사서가 그랬다. 학교에서는 무조건 경력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일반 회사처럼 사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1인 사서로 운영되는 도서관이 무리 없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경력 있는 사람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채용공고마다 ‘에듀파인 가능자’라고 쓰여있었다. 하지만 난 에듀파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누구보다 잘할 수 있습니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로 지원서를 돌렸던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그 경력이라는 것은 어디서 쌓으라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교육청 사서직에서는 학교의 경력이 필요하다 하고, 학교에서는 다른 학교의 경력이 필요하다 하고…. 대체 신입들은 어디서 경력을 쌓는 건가요?

인수인계를 위해 잠시 나온 사서에게 국가회계시스템인 문제의 그 ‘에듀파인’ 사용법과 1학기에 진행될 도서관의 일들을 인수인계받았다. 그렇게 난 반포의 한 초등학교에서 4개월짜리 기간제로서 첫 사서의 임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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