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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Oct 11. 2022

<Ep. 11> 글태이가 글 '밝히는' 여자가 된 이유

글을 밝히는 여자

11. 글 '밝히는 '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 쓰는 박태이는 글을 몹시 밝힌다. 맞다. ‘남자를 밝힌다.’할 때의 그 ‘밝힌다’는 의미이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바야흐로 20대의 박태이. 박태이는 후배의 권유에 이끌려 블로그를 개설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 편집부를 함께 했던 후배다.


태이와 후배는 교지를 만든다기보다는 릴레이 소설 같은 걸 쓰면서 함께 놀았다. 공부와 수다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던 학교생활에서 무언가를 쓴다는 건 모종의 놀이거리였다.      


TMI. 그때 태이는 이른바 쪽팅도 했다. 쪽지팅의 준말이다. 너무 라테 같은 얘기지만 해보겠다.


인근 남고 애들이 자신이 밝히고 싶은 신상과 자기소개가 적힌 쪽지를 적어서 주선자에게 준다. 그 쪽지를 걷어서 주선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인근 여고에 전달한다. 여학생 주선자는 다시 반에 와서 그 쪽지를 뿌린다.


 쪽지에는 표지도 없고 얼굴도 없다. 그저 운명이다.      


태이의 짝은 명구라는 한 살 더 많은 오빠였는데, 만나지도 않으면서 일 년 정도나 쪽지를 주고받았다. 우리 반에서는 가장 끝까지 갔다.


쪽지팅 주제에 제일 오래 가면 뭐한다고. 명구 오빠는 처음에는 빨간색으로 공포괴담을 적는 기괴함을 엿보이다가 몇 달 지나며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그런 공포괴담을 왜 씹지 않고 꾸준히 답장을 해주었는지는 나도 후회스럽다. 쪽지 한 장을 쓰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쪽지에 담긴 약간의 귀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건 쉽게 느껴졌다.  


   

명구 오빠는 고3이 되기 전 겨울방학에 이젠 공부에 전념해야 할 거 같다며 이제 쪽지를 그만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즐거웠다며 당시 유행이던 스티커 사진을 마지막으로 보냈다.


스티커 사진은 알다시피 유독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 안 예뻐 보이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게 특징인데


명구 오빠는 그만 그 사진에 속아 쪽지팅을 그만둔 걸 책상을 치며 후회했다고 주선자가 전해왔다.      


이 이야기를 세 문단이나 할애하면서까지 한 이유는 내가 그만큼 쓰는 걸 좋아했다는 거다.


지금은 다 버렸지만 초등학교 때는 더 줄기차게 편지를 받고 답장을 썼다.

싸울 때도 편지를 썼고, 화해할 때도 편지를 썼다.

방학에도 편지를 썼고,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간 친구에게도 편지를 썼다.

좋아하던 남자애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 속 글씨를 간직했다.


그 수많은 글들을 간직하고 , 또 간직했다.

활자들을 기억에 품었다.


알게 모르게 그런 방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 속에서 살아온 것도 같다.      



편집부에서 글쓰기를 했다고 하기엔, 별 거를 안 했다. 모여서 각자 쓴 걸 웃기다며 돌려 읽고 수다를 떨다가 헤어지고, 다시 모이곤 했다. 배우려고 한다거나 비평들은 당연히 없었다. 동아리로 할당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뭔가를 했을 뿐이다.


실력이야 항상 부족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즐거웠다.

쓰는 건 유희였다.

  

후배는 박태이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쓰자고 미끼를 던지면 졸졸 따라오는 인간이라는 걸 말이다.

아무리 자신에 대해 모른다고 말해도 자기가 재밌어하는 게 무엇인지는 다들 안다.


 블로그라는 좁고도 넓은 인터스페이스 안에서 태이는 한 문단씩, 때로는 두 문단씩 썼다. 박태이는 처음으로 글을 쓴다는 일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때 쓴 이야기들은 돌아보면 문장도 엉망이고 앞뒤도 없지만 풋풋하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딱 그만큼밖에 쓸 수 없었다. 그걸 혹자는 능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신 박태이는 거기서 남들의 글을 읽을 수도 있었다. 잘 쓴 글은 무엇이 다른가, 치밀하게 분석한 적은 없다. 잘 쓴 글은 그냥 읽으면 알게 되는 거였다.


그렇게 글은 늘 박태이의 곁에서 맴돌았다.  또한 박태이 역시 글 곁에서 맴돌았다. 

쓸모 없는 얘기 사이에서 쓸모 있는 얘기들은 존재했다. 

박태이는 생각했다. 재밌는 글들을 쓰고 읽으며, 이토록 글 밝히며 사는 인생 참 재밌겠다고. 




비유하자면 이렇다. 남자를 밝히는 일은 필요하다.

남자도 많이 보고 겪어보며 경험치가 쌓여야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서다.

수많은 실수도 없이 자기에게 맞는 좋은 남자를 만난다는 건

아무 조건도 갖추지 않은 채 행운을 찾기만 하는 일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숨은 고수들의 빛나는 글들이 태이에게 왔다.

태이는 재밌고 멋진 글을 탐내며 군침을 삼켜댔다.

글을 잘 쓰는 일반 사람들은 언제나 박태이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글이라 부를 수 있을 A4 1장을 쓰기까지 박태이의 앞에는

기다란 세월이 놓여 있었다. -22101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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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riter is born 이라는 매거진을 새로 개설했어요.

브런치북으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tae.i22 에서 더 자주 소통하고 있어요.

인스타 하신다면 놀러오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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