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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현 Mar 06. 2022

하느님, 보시기에 충분합니까?

납작납작 - 박수근 전시를 보고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한 두어달 전이었을까, 날씨가 좋아 덕수궁 근처를 걷다 애인으로부터 김혜순의 시를 소개받았었다. 시의 제목은 <납작납작-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신의 시점에서 인간은, 이 시에서 말하듯 납작하게 보일 것이라는 애인의 말에 나는 박수근의 작품을 보고 싶어졌다.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실제로 본 그의 작품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집요하고, 담백했으며, 답답했다. 답답함, 4개나 되는 전시관을 돌며 내가 느낀 감정의 중추는 답답함이었다. 우둘투둘 의도된 저화질의 작품들, 헝겊으로 닦아낸 색채들. 그러나 사랑하는 딸아이의 모습은 ‘어여쁜 색깔’로 선명히 그려낸 모습에 나는 그가 두려워한 ‘정신적 추위’의 실체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아낙들, 아동들, 농민들, 노인들은 대부분 얼굴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 인양 여겨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들에겐 무엇이 중요한 걸까? 인간에게는, 무엇이 본질인 걸까?


고화질의 필름과 여하 매끄러운 이미지들. 거기에는 상상력이 없다. 선명한 사진으로부터 전달되는 정보는 직설적이며, 해석의 여지는 그만큼 지워진다. 반면에 모호하고 불투명한 이미지일수록 해석의 여지는 증대된다. 그러므로 저화질의 세계는 곧 해석의 세계, 상상력의 세계이다. 이번 전시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사실주의부터 당대 유행하는 추상화까지 섭렵하는 박수근의 화가로서의 성장기를 볼 수 있었던 점이었다. 의도된 색채의 배제, 그리고 의도된 선명도의 저해를 통해 그는 대상에 대한 상상력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왜?


나는 50~60년대의 창신동 사진 몇 점을 둘러보며 그 시대의 모습을 상상했다. 대부분이 공터이며 폐허이다. 곳곳에 거칠거칠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다닌다. 그리고 지금의 명동 신세계 본점이 있던 곳에는 화려한 미군정 P.X가 있다. 선명하고 빛나는, 그리고 현실과 유리된 세계의 단면. 그 화려한 단면 속으로 들어가 오래된 초상화를 그리는 거칠거칠한 사람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는 왜 화려한 P.X의 모습이 아닌, 바깥의 거친 사람들을 그렸을까? 그것도 실제보다 더 불투명하고 낮은 해상도로.


전시장에 씌여있는 많은 글귀들 중에, 아래의 글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평범한 견해를 지니고 있다.”


선함과 진실함은 결코 선명하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명한 세계에는 선도, 진실도 없다. 그의 작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집요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느낀 답답함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살고 있던 시대는, 전후의 한국 사회에는 무엇보다 선명함이 절실한 시대였다. 이념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선명함이라는 명확한 답이 요구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는 반대로 향했다. 아주 평범한 견해로, 그는 흐릿한 보통의 사람들에 주목했다. 그건 풀이가 터무니없이 긴 해답 같은 것이었다. 제 생에 미처 마치지 못할 풀이를 시작한 것과 같았다. 여즉 끝나지 않은 풀이의 위에 선 후대인으로서, 나는 그게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 마땅합니까?

박혜순 시인은 이렇게 묻는다. 천지만물을 한 줄에 꿰어놓고, 가이없이 한없이 펄렁펄렁. 신이 보시기에, 가이없는 이 광경이 마땅하신지요. 먼 시점에서 우리의 모습은 납작할 것이다. 흐릿하게 보일 것이다. 겨우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눈덮힌 한겨울의 나무들처럼, 거진 뭉텅이로 비슷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신은 처음부터 세상을 선명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신이 선함과 진실함을 담지 한다면, 그는 흐린 눈으로 피조물들을 바라볼 것이다. 신의 사랑은 명확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으니. 납작납작, 박수근 화법처럼. 이제 나는 그의 작품에 담겨있는 답답하고 묵묵한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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