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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현 Mar 07. 2022

신은 왜 믿는 자에게도 고난을 주는가?

- 넷플릭스  <지옥> 과 테드 창, 욥기에 관하여 

0.

테드 창의 소설 <지옥은 신의 부재 Hell is the absence of God>은 ‘신’의 존재가 믿음이 아닌 객관적 사실인, 지옥이 존재하고 천사가 일상적으로 강림하는 어떤 세계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천사 강림은 지진, 폭풍우, 해일, 섬광과 같은 일종의 재난처럼 일어나지만, 동시에 기적 - 근방에 있던 사람들의 불치병이 치유된다거나 -을 동반하기도 한다. 지옥은 가끔 지상에 그 풍경이 펼쳐지는 식으로 보여지는데, 거기에는 불지옥이나 연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영원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이러한 세계에서 선천성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를 못 쓰는 주인공 ‘닐’은, 어느 날 천사의 강림에 휘말려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잃게 된다. 닐은 평범한 무신론자로, 평범하게 지옥을 가리라고 스스로 생각하던 인물이었다. 반면에 사라는 신을 믿어 천국으로 갔고, 사랑하는 사라를 다시 만나기 위해 닐은 신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신을 믿는 것은 의지로만은 되지 않는 법, 온갖 방법을 다 해본 닐은 점점 신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천사 강림 때 나타나는 천국의 빛을 보면 실명을 하게 되지만,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천사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알려진 ‘성지’로 향하고, 마침내 천사가 강림한다. 강림한 천사를 자동차로 추격하다 사고가 난 닐은 과다출혈로 죽어가지만, 그 순간 마침내 천국의 빛을 보고 두 눈을 멀게 된다. 그리고 이 세계에, 우주에 내려깔린 신의 사랑에 대해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제서야 닐은 존재하는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음을, 신에 대한 사랑이 의지가 아닌 존재 방식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앙자로 변모한다. 마침내 천국에 도달할 자격을 갖춘 닐은, 감격에 겨운 눈을 감으며 신의 섭리로 준엄히 약속된 그곳, 


지옥으로 떨어진다.


1.

연상호 감독의 <지옥>을 보았다. 지옥의 세계관은 테드 창 <지옥은 신의 부재>와 몇 가지 유사한 점이 있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신의 권능이 현현하고, 그로 인해 누구든 신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는 세계라는 점. 신의 권능이 징벌적 형태로 발휘된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는 (스포일러_드래그->) 권성징악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점.

영화 속 한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른 무엇도 아닌 불행 온전히 그대로 슬퍼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지옥>의 세계에서 불행은 신의 심판이라는 ‘의미’를 부여받는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지된 불행이 자신의 죄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타인의 불행을 단죄의 실현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신의 섭리가 현현하는 세계에서, 역설적으로 ‘신’은 부재한다. 왜냐하면 이행되는 모든 섭리들이, 인간의 입을 통해 해석되고 집행되고, 추모되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그러나 점차 죄 없는, 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불행의 이름으로 단죄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거기에는 어떠한 원칙이 있는가. 어떠한 신의 의도가 있는가.


2.

구약 성서 <욥기>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하느님이 있다면 왜 착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 독실한 신자인 ‘욥’은 어느 날 날벼락을 맞아 전 재산을 잃고, 자식과 아내를 잃고, 온몸에 심각한 피부병에 걸린다. 그는 하느님께, 평생을 독실하고 올바르게 살아온 자신이 왜 이러한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묻는다.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 욥의 청렴하고 독실한 삶을 살펴보던 사탄이 하느님에게 내기를 걸었다. 지상의 ‘욥’이란 자가 아무리 신앙심이 깊다 한들, 재앙을 가져다주면 당신을 욕하고 말 것이라고. 하느님은 그 길로 욥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사탄은 그에게 재앙을 가져다준다. 재산과 자식을 잃고, 피부병을 앓으며 신음하는 욥을 향해 그의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고 악담한다. 그러나 욥은 대답한다. “하느님이 복을 주셨으니 재앙을 내리시는 것도 당연하지 않소?”


<욥기>는 병에 걸려 드러누운 욥을 둘러싼 세 친구들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욥이 이러한 재앙을 겪게 된 이유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인다. 욥의 세 친구들은 인과응보의 논리에 의거해 욥에게 죄악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살아오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욥은 자신의 정당함을 들어 하느님이 내린 고난에 한탄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친구 중 한명인 엘리후는 인과응보를 넘어서 그의 태도가 몹시 불경스럽다면서 그것이 너의 죄라고 몰아세운다. 욥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면, 직접 호소하게 해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정말로 하느님이 나타난다.


하느님은 욥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이 세계를 구성한 초월적인 섭리를 설명하며 당신의 권능을 감히 인간인 네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역으로 묻는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당신의 권능을 인정하고 순응한다. 결국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욥은 하느님에 의해 이전보다 크게 은총을 받아 전보다 많은 재산과 자손을 갖게 된다. 한편 하느님은 욥을 죄인으로 몰아간 3명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며 꾸짖는다.


“너와 너의 두 친구를 생각하면 터지는 분노를 참을 길 없구나.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 (욥기 42장 7절, 공동번역성서)


3.

천상의 빛을 보고 지옥에 떨어진 ‘닐’은, 죽음의 순간에 느꼈던 신에 대한 감각, 즉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있는 신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는 지상에서 그가 느꼈던 슬픔과 고통조차 실은 신의 축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지옥은 지상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들의 세계였지만, 그는 어느 것에서도 신을 느낄 수 없다는 고통에 지옥에 떨어진 순간 고쳐진 눈을 뜨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신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비탄에 잠긴 채 신이 자비롭지도, 자애롭지도, 그리고 정의롭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다른 무엇도 아닌 불행을 온전히 불행으로 슬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사라도, 천국도 원하지 않게 되고, 오직 신에 대한 사랑만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진정한 신앙심을 획득한다.


4.

범인凡人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 생각 할때면, 나는 삶과 죽음에 초연한 어떤 정한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전에는 삶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여길수록 그런 경지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제 개인적인 삶에 연연하지 않아야, 더 큰 범주의 선택과 실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그러나 삶을 하대할수록 삶 또한 나를 하대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삶을- 그리고 이렇게 불러도 된다면 ‘신’에 대해 - 자애로울 것이라 믿던 내 어리고 낮은 무의식을 새삼 비애하게 된다. 신이 곳곳에 깃들어있다면, 도대체 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실상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하기에 자꾸 성서니 영웅전이니 하는 낡아빠진 것들을 뒤적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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