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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현 May 28. 2019

레트로 바라보기 (1)

- 레트로의 실체 

1. 레트로의 탄생

 레트로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얼마 전 친구들과 을지로에서 만났다. 힙스터들의 성지로 떠오른 을지로 골목골목을 누비며, 타고나길 아싸로 타고난 우리는 '이런 게 인싸들의 문화구나' 하며 킬킬댔다. 그러다가 한 노포집에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냉동 소곱창을 파는 집이었다. 우리는 야외 자리에 앉았다. 을지로의 힙한 감성에 맞춤코디한 사람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올리고 있었다. 가외쪽에 앉아 우리는 곱창을 구웠다. 지글지글. 소주를 마시니 2차를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골목길 어귀를 돌다 우리는 허름한 건물 2층의 분위기의 펍으로 갔다. 천장이 아치형 지붕으로 구성된 60~70년대 목가적인 분위기의 펍이었다. 벽면 곳곳에는 영미권 로큰롤 가수들의 사진이 걸려있었고, 개중에는 김광석도 있었고 소비에트 록의 전설 빅토르 최도 있었다. 그들은 록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있었다. 우리는 스웨덴인지 스위스인지 아무튼 한 병에 3만원씩하는 북유럽산 보틀 맥주를 시켰다. 알싸하게 취한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큰 길가에는 긴자풍의 일식 주점들, 한국식 포장마차들이 즐비했다. 거리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술인지 추억인지 아무튼 무언가에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왁자지껄, 누군가는 택시를 붙잡고, 누군가는 떠나려는 사람들 붙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곳은 무언가에 취하고, 붙잡고 또 서로 엉겨있는 공간이었다. 무자비한 시공간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지박령들처럼.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뉴트로(New+Retro) 현상을 2019년 트렌드로 선정했다. 뉴트로는, '과거의 복고 제품을 현대의 밀레니엄 세대(?)의 감성을 건드리는 스타일' 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예전에 유행했던 것들 중에서, 젊은 세대들이 새로움을 느낄만한 것들만이 뉴트로가 된다 이 말씀.

 

그런데 이런 정의를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뉴트로라는 것은 결국, 결과론적인 얘기가 아닐까? 복고 마케팅은 클래식한 마케팅인데, 그 중 시장에서 대중들에 의해 선택된 것들을 뉴트로라고 명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혹자는 일반(?) 레트로(복고) 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을 말하고, '뉴트로'는 '밀레니엄 세대의 감성'이 담긴 것 - 이라고 말하지만, 고백컨데 밀레니엄 세대의 일원으로서 나는 그 감성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레트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지칭하는지조차 불명확하게 느껴지는데, 뉴트로라는 건 또 뭐지 ?  문화를 '새롭게' 향유한다는 말만큼 새롭지 않은 말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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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 혹은 뉴트로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 단어가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보다 엄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레트로라는 말은 복고, 유행 등의 표현으로 쉽게 대체되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레트로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에 대해 관심을 갖지않는다. 아무튼 오래된 것 중에서 새롭다고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레트로'라는 이름을 붙일 권리를 갖게 된 탓이다. 덕분에 ‘레트로’라는 어휘는 더더욱 신비화되고, 그 결과 그것은 하나의 성공적인 상품이 되었다. 망해가던 FILA는 ‘레트로’ 어그로 슈즈로 화려하게 재기하였고, 철거직전까지 갔던 을지로 인쇄소일대나 문래 철강소 등지는 ‘레트로’를 간판으로 젊은 예술가, 소비자들의 공간으로 재건되었다. 레트로 가방, 레트로 패션, 레트로 앤티크 가구(?) 등등 레트로라는 이름은 시장에서 하나의 ‘프리미엄’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레트로’ 라는 말은 ‘회상‧회고‧추억’등을 의미하는 “Retrospect"(라틴어 접두사 Retro(뒤로)-)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곧 레트로는 회상(Retrospect)의 축약어이다. 한편 탈락된 라틴어 접미사인 -Spect 에는 ‘(꽤나 면밀히)보다, 생각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이 설에 따르면, 레트로라는 말은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즉, ‘레트로’는 뒤를 바라보되 ‘주의 깊게 생각 또는 보지 않고 회고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레트로라는 단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또다른 재미있는 설이 있다. 소련과 미국이 우주진출을 두고 경쟁하던 시대의 부산물이라는 이야기다. 힘차게 우주로 비상하게 하는 동력이 로켓을 제어하는 역추진 장치를, '레트로 로켓(Retro Rocket)' 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설에 따르면 ‘레트로’ 라는 말은, 마치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던 우주경쟁시대를 거스르는 역추진장치처럼, '주된 문화에 대한 반발 혹은 억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소비에트인이여, 자부심을 가져라. 당신은 지구에서 별로 향하는 길을 열었으니!>


  그러나 레트로가 사색이나 관찰이 겹필된, 수준미달의 (반발적) 하위문화라고 규정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레트로는 너무 광범위한 대중성과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레트로풍의 음악은 '힙'하다.  레트로풍의 패션은 고전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추억의 세대 뿐만 아니라 신세대까지도 열광했다. 모르긴 몰라도 한 가지는 명확해보인다. 레트로는 확실히 돈이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자문해보자. 레트로 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인가? 우리는 레트로가 대관절 무엇을 의미하며, 왜 사랑을 받고있는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더 들어가서, ‘힙함’과 레트로는 동의어인가? 레트로는 의미적으로 ‘복고’와 다른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가? 한국 사회에서 레트로 현상은 어떤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 장에서는 먼저 레트로에 대한 대표적인 2가지 오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 레트로는 힙스터들의 문화이다. 

- 레트로는 복고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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