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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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중인 독서모임에서 3월의 도서로 고전 소설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선택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초반부를 읽다가 그만두었는지 아래의 유명한 문구와 1부 스토리는 기억이 조금씩 났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뫼르소가 해변에서 아랍인을 죽였을 때의 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는데요.
무엇이되었든 이방인 뫼르소에게는 부조리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 같습니다.
해변에 누워있는 아랍인을 보고도 그쪽으로 향해 걸었던 점, 재판에 항소하지 않고 사형을 수용하는 점 등으로 이상한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내는데요.
자신의 의지, 주관, 생각 등을 가감 없이(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대한 고려 없이) 드러내는, 타인의 해석에 의지하지 않고 무의미한 말을 뱉지 않는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부조리에 풍덩 빠지도록 이런 캐릭터를 까뮈가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뫼르소의 주변 사람들이 증언을 하기 위해 증언대에 서는 묘사가 흥미로웠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이 법정에 서서 살인자에 대한 증언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검사가 의도적, 계획적 살인으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는요.
여자 친구 마리도 제대로 변호가 될만한 말은 하나도 못하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검사의 바람대로 배심원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판결을 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은 나를 제외하고 그 사건을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일이 나의 개입 없이 진행되었다. 누구도 내게 의견을 구하지 않은 채 내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검사는 뫼르소에게 비도덕적인 인간이라는 프레임을 씌웁니다.
이를테면 엄마의 시신 앞에서 카페오레 마시고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여자 친구와 밤을 보냈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살인은 계획적이고 그런 일을 벌일만한 인물로 배심원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았습니다.
뫼르소의 변호사도 뫼르소를 이해하게 되지만 이 부조리함을 타파하지 못합니다.
이런 식의 부조리함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형태도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최신에 나온 것이니 번역도 잘 다듬어지고 문체도 좋아졌겠지 하는 기대로 구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출판이 되기 전, 후 많은 이슈를 만들었네요.
마지막에 역자 노트에 '이정서'라는(본명이 아니랍니다.) 번역자가 '김화영' 명예교수의 번역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도가 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했었지만요.
시중 영역본을 다시 번역했다는 논란이 있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이정서'씨가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한 독자가 직접 프랑스 까뮈 연구회에 '이정수'의 번역본에서 주장하는 몇 가지 것들을 직접 문의했다고 해요.
연구회 측에서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아래 같은 소설의 해설에 대한 것들입니다.
-레몽의 여자와 관련된 아립인이 오빠이나 기둥서방이냐
-햇빛 때문이냐, 정당방위이냐.
연구회의 답변은 여자의 오빠가 맞다. 햇빛 때문이 맞다는 내용이였다고 합니다.
저는 까뮈 연구회의 답변 서신 내용을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이 정도 논란이 있었구나 생각하고 말 생각입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다른 번역자들의 이방인을 다시 읽어볼 예정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