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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늬 Dec 06. 2021

#14 죽음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기적은 어딘가 엉뚱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교황청은 모든 성당으로부터 비슷한 종류의 메시지를 받았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고해성사를 했던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말한 그대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던 신부들은 몇 번의 죽음이 몇십 번으로 늘어나자 직감했다. ‘이것은 진짜다!’ 

신부들은 급한대로 미사에서 어떤 죄악은 말하기만 해도 일어날 수 있으니 더 이상 자살과 관련된 고해성사를 하지 말라고 했고, 바로 메세지를 보냈다. 교황청에서는 메세지의 갯수를 보고 놀라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각 나라에 조사관을 급파했다. 그리하여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은지 신부에게 말하면 신은 그것을 들어준다. 그러나 언제 죽을지는 알 수 없다” 교황청에서는  각 성당에 이 사실을 알리게 되었고, 절대적으로 함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비밀이라는 것은 비밀이라 하면 이미 비밀이 아니게 되는 것이었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어느 성당 한곳의 젊은 신부가 이 사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신부는 죽음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창대했다. 그는 신의 자식들을 도와주는 것은 신들의 사자인 자신의 역할이라고도 생각했다. 사람들은 유서를 쓴 후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자신의 죽음을 접수하였다. 신부는 죽음을 접수해 주는 대가로 죽을 때 남아있는 재산 중 십일조를 헌금으로 받았다. 접수 시작 후, 처음 12명까지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작은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13명을 접수한 다음날, 그전에 접수했던 12명 중 한 명이 죽었다. 죽은 자가 죽음은 이랬다. ‘평생 동안 가장 사랑했던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나 단둘이 커피를 마신다. 헤어지기 전에는 가볍게 포옹을 하고 나서 죽는다.’ 죽은 자는 자신의 죽음을 접수하고 몇 개월 뒤 우연히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옛사랑을 보았다. 


옛사랑은 결혼 후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고 아이도 셋이나 있는 사람이라, 자신의 죽음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 불가능이 길 건너편에 서있었다. 그는 건너지 않을 수 있었지만, 담담히 횡단보도를 건너 옛사랑을 만났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죽었다. 


접수를 한 나머지 사람들은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순간 오싹한 공포감이 밀려왔지만 죽음의 결말을 바꾸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저 새로운 보험의 개수를 늘릴 뿐이었다. 접수된 죽음이 실현되는 횟수가 늘수록 접수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어떤 사람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실패한 사랑을 붙이려고도 했다. 유명한 예술가는 인생 최고의 예술작품을 남기는 순간을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묘사하는 죽음의 순간들은 어딘가 스스로 진정으로 원하는 소원과 닮아있었다. 그러나 죽음이 발현되는 시점은 사람마다 달랐다. 그 시점 때문에 부작용이 일어났다. 


일찍 죽을 줄 알고 퇴사를 했던 어떤 사람은 자신이 죽지 않자 재취업 압박에 고통받기 시작했고, 패기 있게 들어놓은 수많은 사망보험 때문에 지출이 감당이 안 돼서 보험을 해지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그러나 죽음은 끈기 있게 사람들의 일상을 두드렸다. 취준생 현서는 오늘 신부에게 자신의 죽음을 접수하고 성당에서 나왔다. 죽으면 나오는 사망보험금의 반은 유기견 센터와 고아원에 기부 하도록 하고, 나머지 반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언니에게 가도록 해놓은 상태였다. 자신의 죽음이 살아있는 자신보다 더 유용하다는 것이 조금 슬프기도 했지만, 성당에서 나온 지금은 그 어떤 시간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충만했다. 그래서일까. 현서는 죽음 접수후 몇일 뒤에 취업을 했고, 죽음을 접수한 브이로그를 유튜브에 올리고 나서 구독자가 한달사이에 만명이 넘었다. 현서는 신부에게 달려가 혹시 철회가 가능한지 물었다.


지금까지 죽음을 철회 해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부는 현서의 요청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접수된 죽음을 철회할 수 있을까? 신부인 내가 하느님께 고해성사를 하면되나? 아니면 기도로 ‘하느님 죄송합니다 저번에 그 접수했던 사람 있죠? 사실 죽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취소해 주세요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되려나? 그러다 내가 뒈지면 어떡하지? 만약에 된다고 했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철회는 불가능했다. 신부는 며칠 뒤에 현서에게 말했다. “죽음은 접수해드릴 수 있지만 철회는 불가합니다. 죽음은 그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마음을 굳건하게 먹길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신부는 현서의 울먹이는 눈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사과를 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모두 다 죽는다. 자신의 탄생을 결정지을 수 없는 인간이, 죽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신의 축복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서는 좌절했다. 그러나 1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현서는 이제 어엿한 프로 유투버였다. 현서는 좌절의 과정을 야무지게 영상으로 만들었다. “접수된 죽음은 철회가 가능할까?”의 영상은 일전의 죽음을 접수한 영상의 조회 수를 넘어 인기 급상승 영상 #3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구독자 수는 4만 명으로 훌쩍 늘었다. 신부는 최근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 때문에 하루 종일 고해성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죽음을 접수하던 신도 한명이 유튜브 영상을 언급하면서 영상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신부는 고해성사가 끝나자마자 영상을 확인했고 영상에 나온 사람이 현서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만약 교황청이 이 사실을 알면 자신은 파문은 물론, 지금껏 성당을 위해 받은 헌금까지 다 날아가겠다고 생각한 신부는 곧바로 현서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현서는 모르는 번호는 절대 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현서가 연락이 안 되자 신부는 초조하게 방안을 서성였다. 그리고 당일 오후 다섯시, 로마 시각 9시에 교황청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놀랍게도 전화는 교황이 직접 한 것이었다. 교황은 흥분된 목소리로 분명 무슨 말을 했는데 당연히 신부는 하나도 못 알아먹었다. (물론 몇 개 안 좋은 단어들은 알아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통역관이 전화로 교황의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 당장 바티칸으로 오시랍니다.” 신부는 그냥 파문을 시키지 왜 굳이 로마로 오라고 하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그래도 이참에 이탈리아 구경이나 좀 할까?라는 생각으로 수영복도 함께 챙겼다. 이탈리아 공항에서는 이미 교황청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황청 사람들은 신부를 차 안에 밀어 넣고 곧바로 교황 집무실에 신부를 대령했다. 그곳에 현서가 있었다. 현서는 부지런하게 핸드폰으로 집무실을 찍고 있었다. “저분은 교황님이세요. 다들 아시죠? 그런데 저분이 제 구독자셨데요! 미쳤죠?” 신부는 현서의 행동을 보면서 정말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통역관은 말했다.


“교황님께서는 죽음을 철회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접수한 신부가 교황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자신의 죽음을 접수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추가로 철회를 원하는 사람을 구원해달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현서의 열렬한 구독자이신 교황님께서는 현서님의 죽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급하게 두 분을 로마로 부르신 것입니다.”

“아니 저는 제 죽음을 접수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요. 저는 살고 싶어요.”

통역관은 교황에게 이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교황은 한 손을 들어 신부를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신부는 고개를 숙이며 손을 피했고, 통역관은 그런 교황을 말리면서 신부에게 말했다.


“이미 죽음을 접수한 순간부터 신부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교황청에서 죽음이 접수된다는 것을 공문을 내려 막은 것입니다. 사실 이 현상은 옛날 제5차 십자군 전쟁 때에 한번 발현됐었는데, 그래서 저희 교황청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신부님께서 죽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음을 접수하실 때 조금의 거짓이 섞이면 안 됩니다. 아마 그러면 금방 죽게 될 것입니다.”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신부는 그동안 진심으로 죽음을 접수했던 사람들의 떨리는 음성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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