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춘몽> <아티스트> <북촌방향> <프란시스 하>
영화는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영화에서 컬러영화로, 2D에서 3D로 진화해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어떤 분야에서나 '과거로의 회귀' 또는 '복고'라는 코드는 하나의 독특한 트렌드를 이끌어왔죠. 흑백영화는 영화에서 이 복고코드를 가장 간단하게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여기 흑백영화 다섯 편이 있습니다. 모두 2010년 이후에 우리를 찾아온 작품들인데요, 흑백 영화가 주는 레트로적인 감성을 잘 살리는 한편 깊은 메세지 혹은 잔잔한 즐거움을 주는 수작들입니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들,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드라마│한국│110분
감독 : 이준익
주연 : 강하늘, 박정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일제 강점기, 시인이자 한 사람으로서의 윤동주와 송몽규를 그린 영화 <동주>. 큰 흔들림 없는 화면 속에서 그들의 삶과 선택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가 꾸었던 꿈이 어떻게 스러져가는지를 바라보며 듣는 윤동주 시인의 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동주>의 결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죠. 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주의 깊게 고증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시대의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따라갑니다. 송몽규가 느꼈던 '안타까움'과 윤동주가 느꼈던 '부끄러움', 이 두 감정이 폭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조차 숨 죽이고 그들과 함께 가슴 아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족│한국│101분
감독 : 장률
주연 : 한예리, 양익준, 박정범
우리 그냥 이렇게 살자.
<춘몽>의 주인공들은 현실 속의 인물들의 복제판인가 봅니다. 익준, 정범, 종빈은 실제로도 본업이 감독이기도 하죠. 이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어쩌면 정말 현실을 옮겨다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하게 하는데요.
이 영화,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영화와 현실 사이의 경계, 꿈과 현실의 경계,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 수많은 경계선을 넘어 다니며 다소 낯선 전개 방식을 차용한 <춘몽>은 조금은 어렵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낯익은 배우들과 함께 소탈하게 웃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영화는 현실이 되고, 여러분이 있는 지금이 영화가 될 겁니다.
멜로/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미국, 프랑스│100분
감독 :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주연 : 장 뒤자르댕, 베레니스 베조
당신을 위해 그 길을 닦아왔소.
2011년 작품인 <아티스트>. 이 영화 도전적이게도 화면에서 색채와 함께 소리까지 생략해버렸습니다. 1920년대 무성 영화를 재현하고자 했는데요, 그 시절의 감성까지 그대로 가져온 아주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최근 작품인지 모르셨을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과도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배우가 겪는 고뇌를 재치 있게 잘 표현한 <아티스트>는 무성영화 특유의 경쾌한 음악으로, 또 춤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줍니다. 여기에 배우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명품 조연인 강아지의 명연기까지 더해져 쉴 틈 없이 즐거운 100분이 되실 겁니다.
드라마 │한국│79분
감독 : 홍상수
주연 : 유준상, 김상중
내가 이유가 되겠지만, 사실은 내가 이유가 아닌 거죠.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입니다. 홍상수 감독은 언제나 생활 밀착형 영화를 만들어 정말 '이 사람이 나를 훔쳐보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만드는데요. <북촌방향>에서도 우리의 생각, 감정 그리고 행동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반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대화 속에서 흘러가는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의 개념도, 장소의 개념도 모호해지기 시작하죠. 그 사이에 '우연'이라는 삶의 요소를 무겁지 않게 녹여내고 있습니다. '신기한 우연'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북촌. 그 속의 한 남자. 여러분은 이 한 남자가 결코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코미디/멜로/로맨스│미국│86분
감독 : 노아 바움백
주연 : 그레타 거윅, 믹키 섬너
제 직업요? 설명하기 복잡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아낸 <프란시스 하>입니다. 뉴욕 맨하탄 한 이름 없는 무용수인 프란시스가 겪는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죠. 그녀가 늘상 겪는 고민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의 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건 우연일까요?
프란시스와 그녀의 친구 소피 역시 가장 보통의 존재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고전하지만 쉽지 않죠. TV나 자서전 속 성공담은 왠지 내 것은 아닌 것 같고, 꿈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기에는 겁이 납니다. 프란시스의 이야기냐고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프란시스는, 그리고 우리는 보통의 고민들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현란한 색채로 우리를 사로잡는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무채색의 잔잔한 화면만으로도 우리를 사로잡는 작품들. 화면이 아름답다는 찬사는 흑백 영화에도 충분히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줍니다. 거기다 이들만이 주는 독특한 매력까지 더해져 우리를 흑백 영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데요. 흑백 화면 속에서 더 빛나는 영화들, 함께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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