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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화면에 입힌 우리들의 고민, 공감, 위로의 색깔들

[Episode #49] 너도 '프란시스 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덜컹덜컹, 퇴근길과 하굣길을 지나 잠시 들른 극장. 다복다복하게 앉아 나누었던 따뜻한 목소리들
    


지난 월요일. 잠시 따뜻했던 햇살을 지나 새하얀 입김이 피어오르던 저녁 즈음, 너비조아 가족들은 이태원에 위치한 작은 펍, 헵시바 극장에 모였습니다. 옛스러움이 묻어나는 작고 아늑한 상영관과 따뜻한 빛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우리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소녀 ‘프란시스 하’를 만났답니다. 그 날에 나눈 그녀의 이야기를, 아니 우리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화 <프란시스 하>의 한 장면

흑백의 화면 속에서 빛난 소녀     


"‘프란시스 하’는 흑백영화다 보니 마치 나의 독백을 보는, 그리고 나의 삶을 보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사랑, 우정, 꿈, 경제적인 고민과 같이 청춘이라면 겪었던 혹은 현재 겪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에 대해서 나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흑백의 화면이 영화를 보는 각자만의 상황과 생각, 경험에 따라 더 자유롭게 영화를 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 같아요. 저한테 ‘프란시스 하’의 뉴욕은 서울 같았고 소피는 제 친구 같았고 프란시스는 저처럼 느껴졌거든요."



           

사람들 틈에 어울리지 못하는 프란시스


각자만의 색깔로 칠한 프란시스 하     


"처음에는 프란시스의 엉뚱한 대사 하나, 몸짓 하나에 관객들이 웃고 즐거워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뒤로 갈수록 그녀의 말투나 행동에 관객이 받아들이는 반응이 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관객들이 그녀를 보는 시선과 극 중 프란시스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비슷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 저 역시도 처음에 봤을 땐 ‘프란시스’가 정말 사랑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 만찬 장면에서 공감이 많이 됐어요. 저는 상황이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얘기만 늘어놓는 프란시스를 보면서 프란시스가 겪는 어려운 상황들이 그녀 안에 어떤 자격지심을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에서 보면 정말 민폐 캐릭터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 ‘그녀도 어쩔 수 없었겠다’ 라며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소피가 프란시스한테 그러잖아요. “뉴욕에서 예술하는 애들은 다 부자야. ... 그런데 프란시스, 넌 별종이잖아.” 프란시스처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거든요. 대학 내내 붙어있던 친구랑 금전적인 문제로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야하는데.. 자기도 함께 어울리고 싶고 대화에 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계속 다른 얘기를 하고 그 주위를 맴돌 수 밖에 없는 그녀의 모습이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고 공감이 됐어요."


     

이름표에 맞게 자신의 이름을 접는 프란시스의 모습


사랑우정 그리고 타협그 경계에서     


"저는 이 영화를 정말 많이 봤는데 한 번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언젠간 나도 현실의 타협점을 찾아 살아가는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마냥 행복하다고 느낄 수 없을 것 같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해피엔딩으로 보진 않았지만 저는 그녀의 삶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자신이 꿈꾸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현실에 대한 타협도 남은 삶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접어 이름표에 집어넣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이름이 칸에 맞지 않으니까 이름을 접어서 넣는게 뭔가 현실의 타협 속에서 그녀가 만족하는 것처럼 보여서 씁쓸하게 느껴졌어요. 다만 그 타협점을 찾아다는 것 조차 저는 부럽더라구요."

     

 "저는 이 영화가 결국 현실과의 타협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영화 마지막 부분에 ‘프란시스 하’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데 어쩔 수 없이 현실에 끼워 맞추기 위해 나를 접었지만 ‘프란시스’가 아니라 ‘프란시스 하’였잖아요. 저는 프란시스가 극 중 평소에 ‘하하’ 웃는 모습과 마지막에 ‘하’까지 접어 넣고 살짝 웃는 모습이 겹쳐보였어요. 저는 프란시스가 그 타협 속에서 행복을 찾은 사람이라고 느꼈거든요."

      

"저는 오늘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봤는데 처음 봤을 땐 확실하게 해피엔딩으로 단정을 지었어요. 그런데 오늘 다시 보니까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마지막 즈음에 프란시스가 혼자 방 문틈에서 팔 너비를 재자나요. 그리고 문을 나오면서 팔을 넓히는데 그 장면에서 저는 ‘나는 지금 이렇게 현실과 타협을 해서 이만한 공간에 갇혀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겠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거든요."



슬퍼하는 소녀의 곁에서 위로하는 프란시스

          

우린 괜찮지 않아.’     

 

"제일 공감갔던게 프란시스는 항상 누구랑 이야기 할 때 ‘나 정말 괜찮아, 나 정말 좋아’ 가 가장 많이 하는 얘기였잖아요. 누가 봐도 안 괜찮은데 괜찮은척 하는게 공감도 가고 안쓰럽기도 했어요."

     

"요즘은 모두가 ‘나 안괜찮아’라고 말하기 어려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듣는 다른 사람들도 부담스러워 하는 거 같고요. 저는 지난 일년 반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하느라 저를 돌아보지 못했거든요. 그게 극단까지 왔을 때 누군가 ‘잘 지내?’라고 물었어요. 솔직하게 ‘ 나 지금 못살고 있어. 힘들어’라고 얘기했는데 그걸 들은 상대가 저를 피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

    

"사실 저도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과 고민을 많이 나누고 했는데 얘기를 하면 항상 대화가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왠만하면 제 고민은 저 혼자 안고가게 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우리들은 힘든 걸 구구절절 설명할 힘도 없고 들어줄 사람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너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아니까 서로가 ‘난 괜찮아, 난 괜찮아’라고 하며 살아가고 있는거죠 . 그게 진짜 씁쓸한거 같아요."


      

소피를 쫓다 문득 자신의 맨발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


프란시스그리고 우리의 행복에 대해     

 

"소피를 향해 달려나가면서 프란시스가 문득 자신의 맨발을 발견하게 되잖아요. 그때 프란시스 스스로 ‘주변상황을 너무 쫓다보니 나를 돌보지 않았구나’ 이런걸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사건을 기점으로 프란시스의 삶이 그리고 행복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맨발 장면을 너무 좋아하는데 정말 초라해진 나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그 모든 것들을 놓을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저의 초라해진 맨발을 요즘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영화가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저는 프란시스가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어요. 마지막 프란시스의 모습에서 크게 성장한 그녀를 본 것 같았거든요. 프란시스는 어떻게 보면 꿈도 사랑도 우정도 돈도 쫓는 우리들이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꿈, 사랑, 우정의 성취 자체가 나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 같지 않다는. 프란시스도 외적인 그리고 내적인 열망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행복과 안정을 찾은 것 처럼요."

     

"재능 없으면 하면 안되나요? 사실 저도 그게 되게 딜레마거든요. 저는 엄청난 성취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근데 주위 얘기가 자꾸 들려요.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실패를 제가 겪었다고 해서 제 인생이 실패한건 아니잖아요."

      

"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행복하다면 그건 해야 하는 거죠. 저는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어느 순간 현실과 타협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너무 행복했으니까요."



 사랑스럽지만 사랑하고 싶지는 않은 캐릭터에 대한 사랑 가득한 영화  - 평론가 이동진  


우리의 삶도 프란시스처럼 마냥 사랑스럽진 않지만, 누군가의 시선에서 볼 땐 그 삶 속에서 사랑 가득한 주인공이지 않을까요?     

 

힘들고 지친 하루를 무사히 견뎌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너비조아 가족들과, 사랑스러운 ‘프란시스 하’를 함께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신 '그린나래 미디어'. 그리고 따뜻한 공간 ‘헵시바 극장’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사랑스러운 일 가득한 나날이 될 수 있기를.


※ 너비조아 리뷰는 상영회를 찾아주신 관객분들과 함께 작성되었습니다. 소중한 이야기를 나눠주신 관객분들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너도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너비조아)'는 매력적인 낯선 사람들과, 영화에 맞는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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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 https://www.facebook.com/same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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