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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마른 이불을 좋아하는 콩사탕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 김봄 에세이

by 저나뮤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맨살에 닿는 바싹 마른 이불의 느낌을 좋아합니다." 정신과 상담에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 언제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작가가 한 대답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들이 좋다. 나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맨살에 닿는 바싹 마른 이불의 느낌이 좋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볼 때 저런 대답을 하지는 못한다. 정리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감정들을 단정하게 모양내어 내 앞에 선물처럼 놓아주는 작가들의 수고로움이 고맙다.


좌파인지 우파인지 진보인지 보수인지 어느 쪽인지를 굳이 따져보자면 나는 어느 쪽인가. 엄마한테 공산당 빨갱이년이라는 소리는 들어봤으니 좌파 자격이 생기는 걸까. 좌파 자격이 그런 식으로 생긴다니 우습긴 하다. 내가 어느 쪽에 서있느냐는, 어디다가 써먹지도 못할 둥둥 떠다니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처럼 내가 무엇이든 보수 엄빠덕에 나는 자랐고, 여기까지 왔고, 콩사탕이 되었다. 그러니 내가 어느 쪽에 섰느냐가 중요한 만큼, 나를 콩사탕으로 키워준 엄빠와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도 꿈같은 얘기를 해보자면 엄빠가 다음 대선에 나와 같은 후보를 찍으면 좋겠다. 뭐. 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내가 엄빠가 찍는 후보를 찍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말 그대로 꿈같은 얘기다.


콩사탕 딸내미를 키워준 엄빠 고맙슴메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우리 사이좋게 지내봅세다 :)


<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p. 170-171 >


손 여사는 여전히 보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손 여사가 보수라고 해서 내가 엄마 취급을 안 할 것인가? 손 여사 역시도 내가 진보 딸이라고 해서 딸 취급을 안 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보수 부모의 돈으로 자랐다. 그 돈으로 학원에 다녔고, 책을 사 읽었다.


손 여사는 매년 몇백 권씩 되는 책을 사줬고, 종이를 아끼지 않고 쓰고 그릴 수 있도록 해줬다.


지금도 여전히 손 여사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내가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가를 걱정한다.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꽤 오랫동안 나의 고양이들도 봐줬다. 어디 나가서 허풍선이가 될까 봐 언제나 확실한 것만 말하라고 뼈 아픈 조언도 해준다. 그러면서도 내가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 덕에 나는 진보의 가치를 접했고, 진보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다르지만 다른 모습 그대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모두 다 손 여사 덕분이다.


그러니 엄마, 앞으로도 나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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