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제일 힘들다
구석에 앉아서 불쌍하게 자기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직장인의 모습이 드라마에서 그려질 때 그 모습이 내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어느 정도의 쓸모가 있는 자라 스스로 생각했고, 실제도 그러하다고 믿었다.
오늘 아침 "7살 정도 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고 헤매다가 옆에 있는 사서가 현재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이름을 말했다.
퍼뜩 생각이 났다. 아. 맞다. 그런 프로그램이 있지.
나는 목요일, 어디 보자 시간이..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옆에 있던 사서가 웃으면 말했다. 화요일. 화요일이죠. 시간은 3:30 pm
실수야 늘 한다. 이런 실수도 하고 저런 실수도 하고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연차도 꽤 되어서 실수를 하는 일에 어떤 변명도 걸맞지 않은 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수를 한다는 거다.
아주 기본적인 일이다. 이미 3년이나 진행해 온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일은 새로운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실수 - 더 정확히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를 한 것이다.
조그만 실수에 의기소침해지지 않으려 하지만, 조그만 실수들이 쌓이니 쓸모 있음에 대한 생각이 튀어나온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자아비판의 날을 스스로의 실수를 통해 더 날카롭게 벼르는 꼴이다.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 하지만, 그런 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실력의 차이다. 그런데 그 실력이라는 것이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이어서 이 부끄러움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정도의 마음가짐이라면 다음에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테지만, 비슷한 종류의 실수는 다시 하게 될 텐데, 이런 실수를 여전히 하고 있는 나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의가 흩뜨려 져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영역의 일이다. 누군가의 돈을 월급으로 받으면서 무책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른이 되는 일이 참 어렵다고 생각했던 30대에는 몰랐다. 어른이 되는 것보다 더 힘든 나이 먹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의 자리를 보존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작은 일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다. 누구도 내가 기억하지 못해 혹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일로 피해를 보거나 화를 내거나 실망하거나 손해를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나는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로 지쳐있어서라고 다독이고 다음을 살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마치 생각은 그런 움직임을 통해 저 편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는 듯이.
도서관에서 겪는 황당한 일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처리하면 된다. 그저 "일"로 대하고 "일"로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도서관에서 일어났지만 어딘가 나와 닿아있는 일은 일로 처리가 안되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도 생각은 날아가지 않는다.
어른이 채 되지 못한 채 나이를 자꾸만 먹어서 그런가 보다. 철이 들지 않은 채 거죽만 늙어가 그런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