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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Aug 17. 2024

그것을 산책시키는 남자 (2)

도서관 극한직업 (4.2)

노인은 구하기 쉽지 않은 역사 서적을 즐겨 읽었고 적어도 삼개국어를 구사했다. 항상 예의를 차린 반듯한 자세로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아마도 그는 젊은 시절 지식인으로 불렸을 터였다.


그날 노인은 세계사에 관련된 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가 일하는 데스크 위에 자신이 가져온 가방을 올려놓은 뒤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이 종이에 적힌 책을 찾아달라고 했다. 사서는 금세 서가에서 노인이 원하는 책을 찾아왔다. 원하는 책을 받은 그는 책상으로 돌아갔고 그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남루한 차림과 불쾌한 체취, 검은 때로 가득한 손톱, 갈래갈래 엉겨있는 머리카락.


그가 책상 한편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동안 그 책상에 앉았던 사람들은 하나 둘 일어나 한 때 지식인으로 불렸을 법한 노인에게서 멀어진다.


어쩌면 그는 과거에도 혼자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퇴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쉬지 않고 책을 읽는다. 한 때 지식인으로 불렸을 법한 노인은 과거의 시간과 거칠게 단절된 채 위태한 현재로 분리되어 혼자 남겨졌다.  


바퀴가 나타났다며 우리를 찾았던 할머니의 말로는 노인의 가방 안에서 바퀴 벌레가 기어 나오더라는 것이다. 자신이 두 마리를 죽였는데 계속해서 가방 안에서 나오는 바퀴벌레를 보고는 이건 아닌 것 같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내가 본 바퀴벌레 역시 노인의 가방 안에 있다가 나왔을 것이다.


파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열심히 바퀴를 잡던 사서는 난감해하며 노인 앞에 선다.   


"가방 안에서 뭔가가  -끝내 바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 계속 나오는 것 같은데요, 가방 안을 한 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 알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 노인 역시 바퀴라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 왜 자꾸 내 가방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을 들은 사서는 거머쥐었던 파리채를 내려놓고는 파란 라텍스 장갑을 벗는다.


정확한 말로 다시 안내를 하려는 차에 시큐리티 가드가 대화를 끊고 노인에게 말을 건넨다.


"헬스 해저드 (health hazard)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시죠."


그 누구도 그 발이 여섯 개 달린 벌레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노인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들고 온 가방을 하나 둘 찬찬히 한 손에 그러 모아 쥔다. 반듯한 자세로 다시 선 노인은 소지품을 다 챙겼는지 찬찬히 주위를 둘러본다.


그는 천천히 출입구를 향해 몸을 돌린다. 시큐리티 가드가 노인의 옆에서 에스코트한다.


어쩌면 한 때 지식인으로 불렸을지도 모를 노인에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노인의 뒤로 무지개만큼이나 다양한 색으로 바닥에 기어 다니는 그것들이 보인다. 사서는 다시 파란색 라텍스 장갑을 끼고 파리채를 움켜쥔다.


나는 더 이상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그저 얼른 돌아서 파란색 라텍스 장갑이 보관된 데스크로 향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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