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극한 직업 (4.1)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앞을 보니 뭔가가 기어 다니고 있다. 개미라고 하기엔 크고 거미라고 하기엔 작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한번 쳐다본다. 바퀴라고 하기엔 조금 느리고 아니라고 하기엔 많이 닮았다.
바... 바... 바... 바퀴.... 바퀴닷!!!! 이런 바퀴!
눈을 질끈 감는다. 다리 여섯 달린 생물을 마주하는 일은 그게 언제든 늘 고역이다.
바퀴는 알고 있다. 아무리 천천히 움직여도 내가 자신을 내리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슬슬 슬슬 잡아보라는 듯 느릿느릿 기고 있는 바퀴에게 조롱당하는 느낌이다.
정말 미안하고 이러는 내가 너무 싫었지만 저 쪽에서 일하고 있는 사서를 부른다.
"바.. 바.. 바퀴... 좀...."
차마 죽여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바퀴 위치를 가리킨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흘깃 쳐다보더니, 그녀는 파란색 라텍스 장갑을 손에 끼고 크리넥스 다섯 장을 북북북 재빠르게 뽑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바퀴를 짓이겨 잡는다.
내 얼굴은 이미 일그러질 수 있는 방향을 초과해서 일그러져있다.
'아... 진짜... 너무해."
잔뜩 찌푸린 내 앞에 할머니 한분이 서 계신다.
"저기... 아... 그 뭐죠... 그.. 아... 기어 다니는 거...."
바퀴다. 이름은 듣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바퀴가 저쪽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얼른 가보아야 하는데 바퀴 소리에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돌처럼 굳어 있는 내 앞으로 파란색 라텍스 장갑을 낀 사서가 빠르게 걷는 모습이 보인다.
비겁한(?) 내 모습에 좌절하며 최대한 빨리 정신을 차리고 사서 뒤를 따라나섰다.
사서는 바닥에 열심히 살균제 - 그렇다 살충제가 아니다 - 를 뿌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왼손에는 파리채가 들려있다.
아, 캘리포니아는 이 와중에도 어쩜 이리 친환경적인 것인가.
살균제로 얼룩덜룩 해진 바닥에 파리채로 두들겨 맞은 바퀴"들"이 누워있다.
바퀴는 그냥 바퀴인 줄 알았는데, 색깔도 참 다양하다. 검은색, 빨간색, 흰색, 노란색... 무지개가 봤다면 울고 갔을 것 같다.
그나저나 사서는 소림사 출신이었던가. 그 짧은 시간에 바퀴를 많이도 죽였다.
아니다, 그녀는 소림사 출신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가 어설프게 휘두르는 파리채에도 맞을 만큼 바퀴의 수가 많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