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효 Dec 22. 2018

현대의 편향 속 루쉰의 가치

루쉰의 <문화편향론>을 읽고_

    루쉰은 <문화편향론>에서 다수에 의해 소수의 의견이 억압 받는 대중 정치를 전면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찾는 것이 해답이라고 말한다. 거시 정치 형태를 바로잡기 위해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는 루쉰의 주장을 들으면 다음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 개인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며(who)’ ‘개인이 어떻게 해서 끝내 국가를 바꾸는가?(how)’. 이와 같은 물음에 루쉰은 니체를 언급하며 답한다. “다수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면 사회의 원기는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으며, 그보다는 평범한 대중을 희생하여 한두 명의 천재를 출현을 기대하는 것이 나으며, 차츰 천재가 출현하게 되면 사회활동 역시 싹이 튼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루쉰은 ‘소수의 엘리트가 올바른 생각을 갖고 다수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중국 재건을 꿈꿨다.

    루쉰이 꿈꾼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당대 루쉰이 비판했던 대중 정치가 지금은 가장 보편적인 정치 형태가 되었으며, 현대 ‘인터넷’의 등장으로 대중 정치는 더욱 활발해졌다. 이로 인해서 근현대의 편향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궁금해졌다. ‘새 시대의 대안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리고 ‘그 대안은 루쉰이 꿈꾼, 즉 소수의 개성이 존중되며 그 소수가 다수를 바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쉰이 꿈꾼 세계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대안인 인공지능(AI)은 소수가 다수를 바꿀 수 없는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루쉰이 예상하지 못했던 현대의 큰 변화는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양날의 검이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으로 루쉰의 바람처럼 소수의 의견을 확대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독일 사회과학자 노엘레 노이만에 따르면 소수의 침묵의 원인이 사회적 고립감에 있다고 하는데, 인터넷으로 형성된 가상 공간에서는 현실과 달리 고립을 감수해야할 위험에서 자유롭다. (박성희 박은미, 2007) 또한 소수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쉽게 모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소수의 의견이 다수를 설득하는 데에 용이하다.

    하지만 주류 의견에 편승해서 발생하는 대중 정치의 페단에 인터넷에서도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은 대규모 주류의 생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특정 의견이 다수에게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거나 침묵하는 현상이 나타나며, 이를 두고 노엘레 노이만은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설명했다. 일례로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베스트 댓글 제도에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인터넷 상 가장 ‘좋아요’를 받은 베스트 댓글에 의해 우리의 생각을 바꾸거나 침묵하는 현상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는 데에도 말이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편향이 다른 형태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바로 ‘다수가 진짜 다수냐’라는 논쟁에 흽싸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다수의 실종 편향’이라 부른다. 지난 1월 네이버에서 매크로를 통한 댓글 조작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문이 제기 되었고, 더불어 민주당 및 네이버 주식회사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였다. 그 결과 댓글 조작범 3인이 체포 되었고, 인터넷 여론 조작의 가능성은 공공연해졌다. 이로써 댓글은 의견 표출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다수의 의견, 다수의 좋아요 등 다수의 개념이 인터넷에서 실종되었다.


    ‘다수’라 불렸던 권력이 해체된 인터넷 세계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다수가 아닌 소수의 의견이 반사이익을 얻어 루쉰의 바람대로 되는가 싶었지만 다수를 잃어버린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인공지능(이하 AI)’라는 새로운 편향을 택했다. 지난 10월 10일 네이버는 사용자 취향에 기반하여 AI가 100% 기사 배열을 편집하는 새로운 모바일 앱을 발표했다. 사람들은 진짜 다수를 검증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기사와 댓글을 보고 싶어했던 것인지, 아무도 이 시스템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 하지 않고 있다.

    아무쪼록 보고 싶은 기사와 댓글만 AI에게 추천 받아서 보는 시대가 열렸다. 이제는 자신의 생각이 주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편향이다.  필터 버블이란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맞춤형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하고 이용자는 필터링된 정보만 접하게 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이렇게 필터 버블에 갇힌 사람은 건강한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다. Columbia Journal Review에 따르면 이미 Facebook 사용자는 양질의 정보를 담고 있는 기사보다 자신과 비슷한 정치관을 갖고 있는 기사를 더 신뢰한다고한다.


“대중을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을 바라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중략)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독립자강하고 세상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벗어나

여론을 배척하고 세속에 빠져들지 않는, 용맹스럽고 두려움 없는 사람에게 기대야할 것이다.”


    루쉰은 개인으로 우뚝 선 초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AI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겐 그 희망이 없다. AI가 많은 사람들에게 초인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면, 그는 소수의 초인에 불과하다. 또한 좋아할 만한 기사만 받다가 소수 의견을 들은 사람의 거부감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초인을 더욱 외롭게 만들 것이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생각을 갖고 세상을 바꿀 의지와 관계 없이 AI가 그를 세상에 내보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루쉰이 바랐던 초인은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며, 그가 꿈꿨던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루쉰이 더 필요한 시대이다. 소수의 개성이 다수의 희망이라는 루쉰에 생각에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해야 한다. 소수 의견의 가치를 알고,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서 나는 AI라는 새로운 편향에 대항하여 새로운 대안 ‘루쉰 알고리즘’을 제안한다. 사용자 취향에 의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루쉰이 품었던 가치관을 기준으로 정보를 선별하여 제공하는 알고리즘. 그 루쉰 알고리즘이 소수의 목소리를 더 키우고 세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루쉰과 그가 꿈꾼 세계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무인양품과 우리 미의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