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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홍 Jan 07. 2019

네모로 그려줄게 디자인만 입혀줘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란

때는 2014년 10월쯤이었던 것 같다.


직원이 대표님과 이사님을 포함해 10명도 채 안되던 시절, 나는 와디즈에서 마케팅 인턴을 했었다. 사이트 방문자 유입 경로 분석, 카드 뉴스, 블로그 콘텐츠 작성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포토샵을 다루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익숙했던 나는 프로젝트 상세페이지를 보기 좋게 디자인해 주는 정도를 추가 업무로 팔로 업하며 회사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CTO였던 이사님이 갑자기 이메일 하나 던져주며 이렇게 말했다.


"피피티로 대충 내가 메인 그렸거든? 그러니깐 그거 포토샵으로 디자인 입혀줘 봐. 그러면 개발 시작할게."


이렇게 던져진 나의 업무가 서비스 기획인지, UI 디자인인지, GUI 디자인인지, 온라인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이제야 고백하는 말이지만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플랫폼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온라인 상에서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하는 이 와디즈란 회사에 있었지만, 이 무형의 서비스에서 어떤 사용자들이 어떻게 들어와서, 결제하고, 환불하고, 배송되고 있는지, 내가 오기 전부터 있긴 있었던 이 서비스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누가 디자인을 하고, 개발을 한 건지, 외주를 썼는지 아닌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4개월짜리 인턴이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와디즈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왜냐하면 같이 일하던 대표님, 이사님, 그리고 인턴 동료들이 그걸 모두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회사에서 시키는 것에다가 나의 창의성과 성실함을 조금 첨가하여 콘텐츠를 만들며 일했고, 주어진 맡은 바를 착실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병이 나는 성격 탓에 성실하고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으며 회사에 다니는 대학생 인턴이었을 뿐이었다.


당시 "펀딩 포털을 만들자"라는 구호로, 와디즈는 전 국민이 인터넷에서 탐색을 할 때 무조건 네이버로 가는 것처럼 펀딩 하려면 무조건 와디즈로 오면 돼!라는 것을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최초에 크라우드펀딩이라는 생소한 단어부터 전달해야만 했기에 브랜딩에 초점이 맞춰진 와디즈 메인 페이지를 네이버처럼 다양한 콘텐츠들이 나열되어 있고, 프로젝트를 더 많이 소개할 수 있는 콘텐츠 중심의 페이지로 바꾸고 싶어 했다. 당시 프로덕트 조직은 CTO 1명. 원맨원팀이었던, 사실 원맨원팀이라 하기에도 민망하게 개발도 하고, 영업도 하면서, 정산도 하고, 내가 발행하는 마케팅 콘텐츠에 대해 컨펌을 봐주셨던 이사님이 디자인은 도무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헬프를 요청한 것이었다.


순수함으로 무장한 넌씨눈인 나였지만 누구보다 이해력, 공감력이 뛰어나 그게 무슨 일인지도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일단 또 주어졌으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피피티를 열었다.

그 피피티는 파란색으로 된 조악한 네모들이 연속되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위에 그게 무슨 네모인지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나는 놀랍게도 별 것 아니라는 듯 프로젝트 상세페이지를 디자인하는 것 처럼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포토샵을 켰다.


지금 생각하면 이사님이 나에게 준 화면은 상위 기획서이자 UI정의서였다. 사실 따지자면 아무 생각 없이 나열한 초기 스토리보드 스케치에 가까웠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걸 메꾸거나 만들려는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그게 GUI 디자인 전 단계의 산출물의 전부였다. 메인 페이지 목적에 대한 정의, 동선에 대한 설계, 액션에 대한 설명, 노출 로직에 대한 정의 등 그 어떤 디스크립션도 없었다. 그저 나는 그 파란색 네모들을 조금 더 예쁘고 성의 있게, 와디즈 로고도 넣고, 펀딩 포털이라는 단어도 넣고, 실제 프로젝트 사진과 제목도 넣고 하면서 다른 사이트들과 비슷한 형색을 맞춰가며 포토샵으로 이틀 만에 디자인을 했고 이사님한테 넘겨주었다.


2014 (구) 펀딩포털 와디즈...


그걸 보고 이사님은 개발을 시작했다. 그렇게 기획/디자인/개발까지 1주 만에 서비스가 완성되었고, 컨펌 절차나 테스트 없이 오픈했다. 그렇게 나온 서비스는 지금 다시 보면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창피하기도 하지만, 뻔뻔하게도 당시에는 전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쨌든 서비스라는 모양새를 갖추었고 잘 굴러갔다. 파란색 네이버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근본적인 목표와 가까운 서비스였다. 와디즈팀 모두가 이 전보다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축했다. 서비스 전문가가 보기에는 정말 터무니없는 서비스 모양새라고 생각했을지라도 이 서비스 때문이건 아니건 간에 와디즈는 계속 더 많이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굴러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것이 나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그 이후 2015년 말 와디즈가 본격적으로 프로덕트 조직을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마케팅 업무를 그만두고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합류하게 되었고 4년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력으로 따지자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애매한 시간이지만 지금은 개발자가 약 30명,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약 10명, QA와 PM까지 갖추고 있는 프로덕트 조직의 디자이너로서 저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고 무식해서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만약 저렇게 했다면 오류와 버그가 뒤섞인 채로 라이브 되어 CX문의가 폭발하고 운영부서 내에서는 화가 치밀고 엉망인 서비스로 원망을 받았을 것 같았다.


저 때에는 어떻게 저렇게 대충 뚝딱했는데 어떻게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굴러갔을까?

지금 와서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아래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1. 서비스의 복잡도가 낮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와디즈는 지금과 달리 리워드 서비스만 운영하고 있었고 프로젝트의 개수도 손가락 발가락 정도면 다 셀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메인에서 보여줘야 할 것들도 리워드 프로젝트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새소식, 블로그형 콘텐츠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지금처럼 세기 힘들 정도의 많은 양의 프로젝트나, 투자 서비스나, 메이커와 서포터의 사용자 관점을 생각해야 한다거나, 배너 계좌 운영 같은 부서 리소스 고민, 법률 검토 없이 서비스 설계가 가능했다. 따라서 디스크립션 없이도 해당 프로젝트 클릭 시 이동해야 하는 동선과 링크가 명확했고, 보여주어야 하는 로직이 정해져 있었으니 오해나 오류가 최소화되어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2. 문서화되진 않았지만 회사/ 디자인 담당자/ 개발 담당자가 서로 바라보는 목적이 같았고, 조직 내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았다.

펀딩 포털을 만들자고 했을 때, 그 누구도 의아해하지 않았다. 작은 인원이었지만 모두가 방향성과 비전에 공감했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한 맥락으로 CTO인 이사님이 나에게 갑자기 해본 적도 없는 과제를 던져주긴 하셨지만, 나 역시도 회사가 미리 말해준 큰 로드맵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의아함 없이 바로 포토샵을 킬 수 있었다. 메인을 바꿈으로써 생기는 나의 일에 대한 부담, 변경해야 할 것들, 왜 저렇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고 단지 보여지는 디자인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기대할 뿐이었다.


3. 최소한의 개선으로 진행했다.

물론 그 당시에 나의 인사이트나 경험이 뛰어나서 더 시간을 들여 좋은 아이디어와 더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면 와디즈가 더 크게 성장할 수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긴박하게 돌아가는 마치 전쟁터와 같은 IT 환경과, 그보다 더 치열한 스타트업의 생태계에서 이러한 일들 전부로 시간을 지체했다간 투입한 노력 대비 퇴화된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다. 와디즈는 그 당시 그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지체 없이 개발했다.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란


나는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저러한 환경에서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에, 사실 사소한 디스크립션이나 UI정의까지 요구하는,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왜 꼭 그래야 하냐며 의문을 갖거나 알게모르게 불평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때 참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전달하고 완성하는 것이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


대표님이 왜 펀딩 포털을 만들어야 하는지 열변을 토하며 설명했던 목표들을,
이사님 혼자 개발하면서 상상했던 로직과 정의들을,
나의 머릿속에만 있고 굳이 쓰고 전달하지 않았던 흐름들을,
높은 복잡도의 서비스를 잘 정리하여 낮은 복잡도로 만드는 것들을,
최소한의 서비스를 정의하고 설득해야 하는 일들을,
다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나, 프로덕트 디자이너이다.


이제는 대표님이 많은 구성원들에게 세세한 목표 정의 하나하나 직접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고, 내가 정의하고 만든 서비스도 몇 주, 몇 달이 지나가면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서비스의 크기가 커졌다. 하물며 그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기 위한 사람들 역시 많아졌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커뮤니케이션하고 정의하고 문서화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프로덕트 디자인이며 이것을 하는 사람이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아직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우주와 같이 복잡하고 미묘하고 예민한 IT, 핀테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역할과 기준이 혼란스러워 좌절할 때도 있다. 단순히 중간자의 역할로서 비즈니스에서 시키는 것을 그저 정리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서비스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처음에는 그게 서럽고 억울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처음 만들었던 메인을 생각하며,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나열해 본다. 저 많은 것들을 다 생각하는 사람은 오직 회사에 프로덕트 디자이너 뿐이다. 서비스의 탄생부터 성장과정까지 지켜봐야 할 임무가 있기 때문에 운영이나 비즈니스에 수렴하여 협소하게 생각할 수 없고, 개인사용성을 다 받아줄 수도 없고, 전체적인 요구 사항과 목적을 듣고, 정리하고, 퍼즐을 짜맞추고, 일정을 고려하여 영리하게 사용자의 경험을 생각하고, 추후 변경 시 나의 리소스도 생각하여 최대한 빈틈없는 서비스를 만들기위한 설계/ 디자인하는 역할이기에 그렇게 오해할 수 밖에 없으리라. 이제 이해하기로 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아직도 서운한건 어쩔 수 없다.)


서비스 기획자 또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예쁘게 하는 것 빼고 다하는 사람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와디즈에서는 예쁘게 하는 것 까지 포함된다...)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나의 가설과 프로덕트를 책임져주는 사람도, 검증해주는 사람도, 일을 나눠서 해줄 사람도, 가타부타 해주는 사람도 없다. 오롯이 내가 만든 서비스는 내가 책임져야한다. 그냥 내가 만든, 내가 맡은 서비스에서 만큼은 영향력과 책임감이 대표님 정도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스타트업에서의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또 한번 스스로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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