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고비에 놓인 내가 나를 지키는 법을 고민한다면
드라마 <킬미힐미> 줄거리
다중인격장애가 있는 재벌 3세 남자와 그의 비밀주치의가 된 레지던트 1년차 의사 여자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2015년 MBC에서 방송됐으며 지성(차도현·신세기· 페리박· 안요섭· 안요나· 나나 등 역), 황정음(오리진 역), 박서준(오리온 역) 등이 연기했다. '해를품은달', '경성스캔들', '원더풀라이프' 등을 집필한 진수완 작가와 '스캔들', '에덴의 동쪽', '아일랜드' 등을 연출한 김진만PD, '호텔킹', '오늘만 같아라', '살맛납니다', '내 인생의 황금기' 등을 연출한 김대진PD의 작품.
누구에게나 인생에 고비가 찾아옵니다.
누군가에겐 수백번, 수천번 아니 수만번일 수도 있고요. 어떤 사람에겐 일생일대에 딱 한번 찾아오는 것일 수 있죠. 가족의 죽음,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타이밍, 퇴사·퇴직, 취업의 어려움 등등부터 시작해 회사에서 겪는 모멸감이나 좌절감 등 각종 고비는 다양하게 찾아옵니다.
고비의 강도 또한 다르겠죠. 느끼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일겁니다. 또 그 고비를 대하는 태도도 다를 겁니다. 예를 들어 가족의 죽음이 있었다면 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을 거고 아니면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할겁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누군가의 책임이나 원망이 아니라 그저 인간은 죽음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죠.
문제는 이러한 태도에 따라 방어기제가 작동하느냐, 작동하지 못하느냐가 결정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 내 잘못이 아니라 그저 그 고비는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마음으로부터 쳐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하는 것이죠. 전 그것도 결국 어릴 적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훈련을 통해 익히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비와 방어기제. 갑자기 이 얘길 꺼낸 이유는 드라마 '킬미힐미'도 같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는 다중인격장애가 가장 큰 포인트입니다. 인격들을 겪으며 생기는 에피소드와 인격을 융합해가는 과정이 스토리화 됐죠. 인격들이 왜 발생했는지는 들여다 볼 수밖에 없습니다.
차도현은 어릴 적 아동학대를 당합니다. 차도현의 아버지는 아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직접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미움의 대상이었던 전처의 자녀인 오리진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어린 차도현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대신 맞아야만 하는 오리진을 보면서도 차마 아버지에게 대들지 못하고 무기력한 자신을 탓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인격이 신세기죠.
어릴적 아동학대의 여파는 자살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안요섭과 이런 어둠의 인격을 견뎌내기 위해 반대급부적으로 생겨난 안요나를 탄생시킵니다. 아동학대 이전에 아버지와의 행복한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페리박도 인격으로 형성되고요. 그 외에 곰인형 모습을 한 나나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인격들이 오리진과 만나고 함께 융합해나가면서 비로소 차도현은 인격이 다양하게 생길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깨닫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익히게 됩니다. 또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방어기제를 형성하게 되죠.
이 드라마 기획의도를 살펴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인간에게 상처입은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진심어린 위로와 사랑뿐이라는 것.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을 유토피아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랑이라는 것.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핵심 장면이 바로 7회에 등장합니다. 처음으로 등장한 인격 안요섭과 오리진의 대화입니다. 안요섭은 차도현을 떠나 미국 유학을 선택한 오리진에게 전화를 걸어 자살을 암시하죠. 그 연락을 받고 오리진은 옥상 위에서 뛰어 내리려던 안요섭을 발견하고 그를 말립니다.
# 7회
리진/다른 인격들한테 물어봤어? 다른 인격들도 죽고싶대? 니 몸은 니것만이 아니잖아.
요섭/그렇게 몸을 섞어쓰니까 돌연변이 소릴 듣잖아.
리진/돌연변이가 아니야. 너 혼자만 그런게 아니라구. 누구나 마음속에 여러사람이 살아. 죽고싶은 나와 살고싶은 내가 있어. 포기하고싶은 나와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내가 매일매일 싸우면서 살아간다고. 넌 싸워볼 용기조차 없는 거잖아.
요섭/뭘 안다고 잘난체야?
리진/이리와. 제발. 내려와.
요섭/어차피 누나도 도현이 형을 버리려고 했잖아.
리진/내려오라구.
요섭/그렇게 살리고 싶었으면 늦지 말았어야지. 2분 늦었어. 게임은 게임이야. 타임오버.
리진/안돼.
요섭/방해하지마.
리진/차도현 정신차려. 정말 죽고싶어? 그게 차도현씨 진심이야? 그럴리가 없잖아. 그런 사람이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갈리 없잖아.
* 해당 장면 영상
http://vodmall.imbc.com/player/player2014/popupPlayer.html?broID=1003135100030100001&itemID=-99&isPopup=Y&isUIHidden=N&isBroadcast=Y
오리진은 이 사건 이후 안요섭이 옥상에 빨갛게 그려둔 'KILL ME'라는 문구를 하얗게 'HEAL ME'라는 문구로 바꿉니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이 '날 죽여달라', '죽고싶다'라며 다잉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결국은 '날 도와줘', '날 살려줘'라는 메시지일 것이란 자살방지 전문가들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드라마 '킬미힐미'는 아이러니하게도 재밌고 유쾌한 드라마입니다
자살, 죽음, 아동학대와 같이 무겁고 어려운 단어들이 연이어 나오는데 왜 유쾌하냐고요?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 특성에 맞게 밝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죠. 이 드라마에서 차도현의 다양한 인격들은 시시때때로 등장하고, 각 인격이 행동하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등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득합니다. 극적으로 만들어낸 요소죠.
지성, 황정음, 박서준의 연기는 어두운 스토리도 밝고 행복하게 밝은 분위기를 뿜뿜 풍겨냅니다. 특히 지성의 안요나 연기는 기가 막힙니다.
"이노무 기지배 내가 입벌리지 말랬지?", "재수 똥튀겨", "이오빠 누구야~? 내가 침발랐어!!"와 같이 여장이 안어울릴 것만 같던 지성이 안요나 역을 아주 재미있게 소화해냅니다. 드라마 곳곳에 배우들의 애드리브도 자주 등장해 웃음을 자아냅니다.
작년 말에 이 드라마 중국에서 리메이크 됐다던데 ... 반응은 한국에서보다 별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