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 속에서 '그냥 가야할 때'를 고민해본다면
드라마 <대장금> 줄거리
조선시대 중종 시절 서장금이 궁궐에 들어가 수랏간을 거쳐 최초의 어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드라마. 2003~2004년 MBC에서 방송됐으며 이영애(서장금 역), 지진희(민정호 역), 양미경(한상궁 역), 견미리(최상궁 역), 임현식(강덕구 역) 등이 연기했다. '선덕여왕', '뿌리깊은나무', '히트', '서동요' 등을 집필한 김영현 작가와 '수사반장', '허준', '상도', '이산', '동이' 등을 연출한 이병훈 PD의 작품.
드라마 '대장금'은 조선시대 정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음식, 의술 등 각양각색의 볼거리가 많지만 결국은 조선시대 궁궐 내 벌어지는 암투와 모략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된 흐름이죠. 수랏간 최고상궁이 되기 위해 내부 라인을 타고 다른 권력자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만든다거나 의관이 오진을 하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한 사회를 이끌고 좌지우지하는 권력 옆에 늘 얽힐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표출되는 것이죠.
그 속에서 스토리는 크게 네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장금의 수랏간 궁녀 시절과 관비로 쫓겨난 시절, 의녀로 궁에 복귀한 이후, 어의녀가 된 이후의 삶까지 총 54부작이라는 큰 작품 내에서 한 인생을 살펴보게 되죠.
대장금의 스토리는 장금의 삶에서 발생하는 큰 변화들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대부분 연이어 발생하는 고난들이죠. 부모의 죽음으로 궁녀로 들어오게 되고 수랏간에서 여러 고초를 겪으며 어머니와 같은 한상궁이 최고상궁이 되지만 이후 역모죄를 짓고 제주도로 관비로 떠나구요. 의학공부를 해 의녀로 궁에 겨우 돌아오지만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맞딱들이고 관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의녀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주인공 서장금(이영애 님)은 음식을 하는 사람, 의술을 행하는 사람의 뜻과 가치를 외치며 올곧음과 정의를 내세워 뚜벅뚜벅 걸어나갑니다. 수랏간 최고상궁이었던 정상궁이나 한상궁이 꺾어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와 같았던 것처럼 장금도 그러한 모습을 그대로 보입니다. 동시에 장금은 자신의 삶에 닥쳐온 수많은 위기의 순간에 이겨내는 힘이 강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연생아, 그냥 가야할 때가 있어.
그냥 주어진 상황에 어찌해야할 도리가 없이 그냥 가야할 때.
지금이 그런 때야. 그냥 가야해 지금은.
그냥 두려움도 버리고 생각도 버리고. 응?"
21화에서 장금은 스승인 한상궁 대신 수랏간 최고상궁 경합에 나섭니다. 재료를 구하러 궁 밖으로 나간 한상궁이 제시간에 들어오지 못하자 최상궁에 맞서 자신의 음식을 내놓습니다. 경합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죠. 연이어 패하자 장금은 친구 연생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장금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동안 위기의 순간에 버텨낼 수 있었던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드라마 '대장금'은 사극의 교훈성이 두드러지는 드라마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장희빈의 이야기가 사극으로 처음 만들어질 때 칠거지악의 교훈과 인현왕후의 어질고 착함을 강조했던 것처럼 사극은 그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전달하겠다는 특성이 강하게 작용해왔습니다. 점차 시대가 변하면서 전통 사극의 가치가 현 시대와 맞지 않게 되고 다양한 스토리가 가미된 퓨전사극도 등장했죠.
드라마 '대장금'은 진취적인 여성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선 변화가 두드러졌지만 역경 속에서 우직한 가치를 앞세워 한발씩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 교훈성을 띄는 듯 보입니다. 장금은 매 순간 포기가 없습니다. 과연 현실에서 정말 저렇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죠.
자신이 사랑하는 민정호와의 혼인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혼인해 아이를 낳고 살지만) 음식이나 의술을 통해 자신의 부와 명예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유일하게 궁궐에 돌아와 어머니와 한상궁에 대한 억울한 누명을 벗겨내야겠다는 개인적인 동기 외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점 때문에 (+제가 교훈성을 거부하는터라)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죠.
하지만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극적인 요소가 많아 명장면으로 꼽히는 씬이 많아 다시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수랏간 시절엔 한상궁 대신 최상궁과 최고상궁 경합을 붙는 씬부터 의녀가 된 이후 임금과 중전을 살려내고 치료를 거부하는 대비와 내기를 해 치료를 받게 하는 씬까지.
그 중 제가 꼽는 최고의 한 씬은 51회 장금을 주치의관으로 앉히겠다고 하는 중종의 뜻을 내의원 전원이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여성인 장금이 관직을 받고 왕의 주치의관에 앉게 되자 대신들은 거세게 반발합니다. 처음엔 내의원 의관과 의녀들도 반대했죠. 하지만 두창(천연두)을 고치고 예방하는 과정에서 장금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내의원 의관과 의녀들의 마음은 변화하죠.
#51회
중종/신익필은 소에 있는 내용을 모두에게 말하라
신익필/전하 내의원을 맡고 있는 신 신익필 아뢰옵니다. 저는 물론이오 내의원의 모든 의관과 의녀들은 전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중종/연유가 무엇인가
신익필/저는 사적으로는 의녀 장금의 스승이 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녀 장금의 지위를 받겠다는 뜻은 의녀 장금이 가진 의원으로서의 자세이옵니다. 의녀 장금의 의술은 어머니의 그것과 같았습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 같았으며 자식을 병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빠른 예방을 시키도록 하는 것이 같았으며 자식을 낫게 하기 위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이 같았습니다. 도성의 두창과 대군마마의 두창으로 그것을 모두 보였으며 내의원의 의관과 의녀들은 이미 실질적으로 의녀 장금의 지휘하에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대군마마의 병을 고칠 수 있따는 신념 하에 움직였습니다. 하여, 전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PXIH5qXjYg
수많은 명장면들이 있지만 이 씬을 최고로 꼽은 이유는 장금의 삶이 가져온 변화와 결과를 보여주는 씬이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고비를 견뎌온 장금이 결국 왕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회 속에서 작지만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김영현 작가는 대장금 종방연에서 "에피소드가 많이 필요해 만들어내느라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스토리가 다양하고 전개가 빠른 사극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 이미 여러 역사적 기록을 통해 결론이 난 상황을 볼거리가 많게끔 풀어내야한다는 과제가 있었겠죠.
김 작가가 꼽은 명대사는 "맛을 그려보아라"였다고 합니다. 맛을 창조해보라는 의미로 대사를 고민하던 중 한 후배가 아이디어를 내 쓰게 된 문장이라고요.(http://woman.donga.com/3/all/12/131116/1)
첫 악역을 맡았다던 견미리 님의 연기는 극 전반을 이끌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악독한 최상궁을 제대로 보여줬죠. 지금은 어느덧 탑 여배우가 된 한지민 님이 의녀 신비 역할로 나오기도 하죠. 중종 임호 님의 "맛있구나" 한마디도 당시 꽤 유행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하였는데 어찌 홍시라 하시면...', '오나라 오~~~나라♬'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대사와 노래가 있을 정도로 대장금은 한 때 큰 바람을 일으켰죠. 스토리 구성이 재미있고 볼거리도 많은 드라마라 종종 다시 돌려보아도 또 재밌습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bigjhj/22124844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