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담하게 그 때 그 사랑을 떠올리고싶다면
드라마 <연애시대> 줄거리
이혼한 뒤에도 사랑의 끈을 놓지 못하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 2006년 방영됐으며 감우성(동진 역), 손예진(은호 역)이 연기했다. JTBC '청춘시대1·2'를 쓴 박연선 작가와 영화 '고스트 맘마', '그녀를 믿지마세요'를 연출한 한지승 감독의 작품.
"사랑해"
드라마 연애시대 속에는 여느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이 말 한마디가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투닥이는 대화나 지껄임이 일상 속에 녹아있을 뿐이죠. 하지만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논하는 드라마입니다. 사실 사랑인지 우정인지 그냥 부부로 연을 맺었던 정(情)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세 단어의 차이도 무엇인지 잘 모르겠구요. 이혼한 부부가 서로의 곁을 맴돌며 사랑을 합니다.
'헤어지고 시작된 이상한 연애' 부제만큼이나 이들의 사랑은 이상합니다. 제가 보기엔 두 사람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데 둘은 서로를 밀어내야한다고 외치고 있죠.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기 바쁩니다. 아니, 새로운 시작을 하더라도 서로의 시선을 항상 염두에 두고 행동합니다.
드라마 연애시대는 일상에서 겪는 사랑에 대한 고민을 드러냅니다. 기승전결이라는 큰 흐름 보다는 서로의 감정적인 변화에 주목하고 있죠. 드라마가 방영되던 2007년 당시에는 어색한 형태였던 듯 당시 방송국에서는 연애시대를 '디테일을 봐야하는 드라마'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화면 곳곳에 담긴 디테일을 살피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죠.
드라마 연애시대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사랑을 솔직하게 논하고 있다는 겁니다. 많은 드라마가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연애시대만큼 현실감 있는 드라마는 흔치 않습니다. 전형적으로 사랑하고 이별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죠. 그만큼 공감가는 '감정'이 많습니다. 2006년 방영한 드라마 연애시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을 겪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을 대입해 상대와 당시의 나를 이해하죠.
연애시대는 모든 장면에서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하며 인물들의 일상을 관통하고 극을 진행해갑니다. 자극적인 드라마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연애시대가 잔잔하게 느껴지는 이유죠. 서점 직원인 동진의 따분한 하루, 회원들 눈치보느라 정신없는 헬스트레이너 은호의 피곤한 일상, 그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사랑을 보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이 사랑을 마주한 우리의 삶과 같습니다. 사랑을 '겪어본' 시청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법한 감정 변화죠.
이 드라마에서 스토리를 이끄는 사건은 주인공 은호와 동진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려는 그 순간입니다. 새 사랑을 시작하려는 상대를 보며 등장인물들간의 마음 변화가 디테일하게 펼쳐지죠. 뜨거운 열정과 감당할 수 없는 설렘, 마약과 같은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기쁨과 즐거움, 슬픔과 고통을 여러 형태로 주곤 합니다.
은호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시작하려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마음을 알고 싶어 전화를 붙들고 뭐라 말할 지 중얼거리는 동진의 모습이나, 동진의 새로운 사랑에 흔들리며 애써 외면하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동생 지호의 입을 통해 확인하는 은호. 둘은 그렇게 서로를 잊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감정을 묵히다 결국 폭발하게 되죠.
"내 호적을 더럽힌 남자야."
대사는 톡 쏩니다. 은호가 고등학교 동창인 미연에게 동진을 처음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둘의 자존심 싸움이 대사 속에서 여실히 드러나죠. 초등학교 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괜시리 눈길과 마음을 끌려고 툴툴대고 괴롭히며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둘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과거 서로에게 주고 받고 말았던 상처 때문에, 표현 방식의 차이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죠. 겨우 입을 떼려하면 타이밍은 어긋납니다.
둘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포인트는 나레이션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읊조리는 나레이션은 차분합니다. 둘만이 공유하는 추억을 되돌이킬 때 사용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감우성은 까칠한 '츤데레'의 모습을 그야말로 솔직하게 묘사합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고민하는 모습부터 퉁명스러운 말투와 뚱한 표정, 그리고 의외의 미소까지 외동아들 동진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여배우 손예진은 은호를 표현하기 위해 감정을 일부 자제하고 예쁜 척도 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옷보다는 헬스트레이너에 맞는 츄리닝 바람이 대부분이죠. 두 배우는 과잉된 표현을 자제합니다.
연애시대의 최고 볼거리는 영상미입니다. 영화와 같은 아름다운 영상이 캐릭터의 감정선을 살리죠. 반주만으로도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OST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극에 안성맞춤입니다.
제가 최고의 한 신으로 꼽는 건 마지막회를 앞둔 15회, 은호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입니다. 전 남편 동진이 재혼하면서 그를 보내야하지만 어쩔 줄 몰라 매일 술잔을 기울입니다. 애써 이런 마음을 감추며 지내던 은호는 술이 취해 집에 통닭을 사오고 동생 지호가 '피클'없이는 통닭을 먹지 않는다며 피클이 담긴 유리병을 열겠다고 힘을 씁니다. 뚜껑이 꽉 잠겨 열리지 않자 옷까지 벗어던지며 열어보겠다고 소리치다가 그동안 눌러왔던 화가 폭발하죠.
"이런 거 하나 내맘대로 안돼. 나보고 어쩌라고. 맨날 나만 이래.
열려라 좀. 이정도 하면 불쌍해서라도 해주겠다.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
하나님도 그래. 나한테서 다 가져갔으면 이런 거 하나쯤은 맘대로 하게 해줘야지.
나한테 남은 게 뭐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이제와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이미 늦었는데."
어린 시절 엄마가 일찍 죽고 동생을 책임지며 사실상 가장 노릇을 해왔던 은호가 동생 앞에서 와장창 무너집니다. 뒤늦게 동진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후회하는 장면이죠.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은호가 절규하는 두번째 장면이기도 합니다.(첫번째는 아이 동이를 유산한 직후) 절규한 뒤 유리병을 던지고 유리 파편이 동생에게 튀면서 상처가 나자 은호는 상처를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하며 펑펑 웁니다.
잔잔하디 잔잔한 이 드라마에서 가장 감정이 터지는 순간입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은호가 품고 있던 모든 감정이 드러나고 은호와 동진은 다시 합치게 됩니다. 이 씬을 최고로 꼽는 이유는 본인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감정에 휩싸여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불안감과 후회, 안타까움, 미련, 그리고 동진에 대한 사랑.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이 순간이 '헤어지고 시작된 이상한 연애'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씬입니다.
이 씬은 원작 소설에 없던 장면입니다. 한국판 드라마에서 이 장면이 들어가게 된 이유는 결국 감추기만 했던 서로가 감정을 표현해 둘을 이어줄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리 추측해봅니다.
덧(2018.4.9)/
두 주인공 손예진 님과 감우성 님이 나오는 드라마(JTBC '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 SBS '키스 먼저 할까요?')가 동시에 방영되면서 연애시대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생기는 듯 싶습니다. 12년 이란 시간이 지난 만큼 두 배우의 외모는 더욱 성숙해졌고 표현력은 깊이를 더했다는 생각이 듭니요. 정해인 님, 김선아 님과의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이 또 하나 기록되길 빌어 봅니다.
참고/
http://blog.naver.com/bigjhj/221139968646